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하세요

“3분 단축할 수 있습니다. 원하시면 선택하세요.” 록데일 (Rockdale) 축구장으로 가는 길, 집을 나와 사거리 신호등에 다가가니 내비게이션 여자음성이 들려온다. 순간, 3분 단축이라면! 하는 생각에 바로 선택했다. 내비게이션이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오른쪽으로 턴 하라고 한다. 기계의 지시대로 가다 보니 이미 고속도로에 진입하였다. 후회와 함께 돌아가기도 어렵게 되었다. 도착지점까지의 거리가 42 키로미터이었는데 50키로미터로 순식간에 8키로 미터가 늘었다. 조금 지나니 ‘띡’소리와 함께 4불 20센트 고속도로 사용료가 부과되었다. 100키로미터 이상으로 쌩쌩 달리는 차량들 속에서 나도 할 수 없이 속도를 내며 달렸다. 원래대로 캠시 지역을 통과하는 도로로 갔으면 몇 분 늦게 도착하겠지만, 주변도 둘러보며 사람 표정들도 보아가며 가는 것이 내가 바라는 길이었는데 내비게이션의 기계적인 제안에 솔깃하여 선택하였으니 할 말은 없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어느덧 4차산업에 들어온 모양이다. 이제는 인간의 많은 영역이 기계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처음 내가 호주 도착했던 1997년, 시드니의 교통지도책인 UBD를 펼치면 얼마나 자세하게 잘 표기되어 있는지 주소만 알면 어디든 잘 찾아 갈 수 있어 감탄하곤 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은 내비게이션에 주소만 입력하면 가는 길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도착 시간도 예측하여 알려준다. 내비게이션은 언제나 3 가지 루트를 알려 주고 인간으로 하여금 선택하도록 하며 무조건 1분이라도 빠른 길을 먼저 알려준다. 때로는 오늘처럼 가는 도중에 더 빠른 길이 있다고 알려주며 인간의 선택을 기다린다.

 

새로운 직장생활 1년이 벌써 지났다. 새벽 출근길에 나는 매일 똑같이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키고 운전한다. 매일 똑같은 3가지 길이 나온다. 매일 같은 선택을 하지만 내비게이션은 아랑곳 없이 처음처럼 한결같다. 집에서 나가면 오른 쪽으로 턴 하라고 알려 준다 300 미터 지나 첫 번째로 턴하라고 한다. 왼쪽 차선을 이용하여 3 키로미터를 지나 왼쪽으로 턴하여 윈드사 (WINDSOR) 로드로 진입하라고 말한다. 내비게이션에도 한국식 발음이 입력되었는지 영어판 내비게이션에서는 윈저 로드라고 발음하는데 이 기계는 언제나 d 발음을 한다. 내가 꼭 그렇게 발음하여 호주인들이 못 알아듣고 또 묻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똑같이 한국어 내비게이션을 사용한다. 어두운 새벽 길 나 혼자 아닌 비록 기계음이긴 하지만 상냥한 한국 여성의 음성을 들으며 함께 출근하는 느낌이 든다.

 

지난 토요일 오후, 새로 오픈했다는 펜리스 (Penrith) 쇼핑센터에 갔다. 처음 가보는 웅장한 지하 주차장에 자연스럽게 들어가 주차했다. 그런데 깜빡 했는지 파킹 티켓 없이 들어왔다. 당황스러워 한 매장에 들어가 물으니 이곳 센터는 주차 티켓이 필요 없는 자동 주차시스템이라며 설명해준다. 들어올 때 자동으로 차량 넘버가 입력되고 나갈 때에 자동으로 시간계산이 되어 처리된다고 한다. 앞으로 건설되는 대형 건물은 모두 같을 것이라고 한다. 쇼핑을 마치고 출구 쪽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내차 넘버를 입력하니 주차한지 2시간 10분이 되었다고 한다. 50분 더 남았다는 것까지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한참을 달리니 고속도로를 나가 일반도로에 진입하라고 상냥한 목소리로 안내한다. 순간 또 ‘띡’소리와 함께 3불 20 센트가 부과된다. 열이 확 올라오지만 어찌할 수 없다. 정말 몇 분이나 단축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고속도로 사용료 7불 40센트를 지불하고 또 휘발유를 더 쓰고 8키로미터를 추가하여 달려왔다. 그것도 주변은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고속도로만 죽을 둥 살 둥 달려왔다.

 

인간이 가장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제4차 산업시대에 제대로 잘 살아가려면 내비게이션과 같은 여러 종류의 인공지능 (AI) 기계들과 잘 어울려 지내야 할 모양인데 선택은 항상 우리에게 먼저 주어진다.

 

 

장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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