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가꾸기

시드니는 요즈음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어 텃밭에 상추가 벌써 꽃대를 세우기 시작한다.

우리 집 식탁에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채소무침 때문에 ‘아시안 허브’를 사러 자주중국 마켓에 갔었는데 이제는 우리 텃밭의 채소만으로도 자급자족이 충분하다.

 

“어머, 상추가 예쁘네요!” 방문객들의 그런 인사는 “상추 좀 얻어 가면 안될까요?” 하는 무언의 바램을 담고 있다.

그럴 때마다 그 동안 모른 체 했던 것은 겨울에는 채소가 잘 자라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언제라도 나눠줄 수 있을 만큼 채소들이 성큼 자랐다.

마늘, 파, 상추, 파슬리, 배추, 돌나물, 쑥 등이 파릇파릇 탐스러운데 사실 우리 텃밭에는 바위가 많아서 농사가 잘 안 되는 채소도 있다.

그래서 “우리 집은 고추가 잘 안돼요” 하고 울상을 지으면 모두들 하하 호호 한바탕씩 웃는다.

 

호주에서 가꾸는 텃밭은 한국 채소를 손쉽게 살 수 없는 여건이라 상당히 인기가 있다.

채소의 씨앗이나 모종을 얻으려면 채소를 기르는 집에다 미리 부탁을 하고 시기를 잊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는데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는 주부들이라서 대부분 포기하고 만다.

그러니 채소를 기르면 당연히 교민들과 나눠 먹어야 하는 일종의 불문율이 생기게 되었고 주는 마음, 받는 마음 모두가 즐겁고 흐뭇하다.

 

한번은 친구네 집을 방문 했다가 뜻밖에 그 집에서 잘 자라고 있는 돌나물을 발견했다.

어린 시절 여름이면 무를 얇게 썰어 빨갛게 고춧물을 들여서 돌나물과 섞어 만든 새콤한 돌나물 물김치를 좋아했다.

묵정밭 귀퉁이 돌무덤 틈새에서 사슬처럼 얽히고 설켜 잘도 퍼져 나가던 노란 꽃이 피던 돌나물은 자생력도 대단했다.

꽃 모양은 별처럼 예뻤기 때문에 옛 추억에 젖어 친구가 곁에서 눈을 흘기건 말건 일단 두어 주먹 넉넉히 돌나물을 훑어왔다.

 

집으로 오자마자 바위가 많은 언덕배기에 흙을 덧뿌리고 듬성듬성 정성껏 꽂아두었더니 용케도 죽지 않고 모두 살았다.

겨우내 새파랗게 질려서 목숨을 부지하느라 애썼는데 이젠 너울너울 튼실해 져서 녹색 빛이 완연하니 화초로도 손색이 없다.

돌나물 바로 위쪽에는 나무 그늘이라 쑥을 심었다.

 

쑥은 작년 여름 느닷없이 여동생이 쑥을 캐러 가자고 성화를 하여 따라 나섰다가 캐온 결실이다.

아는 분이 알려 주었다는데 어번 (Auburn)이라는 곳에 틀림없이 쑥밭이 있다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였다.

호주는 한국과 달라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풀이나 나물 혹은 약초들이 거의 없다.

그런데 쑥이라… 그것도 개울 둑에 널린 게 쑥이라니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여하튼 그날,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바구니도 큰 것을 준비하고 둥둥 들떠서 길을 떠났다.

어번이라는 동네는 멀긴 하지만 일본정원이 있는 관광지로 잘 알려진 곳이어서 상쾌하게 차를 몰았다.

 

그런데 어번 한적한 길모퉁이에서 그만 죽어있는 시커먼 뱀을 본 것이다.

길에 뱀이 죽어 있는 것을 본 것은 호주에서 처음이다.

“어머, 뱀이 죽어있다!” 내가 소리치자 운전을 하던 여동생이 나에게 핀잔을 준다.

“웬 뱀? 그 시커먼 게 뱀이라고? 그거 타이어 찢어진 거야… 츠암내….”

‘아, 그런가! 하긴 가끔 타이어 찢어진 게 길가에 있긴 있더라!’

 

몇 바퀴를 돌긴 했지만 알려준 대로 개울가 둔덕을 찾아 차에서 내리니 우와! 무언가 새파란 것들이 강물처럼 끝없이 넘실대고 있었다.

‘설마, 저게 다 쑥일까?’

자세히 살펴보니 살이 퉁퉁하게 쪄서 좀 사나워 보이긴 했지만 쑥은 쑥이었다. 초창기에 호주에 살던 한국 할머니들이 쑥을 가져다 이렇게 어번 개울가에 쑥밭을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이다.

 

지금도 봄이면 뒷골목 여기저기에 코스모스 씨를 훌훌 뿌리고 다니시는 할머니가 있다고 한다.

이제 코스모스 꽃은 호주에서 생소한 꽃이 아니다.

여하튼 우리는 감격을 하면서 일단 쑥을 수확(?)하기로 하였다.

바로 그때 호주 레인저 (Ranger: 순찰대원)가 다가왔다.

“뭐 하는 거야?”

“이거 허브거든, 필요해서 좀 뜯어 가려고”

“여기 위험한데야. 여기 Black Snake (까만 뱀) 살아. 맹독이라서 물리면 3분 안에 죽어. 길가로 뱀이 못 나오게 정기적으로 약을 뿌리고 있는데 그냥 가는 게 좋지 않겠어?”

 

으앙! ‘그림의 떡이네… 어쩐지 너무너무 많더라니…’

‘그 넘의 까만 뱀이 좋은 건 알아서, 쑥밭에서 사는구나… 구렁이 같은 넘들!’

빈 바구니로 돌아오면서 울컥해서 동생과 대판 싸웠다.

“레인저 이야기 들었지? 내가 길가에 늘어져 있던 넘이 구랭이라고 했잖아! 아니라고?”

“알았어, 언니, 호주에는 까만 뱀도 있군. 눈도 좋아! 칫!”

그때 목숨 걸고 캐온 쑥 몇 포기도 우리 집 텃밭에서 가실가실 예쁘게 잘 자라고 있으니 볼수록 흐뭇하고 추워지는 요즈음이지만 마음만은 따듯하다.

 

 

글 / 권은혜 (글벗세움 회원·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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