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가 아침밥을 주지 않는다고 짜증을 부리며 주발을 내던져 박살이 났다. 할배는 쭈그리고 앉아 깨진 사기그릇 조각을 쓸어 담아 일어서는데 몸뚱이가 휘청거리고 무릎이 결리고 허리가 뻐근하다.
할매의 짜증처럼 아침밥을 챙겨주지 않았는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분명히 아침밥을 챙겨줬다. 계란프라이와 멸치볶음과 김치와 따뜻하게 덥힌 된장국으로 아침상을 주섬주섬 차려줬다. 할매는 맛있게 잘 먹었다며 고맙다고 인사까지 했다. 그런데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아침밥을 먹지 않았다고 트집을 잡고 행패를 부린다. 뭘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연초에 조금 전에 한말을 또 하고, 설거지하다 멍하니 TV앞에 앉아있고, 그러다가 신경질을 부리는 할매가 이상해 건강검진을 받았다. 의사로부터 할멈은 치매증상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대수롭지않게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한데 어느 날 느닷없이 엉뚱한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할매가 하던 여러 가지 집안 일들도 멈춰버렸다.
할배 자신도 얼마 전부터 매사 깜박깜박하는 걸 자주 느낀다. 아침에 부엌에 들어서면 어제 저녁에 챙겨 먹은 음식이 기억나질 않아 허둥댄다. 화장실 다녀오고 나서도 소등을 했는지 물을 내렸는지 순간순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때로는 냉장고 앞에 우두커니 서서 무엇 하려고 여기 서있는지 잠시 동안 생각이 나질 않아 끙끙대기도 한다. 할배 몸뚱이도 스스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움직임이 둔해졌다. 청력은 형편없이 약해져 조용한 대화는 알아듣지 못한다. 몸뚱이도 여기저기가 쑤시고 저리다.
할매가 아침밥을 먹지 않았다고 투정을 부리면 분명 잘 차려줬는데도 잠시 차려주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이러다가 자신이 먼저 할매를 기억하지 못하고 당신 누구야 할까 봐 두렵다. 그런 생각이 들면 설움이 몰려온다. 불안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더 나빠지기 전에 할매를 요양원에라도 보내야 할 것 같다. 점점 할매 보살피기가 두렵다.
정말 할매를 요양원으로 보내야 하는가. 내일 죽을 듯 멍하니 앉아 하루를 보내는 요양원에는 절대 보내지 않겠다고 혼자 다짐을 하지만 할매를 돌볼 다른 방법이 없다. 자꾸 스멀스멀 눈물이 난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낸단 말인가. 정작 헤어질 자신이 없다. 떠나 보내며 할매의 뒷모습을 바라볼 용기가 없다. 할매를 보내고 나서 왜 어떻게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할매를 볼 때마다 흘러버린 세월에 가슴 저린다. 할배는 웅크리고 지치면서도 용기와 의지와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왔다. 살아간다는 언덕이 너무 가파르고 아득해 주저앉아있기도 했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남자로 태어나 한 평생 멋지게 살고 싶었다. 옳은 것은 옳다 말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며, 떳떳하게 정의롭게 사나이답게 보란 듯이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못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살이였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덧없는 세상살이에 지치고 피곤한 몸뚱이를 달빛아래 앉히고 기울이는 소주잔은 쓰기만 했다. 소주보다 더 쓴 인생이 서러워 혼자서 아무도 몰래 소리 없이 눈물 없는 울음을 삼키기도 했다. 바위보다 무거운 삶을 내려놓지 못하고, 부엌 딸린 방구석으로 기어들어와 한숨을 삼키는 지아비 되어 쥐 오줌으로 얼룩진 천장을 올려다 보노라면 아득한 삶에 목이 메었다.
어둠이 흐릿해지는 새벽이 오면 아내의 감겨있는 눈을 들여다 보면서 눈으로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힘들지? 그렇게 묻지 않아. 그냥 살지. 그냥 서로를 쳐다보면서 사는 거야.” 그리고 아내의 지친 얼굴을 보면서 미안하다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할매는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과 어울려 이름난 맛집도 찾아 다니고, 커피 향기 좋다는 카페에 드나드는 것을 좋아했다. 할매는 사람들 만나는 것을 즐겼지만, 어쩌면 그보다 먹고 마시며 수다 떠는 시간을 더 즐겼는지 모른다.
할매는 그렇게 즐기던 만남을 멈췄다. 걷는 것도 힘에 부치고 허리도 부실해졌다. 세월은 할매로부터 외출과 수다를 빼앗았다. 유일한 취미이며 삶의 즐거움이던 만남을 멈추자 활기차고 분주하던 할매의 하루가 사라지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더 짙고 깊게 새겨졌다.
할배는 할매의 손을 잡고 한가한 걸음으로 동네 카페에 나가 커피를 주문하고 맛있어 보이는 케익을 먹으면서 하루를 보낸다. 급하지 않고 서두를 것 없는 황혼의 삶은 바람 같은 잔잔함이다. 둘만의 인생이고 둘만의 세상이다. 행복하고 평온하다. 남은 세월이 그렇게 흐르기를 바랐다.
할매를 만나 60여년의 긴 세월을 서로 사랑을 하고, 미워도 하고,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다독이면서, 헤어지면 못살 듯 의지하고 기대면서 살았다. 반백 년도 훨씬 넘은 세월을 뒤돌아서지 않고 함께 걸었다.
할배는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저물어 떠나는 생명이 평온하다고 생각한다. 세상 소풍이 진정 즐거웠다고 말할 자신은 없지만, 죽음이 그다지 두렵지는 않다. 하지만 기억을 잃어가는 할매를 생각하면 죽음이 서글프다. 할매가 평온하게 먼 길 떠나는 끝자리를 지키고 싶다.
저녁노을이 곱다. 아이처럼 할매 손을 잡고 천천히 카페로 저녁나들이 간다. 나란히 앉아 향기 짙은 커피를 마시면서 붉은 저녁노을 바라기를 한다. 살아있음이 축복이다. 물빛같이 반짝이는 세월이 감사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만 시간을 멈춰 세우고 할매 손을 꼭 잡은 채 그대로 돌하르방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