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시절에는 ‘크리스마스 때면 지팡이사탕이며 초콜렛이며 과자 그리고 선물을 준다’는 말에 친구들과 어울려 여기저기 동네 교회를 찾아 다니곤 했습니다. 물론, 부활절 달걀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특별한 신앙심도 없으면서 ‘밤 늦게까지 교회 독서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메리트 때문에 교회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기독교재단이 운영하는 대학에서는 1학년 두 학기 동안은 각종 기독교 과목들을 교양필수로 들어야 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꼼짝없이 채플 (Chapel)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뒤늦게 ‘종교의 자유’ 운운하며 투덜댔지만 학칙이 그러니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대학 2학년 가을에 만난 여자친구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습니다. 우리의 데이트 장소가 명동이었던 탓에 저는 종종 여자친구를 따라 명동성당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하얀 미사포를 쓰고 진지하게 미사에 참례하는 여자친구 옆에 혹은 뒤쪽에 멀찌감치 멀뚱멀뚱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명동성당이 주는 엄숙함은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종교가 없었지만 어머니가 오랫동안 절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 오신 날을 비롯한 불교행사 때 어머니와 함께 절을 찾곤 했습니다. 역시 불교에 대한 뚜렷한 뭔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어머니를 따라갔다가 절에서 주는 산채비빔밥이며 떡이며 각종 음식들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한 집안에 두 개의 종교가 함께 할 수는 없다.’ 흔히 발생하는 종교갈등… 하지만 마음 착한 제 여자친구는 결혼과 동시에 스스로 성당과의 거리 두기(?)를 시작했습니다. ‘훗날 언젠가는 나와 함께 꼭 성당에 다니자’는 조용한 부탁과 함께….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한 게, 아내는 그때부터 호주로 이민 오기 전 17년 동안 어머니를 모시고 꾸준히 절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아내와의 그 약속은 시드니에 도착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졌습니다. 남의 나라 땅이라서 그랬는지 어머니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동의를 하셨고 우리는 두 아이를 카톨릭 스쿨에 보내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하나 더 얹었습니다. 어머니도 이곳에서는 특별히 절에 다니거나 하겠다는 주장을 하지 않아 우리 네 식구는 매주 편안한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 때도 결석이나 지각, 조퇴를 끔찍이도 싫어했던 저는 미사 또한 모범생(?)처럼 성실히 임했습니다. 이전에 교회며 절이며 성당을 아무 생각 없이 기웃거릴 때와는 달리 진정한 신앙심 같은 게 솟아나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랬던 우리의 신앙이 비틀거리게 된 건 시드니 한인성당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생긴 15년 전쯤부터였는데 복잡한 심경으로 다니다 말다를 거듭하다가 꽤 오랜 기간 아예 성당을 끊고(?) 지냈습니다.
올 초부터 아내와 저는 다시 열심히 미사에 참례하고 있습니다. 남들처럼 기도도 열심히 하고 각종 행사에도 참여하고 그러지는 못해도 주일아침 성당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평화로워짐을 느낍니다. 옛날에 비해 이런 생각과 저런 고민이 많아진 요즘… 이래저래 얼굴에서 웃음기도 많이 사라진 기분입니다. 얼마 전 신부님 강론을 들으며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새삼스레 해봤습니다.
사순 제1주일을 시작하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권고하셨던 열 한 가지 사순절 단식 메시지가 담긴 카드를 무작위로 한 장씩 갖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걱정을 단식하고 하느님을 신뢰하세요.’ 이런저런 걱정이 많은 지금의 저에게 딱 맞는 메시지였습니다.
‘종교를 갖는 이유’에 대한 AI의 답입니다. ‘마음의 안정과 평안, 삶의 의미와 목표 부여 그리고 공동체 내의 소속감과 위로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을 통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윤리적 가치관을 정립하며 삶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힘을 얻는 정신적·문화적 토대로 작동합니다.’ 하느님께 기도할 때 ‘이것도 해달라, 저것도 해달라’ 부탁하는 게 아니라지만 저는 오늘도 “저희 가족 모두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해주세요”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경제적인 편안함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한 가지를 더 슬며시 끼워 넣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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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생. 한국 여성지 <여원> <신부> <직장인> <젊은엄마> 기자 및 편집부장, 호주 시드니 <코리아타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일함.


김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