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딸아, 니 엄마는 오늘도 골프 치러갔다. 너도 알지만 이 나라에서 골프는 누구나 즐기는 운동이다. 하늘이 뿔난 시어미 얼굴처럼 심술궂은 데도 개의치 않고 발걸음도 가볍게 나서더라.

자기 생각만이 정상이라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늙은 할멈이 유난스럽다고 수군거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건 니 엄마만의 행복한 세상이다. 니 엄마가 즐겨 하는 최고의 취미이고 운동이며, 함께 어울려 웃고 즐기는 수다의 광장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낙이다. 하나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희로애락의 세월을 건너오면서 하고 싶은 말들을 가슴에 가두고 살아왔지만 이젠 할말 다 한다는 여인네들의 한풀이 한마당의 뒤풀이 같은 것이다.

니 엄마의 골프 복장을 보면 너는 어떤 생각이 들지 자못 궁금하다. 니 엄마가 애용하는 현란한 색깔과 무늬가 제멋대로 엉켜진 스타킹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제멋대로인 것 같지만 질서가 있는 거다. 니 엄마의 골프용 치마는 강요하는 것들에 반항하며 머리카락 속에 피다 끈 담배꽁초를 끼워 넣고 고래 잡으러 동해바다로 떠나던 그 시절 젊음의 상징이었던 바로 그 치마다.

도둑 강도 폭력배 사기꾼 잡는 일엔 관심 끄고, 고래 잡는 일에 설쳐대는 연놈들만 박살내라는 높으신 나리의 엄명에 따라 경찰관들이 여인들의 드러난 허벅지가 얼마나 요사스러운지 줄자로 재던 우라질 바로 그 시절 치마다.

단속에 걸려 당장 즉결재판소로 직행했을 법한 짧은 치마를 거침없이 착용하고 나서는 니 엄마의 모습에 엉뚱하게 나도 덩달아 그 시절 혈기 넘치는 청춘인 것으로 착각한다.

그런 니 엄마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뒤에서 소리 없이 웃는다. 나는 비록 시들었지만 늙은 저 나이에도 저렇듯 젊게 사는 할멈이, 부인이, 아내가, 여인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어느 철학자는 사람이 건강하게 사는 비결은 ‘생각의 젊음’이라고 했다. 세월을 따라 육체가 늙는 것보다 생각과 정신이 늙는 것이 인간의 수명을 더 빠르게 단축시킨다는 거다.

니가 아는지 모르겠다만 니 엄마는 함께 골프 즐기는 여성 동무들 사이에서는 ‘왕 언니’로 불린다고 한다. 언니라고 불리는 자체가 생각의 젊음인 거다. 일흔 살을 벌써 넘겼으면서도 언니로 불리는 젊은 인생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냐? 여하간 그 나이에 푸른 초원을 배경 삼아 골프채를 휘두르는 풍경은 정말 환상적인 거다.

그런 니 엄마도 백인 할멈들에게는 비교가 안 된다더라. 여든을 넘긴 할멈들이 수시로 등장한다는 거다. 그 할멈들도 립스틱 짙게 바르고 짧은 치마 입고 골프채를 휘두른다고 한다. 아! 이 얼마나 황홀한 인생이냐!

니 엄마가 뭇 남성들을 설레게 할 듯 예쁜 모습으로 골프 치러 간다고 나설 때마다 니 엄마의 표정은 한없이 행복하다. 나이 들어서도 누구를 만날 설렘에 화장을 하고, 입고 나갈 옷을 고르고, 오늘 하루 펼쳐질 일들에 표정이 밝아진 니 엄마는 행복 자체인 거다. 여인은 어리든, 젊든, 늙든 화장할 때가 가장 평온하고 즐겁고 행복한 순간인 거다.

행복이 별거냐. 마음 편안하고, 즐겁고, 만날 사람 기다려지고, 뭔가 쿵쿵대는 설렘이 있는 것들이 행복 아니겠냐? 나는 아직까지도 지나가버린 것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쉬워하고 후회하며 힘겨워 하는데, 니 엄마는 저렇듯 즐겁고 행복해하는 나날들이니 내가 뭔가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대 로마의 서정시인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의 한 구절인 카르페 디엠 (Carpe diem)은 ‘오늘을 즐기라’ 혹은 ‘지금 이 순간에 충실 하라’ 등으로 인용된다. 한때 너도나도 이 경구를 삶의 명제처럼 떠안고 다녔다.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이라고 명언처럼 이 경구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정작 카르페 디엠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의미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나는 니 엄마의 그런 일상을 보면서 카르페 디엠의 진정한 의미가 바로 저런 삶 일거라는 생각을 한다. 스스로 만족하는 건강한 삶이야 말로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최고의 행복 아닐까?

딸아! 나는 새삼스레 골프 치러 나가는 니 엄마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소중한 삶을 배운다. 그렇더라,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더라.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그랬다 더라. “자신의 삶이 불행해지지 않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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