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

고국에 살고 있는 여든 살 형님이 노래를 보내왔다. 오래 전에 아내를 잃은 내 형님은 홀로 산다. 여든 인데도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음악도 늘 곁에 두고 있다. 틈이 나면 주변을 산책하고 휴일이면 함께 늙어온 친구들과 남한산성에도 가고 높지 않은 산도 오른다.

점심 때면 수시로 작은 형님이 운영하는 점포에 나가 즐겁고 맛난 외식을 한다. 자식들이 모시겠다고 하는데도 홀로 사는 것을 고집한다.

당신이 읽는 좋은 책이 있으면 나에게 보내주고, 좋은 글, 좋은 음악도 핸드폰으로 보내주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내 형님이 내게 보내주는 주된 내용은 사랑하라, 평온해라, 온유해라, 건강해라, 여유로워라 같은 메시지가 녹아있는 것들이다. 실제로 내 형님은 그렇게 살고 있다. 내 형님이지만 참 고운 노년의 인생을 산다. 나는 형님께 주는 건 없고 뭐든 받고만 산다. 그래서 가끔은 가슴이 아리다.

항상 그렇지만 이번에 보내준 노래 가사도 곱다. “봄 산에 피는 꽃이 그리도 그리도 고울 줄이야 /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정말로 몰랐네 / 봄 산에 지는 꽃이 그리도 그리도 고울 줄이야 /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생각을 못했네 / 만약에 누군가가 내게 다시 세월을 돌려준다 하더라도 / 웃으면서 조용하게 싫다고 말을 할 테야 / 다시 또 알 수 없는 안개 빛 같은 젊음이라면 / 생각만해도 힘이 드니까 / 나이든 지금이 더 좋아… / 그것이 인생이란 비밀 / 그것이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 / 봄이면 산에 들에 피는 꽃들이 그리도 고운 줄 /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정말로 몰랐네 / 내 인생의 꽃이 다 피고 또 지고 난 그 후에야 / 비로소 내 마음에 꽃 하나 들어와 피어 있었네 / 나란히 앉아서 아무 말하지 않고 고개 끄덕이며 /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하나 하나 있다면 / 나란히 앉아서 아무 말하지 않고 / 지는 해 함께 바라봐 줄 친구만 있다면 / 더 이상 다른 건 바랄게 없어 / 그것이 인생이란 비밀 / 그것이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

사람들이 나이 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주는 너무나 포근한 노랫말이다. 세상의 나이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나이 듦은 어떤 의미일까?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대접하지 않는다고 잔소리하고 트집잡고, 주위 사람들에게 시비나 걸면서 나이 듦이 무슨 벼슬인 양 정제되지 않은 폭력적인 언행을 남발하고 건들거리며 살아가고 있지나 않은가? 나설 곳 안 나설 곳을 구분하지 못하고 온갖 것에 끼어들어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무엇이 따뜻한 것인지, 무엇이 귀한 것인지, 무엇이 바른 것인지, 무엇이 베푸는 것인지 모르는 딱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꽃이 피는지 지는지, 안개가 들녘을 감도는지, 새가 노래하는지, 푸르른 산이 거기에 있는지, 둥근 달이 하늘 높이 떴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이 그저 먹고 자고 짜증 부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간섭하고 떠벌리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따스한 웃음으로 베풀 줄 아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가슴 속에 쌓여있는 아픔이나 섭섭함을 하나 둘씩 삭히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돌아오지 않는 시간과 기대를 가만이 내려놓는 잔잔함 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꿈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대로를 곱게 간직하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시기와 질투와 욕심은 버리고 포근하고 부드럽고 고운 것들을 품을 줄 아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차가운 겨울바람이 아니라 훈훈한 봄바람이 되는 겸손함 이다.

여든의 내 형님처럼 노년의 인생은 평온하고 따사롭고 나눌 줄 알아야 하는 거다. 그래야 늙음은 고운 것이고 아름답고 평온한 것이라는 걸 배우는 거다. 그래야 늙음은 자랑할만한 인생의 열매가 되는 거다. 그것은 나이 듦은 존중 받아야 할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곱게 나이든 사람은 고요하다. 사색하고 여유롭고 평온함을 찾는 지성인의 삶에 충실하다. 격려하고 다독이는 삶을 공유한다. 어떠한 춤판에도 끼어들지 않는다. 흥이 나면 빙그레 웃음 지으며 어깨를 들썩일 뿐이다. 인생을 반추하며 늙음 앞에 겸손하다.

이제부터라도 내 형님이 보내준 노랫말처럼 세상의 모든 것들을 고운 눈으로 봐야겠다. 결코 늦지 않았다. 꽃처럼 웃고, 새처럼 노래하고, 구름처럼 자유롭고, 하늘처럼 평화롭게 살아야겠다. 그것이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이라고 하지 않은가!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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