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으로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다.

엄마라는 존재가 무엇이길래 그 이름으로 성인이 된 자식의 인생에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는 말을 나도 모르게 쏟아내고 있었다.

“앤, 너 오늘 점심 뭐 먹었어?” 저녁을 먹고 있는 아들과 그의 파트너와의 대화가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내 귀에 들려왔다.

 

“뭐? 점심식사를 같이 하지 않았다고? 너희는 한 집에 살면서 식사를 같이 하지 않니?”

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피곤에 지친 나의 말투를 자존심이 강한 아들이 그냥 받아 넘길 리 없었다.

그럼 엄마 아빠는 항상 식사를 같이 하느냐며 그게 질문이냐면서 따지고 들려 하는데 난 꼬리를 바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들의 성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내 질문은 독립적으로 삶을 살아온 아들에게, 그리고 엄마와의 감정 분화가 오래 전부터 일어난 그에게는 사생활을 침범 당했다고 순간 느꼈을 수도 있었겠다.

아마 아들도 오늘 하루가 힘들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고 무심한 척 받아 넘기려는데 그다지 좋지 않은 기분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부정적인 마음과 긍정적인 마음은 동시에 공존할 수 없는 성질을 지녔다.

마음속에 부정적인 기운이 들어오자 모든 것이 우울하게만 보여진다.

‘지금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다 큰 아들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거지? 이제껏 할 만큼 해왔는데 이제는 저희들이 알아서 준비하고 해야 되는 것 아니야?’

 

생각해보면 아들이 내일 도시락을 싸달라고 한 적도 없고, 쇼핑을 부탁한 적도 없고, 순전히 내가 자발적으로 해주고 있는 것인데 괜히 앤까지 미워졌다.

내 컨디션 탓일까. 신체적 피로가 조건 없이 베푸는 평소의 즐거움을 가리운 셈이다.

 

내가 벌인 일이고 결국 자업자득인 셈이다. 자식들을 위한 희생으로 살아온 엄마의 모습이 내 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돌출된다.

내재된 나의 엄마가 예기치 못하게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것은 한국이 아닌 서구문화 속 현재 생활하고 있는 호주에서라도 그건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이제 앤은 손이 많이 가는 저녁상을 당연한 듯이 받는다.

우리가 베푸는 물질적인 것을 태연하게 일상처럼 받는 것 같다.

처음 볼 때부터 내 기대에 차지 않았던 많은 부분들이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내 딸이려니 생각하고 예쁘게 보려고 노력해온 나의 애씀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아들이 좋다고 하니까 받아들일 수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많은 부모의 마음을 겪고 나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식이 그 어떤 배우자를 데리고 와도 자기 자식보다 더 소중하게 볼 수 없는 나도 여느 부모나 다름없었다.

 

상처받은 우울한 감정을 누르고 앤에게 김밥을 잘 쌌다고 칭찬해주었다.

철부지 이십 대 조카들을 생각하며 그녀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나마 독립적이고 야무진 구석이 있는 것이 다행이다.

아들을 사랑해주고 생각해주는 그녀의 마음이 항상 고맙다.

 

이제 그들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아가게 두어도 된다는 것을 내 스스로에게 상기해야 한다.

그들의 특성을 바꾸려고 하는 시도는 어리석은 일이다.

이제 이미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자고 다짐하며 습관처럼 이것저것 아들이 가져갈 것들을 한아름 챙겨준다.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보자기에 쓸어 담아 싸주던 그 옛날 나의 엄마처럼…

 

아들이 그의 집으로 돌아가고 나만의 작은 평온을 되찾는다.

이 생에서 부모 자식으로 만난 이 특별한 인연 속에 존재해야 할 의존과 독립의 발란스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른 되기가 왜 이리 어려운 것인지,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이지 싶다가도 한 순간에 갈팡질팡 중심을 못 잡고 휘청거리기가 반복된다.

모든 것을 내려놓자고 욕심을 버리자고 마음먹고 다짐한 지가 그리 오래지 않았는데 마음만 먹고 행동에 옮기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겠지. 이런 나의 망각과 나약함을 어디에 꽁꽁 묻어놓아야 할까.

 

앞으로 우리에게 오게 될 다음 세대에 본보기는 아닐지라도 괜찮은 어른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끊임없는 마음공부, 오늘부터라도 다시 시작해야겠다.

 

 

글 / 송정아 (글벗세움회원·Bathurst High 수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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