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

이제부터라도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드니 한인사회에 지금처럼 너무 많이는 말고 ‘언론’이라는 표현이 부끄럽지 않은 두세 개의 전문매체만 존재하면서 한인들의 삶에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경로잔치나 이웃 돕기 행사, 크고 작은 문화행사 등에 함께 하며 건강한 한인사회를 선도해나가는 일에 앞장설 수 있다면 최상일 텐데 그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하긴 속된 말로 ‘제 코가 석자’인 상황에서 그런 역할까지 기대한다는 건 현재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일 터입니다.

K팝, K드라마, K영화는 물론, 요즘은 K트롯으로까지 확대된 한류행사들도 하늘길이 열리면 한국과 호주의 한인엔터테인먼트회사들과 함께 한인매체들이 주최 혹은 후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트롯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임영웅, 영탁, 박군, 양지은, 홍지윤, 김다현, 김소연 등이 이곳 무대에 서게 하는 것도 사실은 한인매체들이 해야 할 일들 중 하나입니다.

지난 주말, 스트라스필드 라트비안극장에서 연극 ‘라이어’가 네 차례에 걸쳐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스트우드와 에핑에서 두 집 살림, 알고 보니 리드컴에서까지 세 집 살림을 하는 한 남자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로 한 시간 삼십 분 가까이 긴장(?)과 폭소를 멈추지 않았던 그날의 연극무대는 오랜만에 문화생활에 흠뻑 젖어들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어쩌다 보니 코리아타운이 호주한인극단이 올리는 다양한 무대에 미디어후원으로 수년째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뭐 그다지 큰 도움이 돼주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도 공연 팜플렛이나 무대 한 켠에 코리아타운 로고가 들어가기도 하고 이번 공연에서는 배우들의 대사 중에 예상치도 못하게 코리아타운이 두 번이나 짤막하게 그러나 자연스럽고 임팩트 있게 언급되는 보너스를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기자라는 직업에 걸맞지 않게(?) 여러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창 때는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하고 특강도 많이 다녔지만 그 밖의 다른 행사들에서는 꽁꽁 숨어 지내곤 했습니다. 호주에서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각종 행사에 공식초대를 받아도 뒤쪽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몰래 나오기 일쑤였습니다. 가끔은 주최측에 발각돼(?) 앞자리로 끌려나가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지만….

이곳 시드니에서도 저의 그 같은 버릇은 여전한데 한번은 한 문학회의 기념행사에 초청돼서 갔다가 갑자기 축사를 강요(?)받아 기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까짓 게 무슨…”이라며 손사래를 거듭해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경로잔치에 미디어후원으로 함께 했는데 주최 측 어르신들이 고맙다며 빵이며 과일이며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찾아오셨고 그걸로도 모자라 끝내 식사자리에까지 끌려(?)나갔지만 내내 좌불안석이었습니다. 그냥 제 스타일대로 소리 없이 조용히 함께 하는 게 가장 편안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일요일 ‘라이어’ 공연장에서도 저는 소리 없이 들어갔다가 슬그머니 나오려 했는데 언제 눈에 띄었는지 호주한인극단 임기호 대표가 반갑게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공연 팜플렛 한 장과 생수 한 병을 들고서….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도 또 다시 그분에게 걸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받았습니다. 제가 보태고 있는 미미한 힘에 비해 훨씬 큰 고마움을 표하는 게 오히려 쑥스러웠고 앞쪽에 마련된 좋은 자리 또한 과분한 배려였습니다.

저로서는 별로 문화적이지 못한 저 때문에 평소 그런 자리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아내가 오랜만에 문화사치를 했다며 좋아하는 것과 우리와 함께 했던 선후배 지인 일행들 모두도 유쾌하고 즐거운 얼굴이어서 충분히 행복하고 고마웠습니다.

그냥, 평소에는 잊어버리고 있다가 아니, 포기하고 있다가도 이런 기회가 되면 문득문득 아쉬움과 함께 욕심 그리고 안타까움이 생기곤 합니다. 거창하게 ‘언론’이라는 타이틀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크고 작은 한인사회의 유익한 행사에 좀더 건강하고 편안하게 함께 하는 코리아타운이 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작지만 큰 꿈이 언제쯤 이뤄질 수 있을지 아쉬움이 부쩍 크게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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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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