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과 선택 사이

나는 열심히 살아왔다. 이 생각이 들면 목젖에서 눈물이 덩어리 되어 숨을 막는다. 언제부터인지 언듯언듯 늙는 순간을 보곤 한다. 자꾸 흐트러지는, 쉰 살 이후부터 스멀스멀 찾아오는 불안증세를 우울증이라고 불렀다. 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집에 들어선 날은 이 느낌이 더 심하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 거기엔 흰 칼라의 교복을 단정히 입은 여고생이 마악 외출하려는 듯 서있다. 빳빳하게 풀 먹인 칼라를 얌전히 달고 정갈한 모습으로 나를 맞는다.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왔다.

 

예비고사 시험지를 종소리와 함께 냈다. 우르르 몰려나오는 학생들 사이로 짝꿍인 혜승이를 찾았다. 평소와 달리 서로는 아무 말 없이 시험장을 나섰다. 머릿속은 바닷물이 밀려 나가듯 서서히 비워지며 허전해지기 시작했다. 위가, 아니 가슴이 체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 말 없이 걸어나가던 친구가 교문 앞에서 걸어 나온 교정을 뒤돌아 보더니 울기 시작했다. 왜? 물어보는 내게 눈물 콧물로 얼룩진 얼굴로 “넌 어때?” 그 한마디에 우리는 수위실 벽에 기대어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었다. 그 동안 공부한 것은 이런 맘이 들지 않도록 열심히 했었는데, 어른들이 그려준 세상에 하나의 정물이 되려 길들여져 왔다고. 교문을 나서던 다른 두 친구도 우리 등에 기대어 같이 울어주었다.

 

코가 빨갛게 되도록 운 우리들은 퉁퉁 부은 눈을 가리키며 키득거리고 웃었다. 사복을 입은 우리들의 뒤로 목백합나무가 앙상한 손을 흔들며 어여 가라고 한다. 가자. 예비고사 시험장엔 사복을 입었다. 사복은 우리들을 어른들의 사회로 숨겨준다. 용기를 냈다.

 

곧바로 독서실에 들러 가방을 둔 채 남춘천역으로 갔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우리들은 어른이 되려 했다. 아무도 집으로 전화를 걸지 않았다. 으레 독서실에서 공부하려니 생각할 부모들에겐 미안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청량리역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바다로 가자. 서해의 일몰을 보러 갈 것인지 동해의 일출을 보러 갈 것인지. 떠나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체한 가슴을 풀기에 바빴다. 막상 종착역에 도착한 우리는 다음 길을 망설였다. 강릉행 밤 기차를 타고 일출을 보자는 친구와 숨 고르기를 하자는 친구의 말에 용기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혜승이의 사촌오빠네로 가기로 했다. 문제는 오빠의 전화번호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길은 안다는 친구의 안내로 시청까지 가서 방배동 가는 전철을 탔다. 그리고 다행히 기억 속의 같은 버스 노선이 방배 전철역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이라도 부모님들이 알면 우리 4명은 돌아가며 꾸중을 들을 테고 그 면피로 만만한 사람을 골랐다. 가장 젊은 남자라는데 모두가 끄덕였다. 울던 그 비장함은 어디로 가고 가지가지 일어날 사태에 대한 예상문제와 해답풀이를 했다. 혹시라도 쫓겨날 상황을 대비하여 각자의 주머니를 털은 것이 시청까지 오는 전철에서 유일하게 한 일이었다. 강릉행 기차비와 하루 정도의 식사는 충분할 만큼 되었다. 당장 집으로 가라고 몰아내면 그때를 대비한 때문인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낭랑18세라는 우리들은 예비고사가 끝난 서울의 여고생들이 아니었다. 도청소재지라도 우리들은 객지인이었다. 기차를 타며 왁자지껄 자신만만하던 목소리가 주눅이 들었고 버스에서는 서로의 옆구리를 누를 뿐 말을 잃은 채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앉아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빌라 입구까지 가며 조금은 자신감을 회복해갔다. 기억의 퍼즐을 맞춰가며 빌라 수위실 앞에 서 있는데 멋진 남자가 어둠을 가르고 등장했다. 오빠, 친구의 목소리와 더불어 세 여자의 등장에 질릴 법 한데도 싱긋 웃는 그 모습에 우리는 다시 촌스런 여고생이 되어버렸다.

 

혼자 사는 남자 방에 4명의 여자들이 몰려 들어가는 소리에 앞집 문이 열리더니 머리가 나왔다 들어간다. 남자의 방에 들어왔다는 흥분이 우리들을 긴장하게 했지만 친구는 스스럼없이 오빠에게 오늘 있었던 우리들의 탈출을 이야기 한다. 옆에서 듣고 있는 우리들은 내가 한 말과 행동들이 그려지는 내내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자랑스럽기도 했다. 누구의 지시를 받지 않고 우리가 결정을 내렸다는 것. 이것이 중요했다. 열심히 공부했구나. 그의 한마디가 친구를 눈물짓게 하더니 우리들을 다시 눈물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왜 우냐고 묻지 않았다. 잠시 나갔다 온 그의 손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호빵부터 각종 과자와 귤, 빵과 케익이 식탁 위를 가득 채웠다. 그제서야 우리들은 떠나자는 그 순간부터 물도 마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네 여자가 순식간에 식탁 위를 초토화시켰다. 아무리 잘생긴 젊은 남자가 있어도 우리들은 그저 여고생이었다. 먹는 모습을 빙그레 보던 그는 ‘잘했다’ 그 한마디를 던졌다. 귤을 손에 들고 있던 나는 뒤이을 그의 말이 궁금했다.

 

이제부터 열심히 살아라, 세상은 너네가 생각하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는 얘기부터 오늘 하루 그의 일상을 들었다.  ‘열심히!’ 그의 얘기에 빠져들어 우리들이 갈 곳이 강릉이라는 얘기도, 하루를 더 멀리 가고 싶다는 얘기도 못했다. 오늘이기에, 내일도 모레도 아닌 ‘오늘’을, 지금 바로. 강릉행을 포기한 그 새벽, 본고사까지 열심히 살면 우리들이 원하는 길을 갈 수 있다는 그의 얘기는 일탈보다 선택을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열심히’ 하라고 한다. 항상 들었던 충고, 말을 알아듣던 그 순간부터 들어왔던 그 말들이, 전혀 새로운 말들이 아니었는데도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처음인 듯 들었다.

 

돌아온 다음 날부터 우리들은 약속을 한 듯, 열심히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들었다. 굳이 풀 먹이지 않아도 다림질 한 느낌이 나는 칼라였는데도 풀 먹여 빳빳하게 다림질을 했다. 일요일 아침이면 칼라 3개를 숭고한 제사 의식처럼 빨아 다림질하는 내 모습이 신성하게 보인다고 식구들은 놀렸다. 예비고사를 치른 고3은 빨간색만 빼고 다 입을 수 있지만, 우리들은 학교 지정 오버코트 이외는 입지 않았다. 본고사를 치른 날도 우리는 교복을 입고 갔다. ‘열심히 오늘을 지키려’ 고리타분한 교칙을 열심히 지켰다. 학생의 본분에서 최선을 다하는 순간들이었다. 졸업식이 2월 10일경이었다. 그날까지 엄친딸로 지냈다. 그때 선택했던 ‘오늘’은 평생을 가도 지워지지 않는 오늘이 되고 있다. 참으로 열심히 살았던 기간이었다.

 

그 친구들.

이미 한 명은 운명을 달리하며 우리들로 하여금 숙명론자가 되게 해줬고 다른 한 친구는 선택하여 의사에게 시집갔다. 나머지 한 친구는 참 인생을 선택하여 아이 두 명을 꿋꿋이 잘 키워내 우리를 놀라게 한다.

 

풀 먹인 교복칼라의 뒷모습은 잔영을 남긴 채 거실 문 안으로 사라졌다. 우울증도 그녀의 뒷모습을 따라 가버렸다. 인생의 예비고사가 끝났음을 그녀는 일깨워주었다. 본고사장으로 가려고 일어섰다. 단정하게 중년이라는 교복을 입고.

 

 

장미혜 (수필동인 캥거루 회원)

Previous article한국식 영어발음
Next article사라진 삼계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