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카

친구 모카와 오래 전 은퇴한 교수 할매들이 함께 서아시아 동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두 달 살기 여정이어서 러시아 변방과 우쿠라까지 다녀올 것이라고 했다.

일행의 가족들이 이번 여행을 모두 말렸다. 하지만 죠지아는 안전한 정교회나라의 한 도시로 거리마다 십자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설득했다.

그들은 두 번의 예방접종을 했고 신체검사에서 양호 판정을 받았다. 여기에 모카는 일행들에게 호감을 갖게 하는 마력이 있고 제일 웃 언니로 만사형통 통과자였다. 모카는 3년전 무릎에 철심을 박았는데도 퇴원 후 곧장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밤하늘 별을 헤었다는 사막으로 달려간 적도 있다. 가족들 중 정신과 의사인 딸이 제일 강하게 만류했지만 결국 터키 행 비행기를 탔다. 모카는 탐승 전 내게 “야호!” 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런데 이게 뭔가? 시커먼 가죽 의자에 홍싸리와 똥껍질이 널려 있는 것이 보였다. 세상이 온통 코로나 비상인데 이 할매들의 용기라니… “너 미쳤니? 미쳤어?”라며 전화에다가 마스크 쓰라고 냅다 소리를 질렀더니, 화투껍데기 세는데 정신 뺐다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죠지아는 터키와의 전쟁으로 아직도 도시는 총맞은 자국을 지우지 못한 나라이지만 사진 속 건물들과 노천 시장 사이를 누비는 사람들은 한가하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푸르거나 갈색 눈을 모두 크게 뜨고 수놓은 머릿수건을 팔랑거렸다. 낮은 산에서 불어오는 촉촉한 습기가 내게까지 끼쳐왔다.

“아! 가보고 싶다.” 순박한 거리의 웃음소리가 맴돌았다. 현지인들의 동그란 얼굴, 밀빛 피부, 수놓은 앞치마, 통통한 모습이 정겨웠다. 낮은 지붕 아래에는 커다란 십자가들이 그려져 있거나 매달려 있다. 마음을 이끄는, 정겨운 골목을 걷고 싶었다. 호텔비, 식비, 교통비가 유럽의 4분의 1이라니. 더욱더 가보고 싶다는 유혹을 받았다. 커다란 빵과 붉은 와인이 공짜라는 문구도 가게마다 걸려있었다. 풍경 속 낮은 언덕은 진초록 올리브 열매의 사각대는 소리와 잘 익은 포도 열매가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었다. 빨간 지붕을 얹은 ‘와이너리’를 배경으로 할매들이 죠지아식 앞치마에 수놓은 수건을 쓰고 함박웃음을 짓고, 거리를 누비는 키 작은 여자들의 초롱초롱하고 다정한 눈빛은 너무나 예쁘고 한가로워 보였다. 사진만 보아도 나는 그들 속에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마할리아 젝슨이 부른 ‘깊은 강 (Deep River)’을 들으며 막 잠이 들려는데 벨이 울렸다. 언뜻 바라본 시계는 자정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야, 흐흑!”그리고 뚝 끊어진 전화. “뭐 누구야? 모카니?” 모카는 지금 죠지아 덤브즈 병원 코로나 병동에 갇혀(?) 있었다. 그저께도 포도즙 틀에서 허벅지를 다 드러내놓고 신나게 춤을 추더니. 내가 다시 건 전화기 속에서 모카가 죽을 것 같다며 호소했다. 상비한 열 감지기로 체크를 하니 고열이어서 자발적으로 입원 요청을 했다고 한다. 절대 식구들에겐 비밀이라며 자기가 죽을지도 몰라 유언장도 썼다고 했다. 자기는 죠지아에서 화장할거라고도 했다. 내가 “미쳤어 미쳤어.” 외마디를 질러도 그저 울기만 했다. 의사가 당뇨도 있다면서 배에다 길고 두꺼운 주사로 찔러댄다고 했다. 내게 선물로 파주에 있는 밭을 준다고 했다. 유서에 썼으니 누구도 잔말 못한다고. 나는 너무 놀라고 우스워서 하마터면 오줌을 쌀 번했다.

중세기식 나무 마차를 타고 흥겨워하며 허벅지를 드러내놓고 시뻘건 포도주 틀에서 깔깔대던 그녀 모습이 아롱거렸다.

“아니 정말 코로나야? 이제 이별이 된다고?” 나는 서울로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 때 모카가 그건 자신이 두 번 죽는 거라며 서울에 연락하지 말라고 했디. 그녀는 유언장 써 놓고 왔다고 하며 꺼이꺼이 울었다. 마치 요단강 건너는 것 같다며 갈대숲 호수를 건너던 그녀의 사진을 생각했다. 정말 이 친구 요단강 건너?

코로나는 일행 중 혼자 걸렸다고 했다. 어제부터 굶었으며 황당하게도 큰 입원실에 지금 혼자 있는데, 병으로 죽기 전에 먼저 무서워 죽겠다고 한다. 밥을 먹을 수가 없다. 꼭 말똥 같은 덩어리를 몇 개 주는데 그게 뭐냐고 했다. 도대체 냄새가 역겨워 야채는 더 구역질이 난다고 했다. 일행은 일정대로 떠나고 리더인 레오(한국청년)는 자기 때문에 현지에 머물러 고맙다고 했다. 자기 죽기 전 레오에게 돈 좀 주란다.  내가 죠지아 총영사관에 연락해서 음식을 넣어주겠다고 하니 한국 뉴스에 자기 나오면 온 식구 망신이라며 화를 버럭 낸다. 맹물에 밥 말아 김치를 먹고 싶단다. 내가 알아본 병원 음식은 양고기를 향로에 묻혀 구운 것이고 채소는 진한 향내 나는 아랍 고유의 전통음식이었다. 오늘도 배에다 당뇨 주사와 링겔을 하루 세 번씩, 알약 24알, 미리 죽겠단다. 의사도 영어가 제대로 통하지 않고, 밖에서 레오가 넣어주는 물과 과일, 맨 빵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야! 너 말 못해? 거기 의사 영어 할거야. 너 예방의학 했잖아.”

모카는 이전 모카가 아니었다. 그저 늙은 할매였다. 긍정적인 그녀가 어린애가 되어 나만 겁주고 있었다. 그렇게 모카는 11일 간 현지 병원에 묶였고 계속 말똥과 토끼풀만 좀 삼킨다고 했다. 너 아직 안 죽어서 병원비 굉장하겠다고 하니 포천 땅 팔아서 가지란다. 체중이 5Kg이상 빠진 상태고 이제는 옆방에 가끔씩 간다고도 했다. 나에게 두바이 있을 때 그 말똥인지 소똥인지 먹어봤냐고 묻는 걸 보니 좀 살만 한 모양이었다. 그 음식은 ‘뗴까’ 라고 양고기 다져 구운 음식인데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이제 음성인 것 같은데 왜 퇴원을 안 시키는지 모르겠다며 화를 냈다. 같이 왔던 할매들은 지금 ‘준 세계여행’을 준비한다고 했다. 너도 합류하라고 권했더니 죠지아에서 선교를 하고 싶다고 했다. 옆방 환자들에게 한국 말로 기도를 해주고 있다고 한다.

죠지아는 아직 아픈 나라다. 러시아의 무력 침공으로 건물과 사람들이 상처투성이다. 그러나 밝고 따뜻한, 전 국민이 침례교인인 죠지아에서 나도 두 달 살기를 해보고 싶다. 태양을 과식해 피부가 밀빛이 되어 별명이 모카가 된 긍정 할머니다. 늙어도 생각이 젊은 모카는 지금 거제도에 묶여있다. 역시 두 달 살기다. 포천 땅은 잃었지만 나는 모카가 지금 거제도에 있어 좋다.

 

 

글 / 박은우 (글무늬문학사랑회 회원)

 

 

 

Previous article텃밭 가꾸기
Next article코리아타운 특별기획 : 돌돌 말아 한 입에 쏙! 파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