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제티에서

오후 늦게 롱제티에 오니하늘이 한차례 더 먹구름을 깔아 놓는다펠리칸 먹이 주는 시간에카메라들 함성처럼 터질 때 문득올려다 본 하늘이글거리던 햇살도 노을도 잠시열렸다 닫히는 조리개 속으로빠르게...

추석 2020

-경에게  작은 오두막에서 기억이 자란다 끓는 연탄불에 물솥을 올리고 외출 나갈 작은 오빠 운동화 두 짝을 솥뚜껑 위에 엎어놨다 따뜻해진 발은 이미 청군이 되어 서울역이나 남산까지 한달음에...

고양이 부고

산문이가 죽었어요 J 선생에게서 카톡이 왔다적도를 넘어남반부로 배달된 죽음 바람이 목덜미를 잡던 어느 날 냥이 세 마리와 함께 사는 K 시인을 만났다. 우리는 부개역 외곽 논둑길을...

붉은 꽃

가려움증으로 물든 베개 위에 핀 붉은 꽃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요열살 사내아이* 물음에 친절한 여의사 말하길엄마 배 속에 들어갔다가 다시태어나야 가능하단다 나 잘못 태어난 거야애야, 네...

안개 속에서

안개 속이다. 산을 보러 왔는데 한 치 앞도 가늠하기 힘들다. 축축한 공기 사이로 흙 냄새와 나무 냄새가 반긴다. 눈앞에 푸르게 펼쳐져 있을 블루마운틴의 경치를...

칼집

아내가 시장에서 사 온둥근 호박에 칼집을 내달라고 한다작게 칼집만 내주면 혼자 자를 수 있다고 한다호박은 쉬이 칼을 허락하지 않았지만칼집이 나자 이내 갈라지고숭덩숭덩 썰려 나갔다 칼집이...

중독 (콩트)

재수가 현관문을 들어서자 아내가 반색을 하며 반겼다.“아, 배고파 죽는 줄 알았네. 밥 먹읍시다, 밥! 밥만 푸면 돼요.”“아, 아 아냐, 난 생각이 없어.”“해가 동쪽에서 뜰...

핵(核)인간의 합창

‘핵인간’은 헨리 나우웬의 저서 <상처 입은 치유자>에서 알게 된 개념이다. 널리 쓰이는 ‘핵가족’이라는 용어에서 핵의 의미를 차용하여 주변으로부터 단절된 현대인들을 지칭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원두막

흔적조차 없다. 무성한 풀로 뒤덮여 울타리도 사라졌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훑고 스쳐간다. 어렸을 적 볼 빨간 아이가 헉헉거리며 오르던 그 길은 어디로 갔을까. 코 흘리는...

길상사

- 성준에게 옛 길을 따라 걸었지먼, 그 길어떤 단풍으로든 물들었을 템플 스테이를 지나당나귀 울음소리* 들리는 나무 아래붉게 붉게 떨어지는사랑 이야기 어쩌다 이는 시드니 바람엮을 때마다밥이나 먹자는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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