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콩트)

재수가 현관문을 들어서자 아내가 반색을 하며 반겼다.

“아, 배고파 죽는 줄 알았네. 밥 먹읍시다, 밥! 밥만 푸면 돼요.”

“아, 아 아냐, 난 생각이 없어.”

“해가 동쪽에서 뜰 일이네. 밥을 굶을 만큼 뭔 좋은 일이라도 생겼수?”

“허, 그런 일이 있어.”

재수는 냉수 한 잔을 마시고 밥 푸는 아내를 뒤로하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조금 후 방문 틈으로 아내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또 잡았군, 또 잡았어, 하루가 멀다 하고…….”

살며시 거실로 다가간 재수는 숨을 죽이고 아내 뒤에서 화면을 주시했다. 오후 7시 지방뉴스였다. 경찰이 수갑을 채운 사내 둘을 앞세우고 걸어가는 비닐하우스 농장 한

편에서는 산더미처럼 쌓인 대마초가 불타고 있었다. 대마초를 재배하다 형무소에 구금되어 있는 베트남 친구의 얼굴이 그 불길과 오버랩 되자 재수는 간이 서늘했다. 그 때 부정 탄다며 아내가 채널을 바꾸어버렸다. 그리고 재수를 노려보았다. 재수는 아내의 얼굴이 너무 무서웠다.

“육지와 바다로 그리고 상공으로…… 것도 모자라 불법재배까지 해대니…… 세계 1위 마약국가 명예를 못 벗어나지, 호주가!” 아내가 중얼거렸다.

재수는 못 들은 척 했지만 가슴에서는 북소리가 붕붕 울렸다. 슬그머니 안방으로 돌아간 재수는 노트북을 켰으나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것 같았다. 마치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을 보고 있는 것처럼 오늘 펍에서 만났던 애보리진의 얼굴이 모니터에 아른거릴 뿐이었다. ‘19년 전에 내가 구입해 상용하던 값에 비하면 거의 공짜나 다름없지 않나? 이번엔 손에 냄새 묻힐 것도 없고. *푸쉬어에게 곧바로 넘기면.’ 생각이 설레발을 쳤다.

재수는 푸쉬어에게 전화를 걸었다. 만나자고. 지금이 아니라 내일 오후 세시, 헌터공원 검트리 아래서. 푸쉬어는 무슨 일이냐고 몇 번 묻더니,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새끼가 눈치 하나는 빠르거든. 하긴 눈치까지 없다면 그 새끼도 지금 베트남 친구와 같은 감방에서 썩고 있겠지. 쉰 봉지를 모두 푸쉬어에게 넘겨야 하나? 절반 정도는 쥐도 새도 모르는 곳에……” 머리가 과열된 엔진처럼 뜨거웠다. 부엌에서 사기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재수는 아내가 점점 더 두렵게 느껴졌다. 속된 말로 하느님보다 겁났다.

오늘 오후 펍에 갔을 때였다. 못 보던 애보리진 장정 셋이 눈에 띄었다. 평소 재수가 즐겨 앉는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그들을 보자 은근히 부아가 끓어올랐다. 흑맥주 한 잔을 들고 사회적인 거리두기 한 테이블을 건너뛰어 앉으며 벽을 바라보았다. 자키를 태운 3번 말이 돌풍처럼 선두를 달리는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두 마디의 단어가 벌침처럼 귀청을 쏘았다. 재수는 얼떨결에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어차피 맥주를 마시려면 마스크를 벗어야 했다.

“똥(shit), 오 달러.”

애보리진은 자신이 한 말에 스스로 놀라 목을 빼고 주변을 휘휘 둘러보기까지 했다. 그 바람에 애보리진의 눈과 재수의 눈이 극명하게 마주쳤다. 녀석이 흠칫 놀랐다. 그러고선 마주 앉은 두 일행을 손짓으로 불러 모아 고개까지 숙이고서 소곤대댔다. 그것도 모자라 재수가 앉은 방향의 입가에 손바닥을 세웠다. 도대체 무얼 시부렁거리는지 도통 들리지 않았다. 들어봐야 그것이 애보리진 말인지 뭔지 알아듣지 못할 것이지만, 그들을 힐끔대며 귀청의 안테나를 최고로 높였다. 하기야 재수에게 두 단어, 쉿(shit) 오 달러 외에 다른 말은 아무런 흥미도 의미도 없었다.

재수는 다리를 떨었다. 두 단어가 품은 은어(隱語)의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정말 한 봉지에 오불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일어섰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발목을 잡았다. 암갈색피부의 바텐더 아가씨까지도 그들과 한 패거리로 보였다. 그들에게만 유난히 더 친절하게 굴고 맥주도 꾹 꾹 눌러서 따라 주었다. 농담을 주고받으며 치아가 보이도록 웃어주는 것도 재수에게 하는 것과는 무척 달랐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일어나겠지.’ 재수는 애보리진을 놓칠세라 맥주가 목구멍에 넘어가다 튀어나왔다.

재수의 직감을 적중시키며 애보리진이 일어섰다. 애보리진이 가다 말고 돌아서서 일행에게 몇 마디 귓속말을 주고받더니 계단이 있는 후문을 향해 재게 걸어갔다. 재수는 벌떡 일어나서 그를 따라잡았지만 자칫 녀석을 놓칠 뻔 했다. 재수는 경주마처럼 달려가 옷자락이라도 붙들 듯 팔을 앞으로 쭉 뻗으며 그를 불러 세웠다.

“아, 그것? 한 봉지에 오 불 맞습니다.” 애보리진이 대답했다.

“현, 현 현금으로 선불을……?” 재수의 혀가 떨렸다.

“아닙니다. 몇 봉지나……?”

“열, 아니 스무, 아니 서른…… 오십 봉지.”

“돈은 바텐더 ‘나란기’에게 맡겨 주시죠.”

녀석은 마치 수배용의자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황망하게 달아나버렸다. 애보리진은 볼캡을 삐딱하게 쓰고, 귀저기를 찬 **왈나비 그림이 등에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곳곳에 구멍이 뚫린 카키색 트렁크 바지를 걸치고 있었다. 그리고 조리 사이로 나사처럼 굽은 발가락이 보였다. 얼마나 바쁘게 쉿(shit)을 팔고 돌아 돌아다녔으면? 재수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껄껄 찼다. 피부는 암갈색보다는 흙색에 더 가까웠다.

상가건물의 ATM에서 현금을 찾으면서 재수는 고개를 들었다. 푸쉬어가 전깃줄에 걸쳐놓은 운동화에 앉아 있는 시커먼 까마귀를 보자 19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내 몰래 숨어서 ‘대마초’를 피웠던 쥐새끼 같았던 자신의 과거와 두 차례의 극단적 선태까지 해야 했던 운명까지. 재수는 바닥에 꿇어앉아 구두의 안창을 들추어서 그 속에 돈을 숨겼다.

“한 번 중독이 되면 정신과 영혼에까지 들러붙어 지옥까지 따라가는 악마의 각성물질. 이번엔 상용자가 아니라 비즈니스야. 이혼 당할 일 있어, 입에 대게.” 뇌의 엔진은 식을 줄 몰랐다. 방으로 들어온 아내가 무슨 말을 혼자서 중얼 대냐고 물었다. 재수는 간이 뜨끔했다. 자는 척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 썼다.

양쪽 길을 따라 민들레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경마장 안으로 들어섰다. 필드는 물론이고 잔디밭까지 발 디딜 틈 없이 말똥이 깔려있고, 펍에서 본 애보리진이 말똥을 긁어모아 부대에 퍼 담고 있었다. 질척질척 구두에 들러붙는 말똥을 발길질로 털어내며 애보리진에게 달려갔다. 퀴퀴한 땀을 쏟아내며 삽질을 하고 있는 애보리진은 재수가 코앞에서 불러도 반응이 없었다. 참다못한 재수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 순간 민들레 씨앗처럼 녀석이 허공으로 증발해 버렸다. 암전.

어디서 암말의 방귀소리가 구성지게 들렸다. 귀를 기울이자 경마 관중석 아래 창고에서 나는 ‘디저리두’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부아가 끓어오른 재수는 한 달음에 달려가 창고 문에 대고 발길질을 했다. “사람 살려요!” 옆에서 자다 발길에 차인 아내가 소리를 질렀다. 재수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걸고 입을 막고 소리쳤다.

“내가 꿈을 꾸었다. 똥…… 똥…… 꿈을.”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돼, 물론 아내에게도. 자랑을 하게 되면 누가 내 행운을 가로채 버리게 되거든.”

“아침도 안 먹고 어디가세요?”

“어, 어 그냥…….”

“애인 생겼수? 새벽부터…… 살다 살다 참 별일이네.”

재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슴이 뛰었다. 무작정 발길이 닿은 곳이 바닷가였다. 한 겨울 찬물에서 물개처럼 첨벙대는 서퍼의 무리, 휘청휘청 걷는 물새 떼들, 대양의 절규처럼 울어대는 뱃고동소리…… 모두가 비현실처럼 보였다. 검은 사막처럼 답답한 가슴을 끌고 등대를 향했다. 등대를 한 바퀴 돌아 ‘안작 브릿지’로 올라가 360도 뷰를 훑어보며, 거기서 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고인 물 같았다. 10분 전 9시, 시간을 계산하던 재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재수가 도착했을 때 펍 문은 아직 굳게 닫혀 있었다. 건물을 반 바퀴 돌아갔다. 혹시 애보리진을 만날 수 있을까, 두리번거리는데 냄새가 진동했다. 별안간 ‘똥꿈’이 기억났다. 재수는 빙그레 웃었다. 한눈에 봐도 사오십은 족히 되어 보이는 곡식자루 같은 말똥부대가 계단 아래 쌓여있고, 냄새의 진원지는 그곳이었다. 재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잠시 후 펍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재수는 담배를 발로 문질러 끄고 펍 안으로 단숨에 들어갔다. 나랑기는 재수가 건넨 돈을 세어보지도 않고 계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계단 밑에 가보세요, 오십 봉지 있을 겁니다.”

재수는 총알처럼 계단 아래로 뛰어가 쉿(shit)을 찾았다. 좁은 공간에 고여 있는 말똥 냄새에 정신이 아찔했지만 입으로 숨을 쉬면서 견디었다. 눈에 불을 켜고 구석구석을 확인했지만 눈이 먼 것도 아닌데 쉿(shit)은 씨알도 보이지 않았다. 짜증을 억누르며 펍에 있는 나랑기를 만나려고 서너 계단을 올라가는데 혜안(慧眼)이 폭죽처럼 터졌다.

“설마, 녀석이 눈에 쉽게 띄는 곳에 숨겼겠어?” 재수는 자신의 소리가 너무 커서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벽을 짚고 서서 말똥 부대 무더기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토한 후, 곧장 돌진했다. “냄새가 대순가, 역시 위장술이 전문가다워.” 행운이 자신을 방문 했다는 감격에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첫 째 부대를 번쩍 들어 올려 바닥에 내렸다. 그러니까, 첫 부대와 두 째 부대 사이엔 쉿(shit)이 없었다. “녀석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첫 부대 밑에다 그걸 숨겼겠어?” 두 째 부대를 드는데 심장이 조금 더 빨리 뛰었다. 그 사이에도 없었다. 셋 째 부대 아래서 발견하게 될 것이란 기대에 어깨춤을 추듯 부대를 번쩍 들어올렸다. 냄새는 더 이상 역겹지 않았고, 향긋했다. 셋 째 부대 사이에도 그것은 없었다. 네 째, 다섯 째……. 말똥의 분진이 들러붙은 재수의 얼굴에서 흑맥주 같은 땀이 흘러내렸다. 서른아홉…… 마흔여덟……. “마지막 부대 밑에 한꺼번에 똘똘 뭉쳐 넣어둔 모양이야.” 재수의 몸과 마음이 협력해서 속도를 높였다. “행운이 손짓을 하는데 서둘러야 할 것 아냐.” 마지막 부대를 옮기는 재수의 얼굴은 피가 역류해 토마토 같았다. “내가 바보인가?” 마지막 부대 밑 콘크리트 바닥에서도 쉿(shit)을 발견하지 못한 재수는 한탄했다. 재수는 곧 스스로를 달랬다. “실망하지 마. 누가 쉿(shit)을 말똥부대 겉에 던져놓겠어? 그가 멍청하다면 어떻게 쉿(shit)을 팔겠냐고? 단단하게 밀봉해서 말똥 부대 안 깊숙이 교묘하게 파묻어 놓은 게 분명해.”

재수는 부대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보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칼을 찾던 재수는 잠바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냈다. 단숨에 부대를 북 찢었다. 찢고 보니 쉰 째 부대였다. 부대를 뒤집어엎어 말똥을 모두 쏟았다. 쉿(shit)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가 마지막 부대 안에다 숨겼겠어? 아마 중간 어디쯤에 …….” 재수는 부대들을 원상태로 되돌려 놓기 위해 되쌓기 시작했다. 마흔아홉, 마흔여덟, 마흔일곱…… 어깨의 고통을 견디다 못한 재수의 입에서 악,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호주에서 삼십 년 목수 일을 했기로서니, 내 나이 일흔이면 아직은 청춘인데…….” 재수는 말을 하다말고 픽 쓰러져 얼굴을 말똥 부대에 파묻었다. 의식이 반쯤 달아나버린 재수의 얼굴과 목에 팔 할 정도 건조된 말똥이 빵가루처럼 묻었다.

한참 후 재수는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어? 돈 벌기가 쉬운가?” 재수는 원상복귀 되어 있는 첫 부대를 차키로 북 찢었다. 부대를 거꾸로 들고 흔들고 털었지만 팔 할 정도 건조된 말똥 외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두 째, 셋 째, 넷 째……. 공기보다 더 많은 말똥가루를 들이마신 허파가 펑, 하고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때 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뛰어 내러온 발소리가 재수 앞에서 멎었다. 나랑기였다.

“오 마이 갓! 도대체 당신 뭐 하는 겁니까?

“그, 그거요. 여, 여기 없는데요.”

“뭐라고요? 그게 그거잖아요. 쉿(shit), 오십 봉지. 봉지 당 오 달러.” 나랑기가 말똥 부대를 걷어차며 말했다.

 

*마약 딜러를 칭하는 속어(jargon). **캥거루과의 짐승

 

 

희미하게 살해 충동이 느껴지는 발라드 (단편소설 연재) | 온라인 코리아타운테리사 리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소설가·단편집 비단뱀 쿠니야의 비밀 / 어제 오늘 내일)

 

 

 

Previous article로드킬의 눈물
Next article문정인-에반스 교수 ‘한반도 평화해법’ 동영상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