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과 난

상가에 들어서니 야채 가게 맞은 편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 가보니 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삼층의 화분대에 큰 화분부터 작은 화분의 난 들이 자기 만의 색깔을 뽐내며 화려하게 피어 있다. 주로 여자들이 구경하고 있는 가운데 인자한 할머니 두 분이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익숙한 향기가 코에 살짝 들어와 주의를 둘러본다. 화분대 중간쯤에 우아하고 기품 있는 분홍색 꽃의 카틀레야 (Cattleya)를 발견한다. 화분 앞에 쓰여 있는 이름을 보니 우리 집에 있는 난과 같은 것이다. 나를 반기며 웃는 것 같아 꽃 앞에 서서 깊게 숨을 들여 마신다.

어느 날부터 남편은 필이 꽂혔다며 난 화분을 한 개, 두 개 사 오기 시작했다. 향기도 없는 서양난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하루는 남편이 지도 책을 들고 와서 아는 지인이 알려 주었다며, 칼가 (Callga)에 전문적으로 난을 묘목 하여 파는 화원이 있으니 드라이브할 겸 같이 가자고 조른다. 고속도로를 한 시간 이상 달려 그곳에 도착했다. 간판도 보이지 않고 검은 천으로 둘러 싸인 큰 천막 같은 건물이 보이고 옆에 빈 사무실이 눈에 띄었다.  반쯤 열려 있는 화원 안은 난 꽃 천국이었다. 수많은 난들이 화분 가득 꽃을 안고 우릴 반긴다. 감탄을 연발하며 사방을 둘러보는데 ‘헬 로우’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반바지 작업복 차림의 키가 큰 남자가 우리 앞으로 온다.

관리인 케빈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둘러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르라고 한다. 향이 있는 난이 있느냐고 물으니 그런 난은 다른 난과 구별하여 관리한다며 옆의 작은 천막으로 안내한다. 셀 수도 없이 많은 화분들이 진열되어 있다. 숨을 쉴 때마다 여러 가지 향이 입으로 코로 들어온다. 난마다 향이 다르다면서 화분을 들어 보이며 이름을 알려 주지만 그냥 향에 취해 그를 따라다녔다. 은은한 초콜릿 향, 매운 맛을 톡 쏘는 향까지 한번도 맡아 보지 못한 향들이 나를 매료시킨다. 그의 일하는 시간을 많이 빼앗은 것 같아 우리가 알아서 보겠다고 해도, 향이 있는 난은 고가이고 대체로 키우기 힘들다며 화분에 꽂혀 있는 설명서를 뽑아 들고 열심히 설명한다. 영어도 서투른 동양인이 서양난에 관심을 보이니 그도 신기했나 보다. 향기에 취해 화분 몇 개를 바구니에 담아 보니 집에서 남편에게 다짐했던 금액을 나 스스로 초과하고 말았다. 그는 우리가 산 난을 컴퓨터에 입력해 놓았으니 언제든지 질문하라고 한다. 또, 본인이 연구하고 있는 난의 꽃 모양과 향을 설명하면서 앞으로 난 애호가 들에게 새로운 난을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몰입하여 일하는 사람은 본인도 행복하겠지만 지켜보는 사람도 즐겁고 흐뭇하다. 전문적인 지식과 열정으로 난을 사랑하는 케빈의 진지한 모습에서 진한 향기가 났다.

난들은 해마다 아름다운 꽃과 향을 선물해 주었다. 그 중에서 카틀레야가 가장 나를 매혹시켰다. ‘서양난의 여왕’이라고 하는 이 꽃은 크기가 나팔꽃만 하다. 향은 은은하면서도 고급스럽다. 어느 비싼 향수가 이 향을 흉내 낼 수 있을까?  사진에 담아 한국 친구에게 자랑하기도 하고 어린 손주가 만질까 조심하며 키웠다. 몇 년이 지나니 꽃의 사이즈가 작아지고 새 줄기가 올라와 화분이 작아 보인다. 분 갈이용 흙도 사고 케빈이 연구하는 난도 궁금해서 다시 화원에 갔다. 사무실에 앉아 반갑게 맞이하는 그를 보고 나는 너무 놀라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반바지를 입은 왼쪽 무릎 밑으로 다리가 없었다. 그는 수술한 자국이 선명한 무릎을 만지며 당뇨 합병증으로 수술한지 일년이 지났다고 한다. 오십 대 중반으로 건강해 보였는데…. 모자 밑의 잘 생긴 그의 얼굴 보기가 민망했다. 목발과 휠체어로 불편없이 일한다고 하면서 안내하는 그는 장애인이라는 그늘은 조금도 없이 친절하고 씩씩했다. 비료와 흙을 사고 그가 추천하는 벽걸이용 하얀색의 난 화분을 하나 샀다. 집에 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지만 난을 사랑하는 그가 화원에서 계속 일하게 된 것이 정말 다행이라며 마음을 바꿨다.

외출하고 돌아오니 남편이 베란다에 화분을 갖다 놓고 분 갈이를 하고 있다. 귀한 난들이라 잘 키워서 친구들에게 나눠 주자고 한다. 분 갈이를 하다 잘못되면 어쩌나 조심스러운 마음에 카틀레야는 손대지 말라고 했다. 몇 달이 지나자 분 갈이한 난들이 잎사귀가 까맣게 타 들어가는 모습이 발견되고 나중에는 줄기마저 조금씩 말라갔다. 꽃이 필 시기인데 봉오리도 안 보인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가 된 셈이다. 남편은 유투브를 찾아보다가 그것도 안 되는지 화분을 갖고 케빈에게 가보자고 한다. 그냥 약속 없이 방문할까 하다가 명함을 찾아 전화를 했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자였다. 케빈은 이미 일년 전에 사망했다고 알려준다.

안타깝고 울적한 마음으로 말라가는 난들을 들여다본다. 우리 집 난들도 자신들을 사랑했던 그의 죽음을 알고 슬퍼한 걸까?

 

글/ 이정순 (글무늬문학사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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