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을 찾아서

출발도 하기 전에 몸이 오싹오싹했다. 하지만 오싹한 정서는 달포 전 티켓을 구입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마치 유령에게 지갑을 털린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형체도 없는 유령접촉비가 오십 달러씩이라니. 억울한 생각에 출력한 티켓을 들고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푸르스름한 불이 밝혀진 셀의 사진엔 눈을 닦고 찾아봐도 유령은커녕 유령의 씨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목을 매고 감옥으로 달려가는 게 아니겠는가. 옛 감옥에 가게 되면 교수대에서 숨을 거둔 유령, 아기유령, 누명에 죽은 유령, 자살한 유령들을 접촉하리란 예감이 들었다. 나는 유령을 만나 혼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달포 내내 유령 생각에 미쳐있었다.

 

자정에 돌아온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뻗어버렸다. 아침 늦게 눈을 뜨자 온몸이 바람 든 무처럼 꼼짝할 수 없다. 이불 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데 지난밤이 마치 꿈처럼 기억났다. 커피 생각에 몸을 발딱 일으켰다. 물이 끓자 커피포트의 전원이 저절로 꺼진다. 끓어오른 물이 유리포트 안에서 억울한 비명을 지르며 가라앉는다. 침대로 돌아온 나는 기역자로 누워서 커피를 홀짝거린다. 지난 밤, 사이키가 한 사형수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대던 장면이 가장 생생하지만 아무래도 기억을 차근차근 풀어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남자와 나는 예정시간보다 조금 일찍 ‘Maitland Gaol’에 도착했다. 가시철망이 창살에 촘촘하게 휘감겨 있는 풍경은 여느 감옥과 다를 것이 없었다. 세 자녀를 대동한 젊은 부부가 굳게 닫힌 감옥 앞에서 호들갑을 떨며 반가워했다. 자녀들의 표정은 꽁꽁 얼어있었다. 뒤를 이어서 25명의 참여자 전원이 도착한 후에도 철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두운 지상에 우우 몰려 서 있는 사람들이 마치 딴 세상 사람들처럼 보였다. 섬뜩한 어둠이 높은 벽을 타고 내려와 강철수갑을 채울 것 같았다.

 

철판 긁는 비명을 지르며 교도소 문이 열렸다. ‘Ghost Hunting 101’ 여자의 검은 티셔츠에 적힌 문구를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나는 해설하는 여자를 사이키일 것이라고 마음으로 동전을 던지며 내기를 걸었다. 짤막한 설명을 끝낸 가이드는 일행을 유령의 건물로 몰아넣었다. 으악! 나는 건물의 문틀에 발이 걸려 자빠졌다. 손가방을 뒤져 렉셀 후레쉬를 꺼내 비췄다. 검은 피가 스타킹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지만 피 닦을 시간도 없이 센스머신을 나누어주는 곳을 향해 달려가야만 했다. 전기의 스위치를 내리자 8동 건물내부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셀에 몸을 밀쳐 넣었다. 내가 들어간 곳은 2.5×3미터 넓이와 4미터 높이의 살인자를 수감했던 곳이었다. 쇠막대기문을 닫고 외부의 철판 문까지 닫았을 때 견고한 어둠이 셀의 내부를 무겁게 가두었다. 나의 두 번째 심장이 깨어나 고동쳤다. 스마트폰 모양의 센스를 손에 든 나는 유령이 달라붙기를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괴기스러운 에너지가 내 손바닥을 물어뜯을 것 같았다. 불길하게도 어디서 피 냄새가 났다. 손이 닿지 않는 높은 벽의 얇게 뚫린 구멍에서 최후의 희망처럼 빛이 새어 들어왔지만 점멸하는 센스만 응시했다. 빨강과 노랑, 파랑과 초록의 불빛에 사로잡힌 나는 무서움도 잊었다. 바보처럼 변기에 무릎을 세게 박고 말았다. 겨우 몸을 한 바퀴 맴돌 정도의 공간에서 방향감각을 잃다니. 희한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그 동안 피 냄새를 풍긴 진원지가 내 무릎이었음을 알아내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무서웠기로서니, 제 몸에서 흐르는 피 냄새에 겁을 먹다니. 나는 내 정수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초조하던 마음은 실망으로 돌아섰다. 그것은 내가 투자한 티켓요금 오십 달러가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으스스한 기분은 들었지만 내가 상상했던 공포에는 턱도 없었다. 유령의 에너지는 센스에 끊임없이 점멸했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런 시시한 정도가 아니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번개 같은 빛에 소름이 끼치고, 유령의 형체가 보일 듯 말듯 사방에서 날아다니다 내 머리카락을 확 잡아당겨서 내가 비명을 지르다 혼절하게 되기를 바랐다. 기다려 봐, 그렇게 빨리 실망할 건 없어. 나는 자신을 다독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셀 밖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무섭게 철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불을 밝히자 감옥의 내부표정이 낱낱이 드러났다. 나는 크게 숨을 뱉었다. 육중한 철판이 일층과 이층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11살 소년 그리고 여죄수들이 아기와 함께 수감되었던 셀들이 이층에서 나란히 얼굴을 내밀었다.

 

다시 불이 꺼졌다. 사이키가 허공을 향해 구슬프게 이름을 불렀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형수의 이름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녀가 허공을 향해 이름을 부를 때 어둠 속 어디에서 대답이 들려오리란 기대로 나는 숨이 막혔다. 사이키의 강신술이 불러내게 될 유령의 응답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내 입술이 타 들어가는 것도 몰랐다. 애절하게 이름을 부르던 사이키가 갑자기 신음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졌다. 기묘한 일이지만 그때 기적처럼 오스카 와일드의 시 ‘레딩 감옥의 노래’가 떠올랐다.

 

나는 고통에 찬 다른 영혼들과 함께

또 다른 고리를 만들며 걷고 있었다.

내 뒤에서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저 친구는 곧 매달릴 거야”라고 들려왔을 때

남자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나는 의문을 품었다.

 

“찰리! 네가 억울하게 죽었니?” 부스스 몸을 떨며 일어난 사이키가 비브라토 목청으로 계속했다. “내가 귀를 열고 있다. 네 진실을 들어야만 하겠어.” 1897년 이곳 교도소의 마지막 처형자였던 찰리 하이네스란 사내는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무고를 부르짖었다고 한다. 침묵, 사후의 영혼과 살아있는 영혼이 한 시공에서 압도적인 침묵으로 얽혔다. 침묵의 침묵은 누군가의 진실을 듣고자 하는 열망과 의문일 것이다. 누구도 아무도 대답이 없었고,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옛 감옥에서도 아기들은 태어났다. 태어나다 죽거나 젖을 빨다 죽었다. 엄마의 품에 안기거나 손을 잡고 들어온 아기들도 더러더러 감옥에서 운명을 끝냈다. 조그만 독방에서 아기들과 여죄수는 어떻게 견디었을까? 상상하자 가슴에 찌르르 전기가 흘렀다. 세상의 자락도 미쳐 만져보지 못한 풋내기, 11살의 미성년자가 투옥되었던 독방의 높은 벽에 뚫린 외로운 구멍으로 별빛은 찾아 들었을 것이다.

 

일행은 교수대로 이동했다. 대부분의 살인자들과 약탈자들을 처형한 교수대는 하필이면 주방건물 외벽이었다. 광장을 마주 바라보는 벽은 처형하는 광경을 더 많은 군중이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심장이 가늘게 뛰는 노인이든 무시무시한 장면을 즐길 수 있었다.

 

살아남고 싶은 원초적인 욕망과 식욕은 근친상간이다. 음식냄새를 맡으며 숨이 넘어가던 사형수들은 대부분은 젊은 나이였다. 본능처럼 의문이 솟구쳤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살인을 했을까. 욕정이나 탐욕 때문에,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만큼 사랑해서, 사랑에 굶주려서, 텅 빈 위장을 채우기 위해서, 권태로워서?

 

어둠에 떨고 있는 교수대의 희미한 흔적을 올려다보자 나도 셀 수 없이 투옥 되거나 사형당한 것 같은 억울함이 솟구쳤다. 여자라는 성으로, 가난 때문에, 무지해서, 이방인이어서… 누구는 목이 달려 죽어야 했는데 나는 왜 태어나야만 했는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울면서 웃는 상상을 해보았다. 혼란스러웠지만 무엇을 위한 혼란인지 알 길이 없었다. 살인이 인간의 극단적인 타락이라면, 아름답고 숭고한 죽음에 닿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남은 나의 인생이 너무 짧아서 현기증이 일었다.

 

사형수의 목에서 떨어진 식은 피 같은 남은 커피를 목구멍에 털어 넣는다. 이불을 머리꼭대기까지 뒤집어쓴다.

 

 

테리사 리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2013년 재외동포문학상 소설부문 대상 수상·2016년 계간웹북 소설부문 신인상 수상·소설집: 비단뱀 쿠니야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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