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배심원 ②

오늘 오후, 재판이 모두 끝났다. 당초 6~7일 소요 예정이었는데 14일이나 걸렸다. 처음, 배심원들에게 배부된 기소장의 내용을 보곤 나는 영락없는 유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날이 지날수록 의혹이 생기기 시작했다. 각종 증거물인 사진, 핸드폰 통화기록, 최초 신고기록 등과 여러 증인들인 의사, 경찰, 친구들의 증언, 또한 여러 번 비디오 출석으로 진행된 고소인의 고소 증언 등으로 여러 날이 더 걸렸다. 그러던 중 처음 내 생각의 유죄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제 오후 모든 증인들의 증언이 끝난 후, 재판장은 우리 배심원들에게 내일 중으로 배심원 전원 평결의 결과를 제출하라고 한다. 어느 쪽이든 만장일치가 되어야 한다며, 만장일치가 안 되면 될 때까지 해야 한다고 했다. 배심원의 평결이 무죄이면 바로 끝나고, 유죄이면 재판장이 형량을 결정하게 된다.

 

어쩌다 배심원이 되어 “잘 다녀오세요, 우리 법조인님!” 이라는 아내의 정중한 인사까지 받으며 매일같이 파라마타 법원에 출근했다. 재판 첫날 정각 10시, 열두 명이 법정에 안내되어 배심원 석에 앉았다. 재판장이 거의 한 시간이나 배심원들이 숙지해야 할 내용들을 부담스럽도록 여러 번 강조한다. 그 다음, 검사가 배부하는 기소장을 읽어보니 에쿠나! 소리가 절로 났다. 기소 내용은 네 가지 혐의이며, 검사가 일어나 기소 내용을 주문했다. 첫 번째 기소 내용이 끝나자 피의자가 Not guilty를 외친다. 검사가 2번째, 3번째, 4번째까지 기소 혐의를 주문한다. 피의자도 그때마다 모두 Not guilty 라고 단호한 음성으로 대답한다. 검사와 피의자간의 결연한 음성으로 분위기가 무겁기만 하다. 재판장이 정회를 선언하고, 우리 배심원들은 옆 문을 통하여 배심원 룸에 모여 앉았다.

 

배심원 열두 명은 여자 네 명, 남자 여덟 명으로 구성되었다. 여자 두 명은 나이가 50~60 대인 것 같으며, 다른 두 명은 20대 초반으로 보인다. 남자는 20대 청년 한 명 말고는 모두 50대 안짝이다. 아마도 내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인다. 앉은키가 유난히 큰 사람이 서로 인사나 나누자며 자기소개를 먼저 한다. 돌아가면서 간단하게 인사하기 시작하여 내 차례가 오자 나는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며 영어가 조금 부족해 두렵기도 하다, 라고 간단히 인사했다. 젊은 여성 한명은 이곳에서 태어난 필리핀 사람이다. 한 바퀴 돌아 인사가 끝나니 무겁던 분위기가 좀 풀어졌다.

 

내 맞은 편 사람이 자기아이들은 K팝을 좋아하는데 누가 제일 유명하냐고 묻기에 ‘BTS’ 라고 대답하니 자기 딸도 ‘BTS’ 팬이라고 말하며 친근함을 표시한다. 조금 후, 그 옆의 남자가 자기는 서울, 부산을 가 보았다고 말하며 너는 누구를 좋아하느냐 묻기에 나는 ‘강~남 스타일’이라고 톤을 높여 말하니 갑자기 일어나 말을 타는 흉내를 내어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샌드위치가 점심으로 배달되어 각각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일회용 커피를 타고 있는데 젊은 필리핀 여성이 내 옆에 다가와 조그마한 목소리로 인사한다. “아저씨 안녕!” 나는 깜짝 놀라, 아니 너무 반가워 제대로 대답도 못했다. 오래 전부터 코리아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며 아저씨? 오빠? 라고 해도 되느냐고 묻기에 그럼, 그럼! 그런데, 아저씨 Yes! 오빠 No! 라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그 여성은 재미있는지 까르르 웃는다. 말 춤을 흉내 냈던 그 엔지니어는 혹,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생기면 자기에게 물어보라고도 한다. 열두 명중에 세 명이 나의 우군이 되었다는 생각에 배심원의 두려움은 사라졌다.

 

오늘 오전10시, 열두 명만 모인 배심원룸에서 이루어진 첫 발표시간이다. 나는 여러 날 몸이 뻑적지근했다. 내가 한 사람에 대하여 판단해야 하다니, 더구나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성인에게 내가 어느 잣대로 판단하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아프기도 했다. 고소인과 피의자의 얼굴이 오버랩 된다.

 

나는 Not Guilty 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여성 네 명 포함하여 여덟 명이 같았다. 여성 배심원 네 명이 모두 Not guilt 했다는 사실은 좀 의아스러웠다. 아무래도 여성 피해자를 의식했을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 첫 평결은 무죄 8: 유죄 4, 한 시간 후 10: 2, 두 시간 후 11: 1. 드디어 세시간만에 전원 합의가 되었다. 만약, 나의 평결이 소수 쪽이었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오전 중 끝날 것으로 예상했었는지 미처 준비 못했다며 간단한 점심이 급히 제공되었다.

 

배심원 평결 내용을 봉투에 밀봉하여 재판장에게 전했다. 오후 2시에 열린 전체 재판에서 재판장은 우리 배심원들의 평결 내용을 배심원 전원에게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후, Not Guilty! 라고 언도했다. 순간, 서있던 피의자가 그냥 의자에 무너졌다. 고요한 법정에 흐느끼는 소리만 들린다. 변호사가 한참을 토닥거려 겨우 진정 시킨 후, 다시 일어나 재판장을 향하여 인사하고 그리고 우리 배심원석을 향하여 인사하니 드디어 재판이 끝났다. 제일 먼저 배심원 열두 명이 퇴장하는데 피의자가 일일이 고개 숙여 인사한다. 나와도 눈이 마주치니 고개를 숙인다. 옆에 서있던 변호사도 우리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데, 양머리 모양의 그 가발이 고개를 숙일 때, 너무 숙였는지 앞으로 툭! 떨어져 나도 모르게 웃으며 법정을 나왔다.

 

 

장석재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수필가·제14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수상·수필집: 둥근 달 속의 캥거루·그림동화: 고목나무가 살아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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