김치외교

퇴근길 한국 식품점에 장을 보러 갔더니 식품점 앞에 푸른 잎이 싱싱하게 달린 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통통하게 살집이 좋은 배추도 매장에 가득하고 새우젓까지 준비되어...

굴렁쇠

굴렁쇠굴렁대 쥔 주자감천마을 오두막을 돌아 나온다헐떡이는 골목 끝자락에 내던진동그라미구르는 호흡 뒤뚱댄다 중심이 멀고 멀수록엎어질 듯 휘청거리는온몸 구르며 산다 전전하는 앞모습과 뒷모습이순환반복 되는 행로주류에 다가갈 수 없는삶의 곡선끝내 겉돌기 하는 옆에서 걷어차인 원지름의 진동이좌절에 부딪쳐 상처로 해어진다달팽이관의 누적된 흔들림동그란 물결처럼 커져간다 달려온 시간들발목 묶어 맴돌이 한다원심력에 하나 둘 나뒹구는 눈동자홀로 남는 동력 쇠한 버거움제자리에 서서 까닥거리다동그라미 품속에 드러눕는 굴러먹는 한 생 송운석(시동인 캥거루 회원·2017년 한국동서문학 신인작품상·2016년 제18회 재외동포문학상 시부문 입상)

복도 양쪽 벽에는 레지던트 (이곳에서는 입주해 사는 노인들을 영어로 이렇게 부른다. 역하면 주민.)들이 특별활동시간에 만든 작품들이 단정하게 붙어 있다. 색종이 접기, 자수, 카드 만들기,...

모니터 속의 흰곰에게

장삼을 입은 곰이두 눈을 뜨고 잠수를 한다작은 물방울 우르르 따르며날 선 털들 물을 밀고 들어서는얼음보다 깊은 한지의 허기 장작을 패고 버섯과 나물을 말려산골의 긴 겨울을...

유령을 찾아서

출발도 하기 전에 몸이 오싹오싹했다. 하지만 오싹한 정서는 달포 전 티켓을 구입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마치 유령에게 지갑을 털린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형체도 없는...

일상을 깁다

실밥이 터졌다 느슨해진 아랫도리 한 쪽감침질 한다버리기는 너무 쉬워 사람 사이도 필요한 박음질어떤 때는 설렁설렁 반만 박아두기도 하지만헐거워진 사이도다시 꼭꼭 온박음질해두면쉽사리 사이가 뜨지 않아 헐렁한 일상을깁는 재미로...

선택하세요

“3분 단축할 수 있습니다. 원하시면 선택하세요.” 록데일 (Rockdale) 축구장으로 가는 길, 집을 나와 사거리 신호등에 다가가니 내비게이션 여자음성이 들려온다. 순간, 3분 단축이라면! 하는 생각에...

화분

생체의 창이 열린다사향제비나비 밖으로 밖으로생물들 발정에 분주하다 흙살 가둔 터속 단장 한창이다햇살 꼬이는 씨방을 갖기 위한 자리다툼모여든 꽃나이, 홍등 빛 바람을 기다린다 우주를 향하는 땅속 깜깜한 자궁로켓에 얹힌 꽃씨 한 움큼어둠 속으로 흩어진다채홍사의 수작으로거룩한 모성에 안기듯 틈새로 틈새로웜홀*의 난해한 지형을 헤쳐 나와 다독여 묶이는 방태초의 고독이 태교의 하모니에 심장을 박동하며우주를 유영하는 발차기 한창이다아기집에 갇힌 계절은 한껏 부풀고몸 트림이 지축을 가른다손발 뿌리 내리는울음 안에서 일어서는 울음 우렁차다진화를 잊은 유전 형질들어미 허물을 뒤집어쓴다 생의 보금자리에서 블랙홀을 오가는꽃이 씨앗을 씨앗이 꽃을 낳는윤회를 키우는 우주불꽃 번식이 환하다 계간 <한국동서문학> 2017년 겨울호 * 웜홀 (Worm Hole) : 블랙홀과 화이트홀로 연결된 우주 내의 통로, 시 공간의 다른 지점을 연결하는 고차원의 통로  송운석 (시동인 캥거루 회원·2017 년 한국동서문학 신인작품상 수상·2016년 제18회 재외동포문학상 시 부문 입상)

일탈과 선택 사이

나는 열심히 살아왔다. 이 생각이 들면 목젖에서 눈물이 덩어리 되어 숨을 막는다. 언제부터인지 언듯언듯 늙는 순간을 보곤 한다. 자꾸 흐트러지는, 쉰 살 이후부터 스멀스멀...

롱제티에서

오후 늦게 롱제티에 오니하늘이 한차례 더 먹구름을 깔아 놓는다펠리칸 먹이 주는 시간에카메라들 함성처럼 터질 때 문득올려다 본 하늘이글거리던 햇살도 노을도 잠시열렸다 닫히는 조리개 속으로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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