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금의 함정

정의기억연대 (정의연)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대협)를 이어가는 시민단체다.

정의연은 30년동안 끈질기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실상에 대해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면서 일본의 만행을 전세계에 알리는 운동을 전개했다.

국민들에게는 ‘수요집회’를 열어 피해자 할머니들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극악함을 알리면서 ‘소녀상’을 제작해 국내는 물론 국외에 전시하며 세계사적 인권운동사를 일궈냈다.

정의연은 이 운동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일정보조금을 지원받는다. 그들은 여러 기업과 시민들에게도 후원금과 기부금을 호소한다. 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이 답지 하고 시민들도 십시일반 (十匙一飯)의 기부금행렬에 동참한다. 모아진 성금은 엄청나다고 한다.

정의연은 모아진 지원금, 후원금, 기부금을 바탕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지속하고,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쉼터’를 짓고, 할머니들의 편안한 노후생활을 지원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용수 피해자 할머니가 발끈했다. 기금사용내역의 투명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정의연이 성금, 기금을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쓴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는 “불쌍한 할머니들을 내세워 울궈먹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이용해 몇 사람이 사리사욕을 채웠다”고 분노했다. 또 “수요집회를 계속하면서 모금한 후원금, 기부금의 사용처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국회의원이 된 ‘윤미향’ 전 정의연 이사장을 거론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정의연은 부랴부랴 해명을 내놨다. 정의연은 “피해자 할머니들 지원 사업비 항목은 후원금을 단순히 현금으로 전달하는 사업이 아닌,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에 쓰인다”고 했다. 여기엔 건강치료지원, 인권과 명예회복 활동지원, 정기방문 등 정서적 안정지원, 비정기적 생활물품지원, 쉼터 운영 등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산으로 표현될 수 없는 할머니들과 친밀감을 형성하고 가족 같은 관계를 맺으며 위로가 되려 한다”고 했다. 해명이 지극히 추상적이다.

정의연은 2017년부터 3년간 목적지정기부금을 제외한 일반기부수입 22억 1900여만원 중 41%인 9억 1100여만원을 ‘피해자지원사업비’로 집행했다고 주장했다. 나머지 59%에 해당하는 금액은 수요시위, 기림사업, 나비기금, 장학사업 등에 쓰였다고 했다.

그러나 쉼터 매입 문제, 윤미향 전 이사장 개인명의계좌로 후원금을 받은 혐의, 가족과 관련된 여러 의혹들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더불어 시민단체의 기부금 사용 방향과 방법뿐만 아니라 회계부정까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차제에 지역사회에 난무하는 많은 비영리단체들의 불투명한 주먹구구식 재정 관리도 개선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30년 위안부 피해자 운동이 폄하 돼 역사적 순수성마저 흐려질 수 있다는 염려까지 대두된다.

좀 유쾌하지 못한 얘긴데, 나는 후원금이나 기부금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내 경험치로는 대한민국에서나 교민사회에서나 후원금이나 기부금을 받고 쓰임에 대한 결과를 제대로 발표한 경우를 못 봤다. 모금운동을 하면서는 이러저러하게 쓰겠다고 미사여구를 곁들여 그럴듯하게 늘어놓지만, 그걸로 끝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10여년전만 해도 성격을 알 수 없는 단체의 성금모으기가 성행했었다. 특히 종교단체에서는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돕기 성금 모으기’를 연중 내내 전개했다. ‘북한동포돕기’도 있었다. 헌데 모아진 성금이 어떻게 쓰여졌다는 내용을 들어본 적이 없다.

후원금 잘 내지 않는 내 변명인지는 모르지만 그 쓰임의 깨끗함을 믿을 수 없기에 나는 후원금이나 기부금을 잘 내지 않는다. 그대신 자랑은 아니지만 길거리 예술가나 노숙자들 바구니 속에는 곧잘 푼돈을 넣는다.

정의연뿐만이 아니다. 어떤 단체든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한다 하더라도 후원금이나 기부금을 받으면 그 쓰임새를 명확하고 투명하고 자세하게 정리 공개해야 한다. 기부자들의 기부금이나 지출은 1원 단위까지 기재해야 한다.

남의 돈을 움켜쥐면 악마의 속삭임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후원금의 함정이다. 해서, 마음에 티끌 하나 없는 순수하고 진솔한 사람만이 후원금모금활동을 할 자격이 있는 거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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