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 ‘동양고전 읽기 반’을 다니면서…

흐르는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암을 비롯한 갖가지 질병이나 여러 사고 등은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놓는다. 이민자들의 경우 호주의 복지시스템에 익숙지 않아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거기에 언어문제까지 겹쳐 더 어려움을 겪는다. 본 칼럼은 뜻하지 않게 만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전문복지기관의 도움으로 이를 잘 극복한 사람들, 그리고 사랑으로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호주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자 하는 뜻에서 마련됐다. 이번 칼럼에서는 카스에서 지원하는 그룹 중 ‘동양고전 읽기 반’의 최옥자 선생이 보내온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01_인생의 꽃은 20대도 30대도 아닌 60대부터?!

100세 시대라는 장수시대가 되고 보니 ‘인생의 꽃은 20대도 30대도 아닌 60대부터’라는 말도 나온다. 100세를 살았다 해도 한번 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열심히 평생을 산 사람도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점에서 인생은 어떤 면에서 누구에게나 공평한 부분이 있다. 그런 면에서 여건이 주어지는 한 최선을 다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누고, 만나는 삶은 의미가 있는 듯 하다.

카스에서 지원하는 그룹 중 ‘동양고전 읽기 반’이 팀 리더인 김춘택 강사의 봉사와 함께 9년 째 지속되고 있다. 김춘택 강사의 열정 넘치는 수업에 매주 참가하고 있는 최옥자 선생이 보내 온 동양고전 읽기 반에서의 즐거움에 대한 글을 통해 노년에 느끼는 ‘배움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흐르는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 떠도는 구름은 다시 볼 수 없네 / 늙은이의 머리 위에 내린 흰 눈은 / 봄바람 불어와도 녹지를 않네!

유수불부회 (流水不復回), ‘흐르는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라는 옛 시 귀절은 삶을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카스에서는 나이든 사람들의 고립을 막고 교제와 만남을 통해 즐겁고 행복한 삶을 유지하도록 솔잎 소셜서포트그룹 (운동, 영화감상, 세미나 등), 청춘시니어그룹, 동양고전 읽기, 봉봉시니어그룹, 붓글씨 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나는 동양고전 읽기 반에 지난 6년동안 꾸준히 나가 선인들의 생각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는다.

동양고전 읽기 반은 올해로 9년째 접어들고 있다. 처음엔 장소가 없어 카페에서 만나 공부를 시작했으나 다민족 문화 사업에 열정을 쏟는 카스에서 메도뱅크에 소재한 사무실을 2015년 11월부터 제공해 안정되고 쾌적한 분위기에서 어느덧 만 6년을 넘어 공부하고 있다. 편리를 제공해 준 카스 측에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02_풀어 쓴 대학한문 손자병법 이어 유몽영 읽기 이수

동양고전 읽기 반에서 그 동안 사자소학, 명심보감, 대학, 중용집주, 동몽선습, 격몽요결, 주해, 천자문, 논어집주, 맹자집주, 풀어 쓴 대학한문 손자병법에 이어 현재 유몽영 읽기를 이수했다. 손자병법을 이수하고는 책거리로 고스포드 (Gosford)로 가을 나들이를 간 적이 있었다.

책거리는 일명 ‘책 씻이’라고도 한다. 그 유래를 찾아보면 책 한 권의 공부가 끝나면 스승과 배움을 같이 하는 학우들에게 음식을 차려 대접하는 일로 학동의 학업 정진을 도모하는 것 외에도 스승의 노고에 답례하는 뜻이 들어 있고 학우들과 함께 자축하는 뜻도 포함된다.

이때 준비하는 축하음식으로 국수장국, 송편, 경단 등이 있는데 특히 송편은 깨나 팥 콩 등으로 만든 소를 꽉 채운다. 학문도 그렇게 꽉 채우라는 바람을 담았다. 오색 송편은 우주 만물을 형성하는 원기와 오행에 근거하여 오미자로 붉은색을 내고 치자로 노란색, 쑥으로 푸른색, 송기 (봄철에 물이 오른 소나무의 속껍질)로 갈색을 들여 빚어서 만물의 조화를 나타냈다고 한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책거리를 해야 할까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던 중 마침 <옥 구슬 은 구슬> 동시집을 펴낸 유성자 학우가 자축 겸 점심을 낸다 하여 고스포드에 있는 리그클럽으로 향했다. 하늘은 청명하고 공기는 맑고 시원했다. 맑고 푸르른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흰 구름을 비집고 얼굴을 활짝 내민 햇님은 찬란한 빛 속에, 그 날 동행한 23명의 학우가 둥글게 둥글게 하나됨을 담는다.

유유한 바다와 검푸른 숲으로 아름다운, 꾸불 길을 달리는 전철에 앉아서 한가롭게 정겨운 담소를 나눈다. 나는 젊은 날의 꿈과 갈망을 안고 찾았던 의암댐의 그리운 옛길, 등선 폭포 입구의 돌집, 경강대교 등 경춘가도 옆으로 펼쳐지는 북한강 풍경을 그 곳에서 만난다.

북한강을 따라 이어지는 경춘가도는 때론 삶의 타래로 옥죄어진 마음을 풀어내던 내 젊은 날 찾던 길이기도 하다. 젊은 날의 갈망이 내게도 있었다. 진리의 추구이든, 행복에 관한 것이든, 절대적인 사고가 결여된 뜬 구름이었든, 갈망은 나를 방황하게 했다. 내 생존 공간이 내 집 울타리 안이 전부였을 때, 또 내 좁은 사고 안에 갇혀 있을 때의 일이다.

 

03_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마음 속에, 기억 속에 오래도록

인생 100세 시대라 하며 인생 80을 만발한 꽃으로 비유한 건강잡지에서는 걷고, 배우고, 즐기고, 웃으며 자연, 친구, 책, 컴퓨터를 가까이 하라고 권하고 있다. 2남 1녀인 아이들도 다 둥지를 떠나 어쩌면 가을걷이가 끝난 늦가을의 벌판처럼 썰렁할지도 모를 마음 밭에 피울 꽃을 위해 이 지침의 씨앗을 뿌리며, 이젠 빛과 그림자로 얼룩진 삶에서 놓여나 자유로움과 평안함을 느낀다.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 책임감에서 해방되어 나만의 삶을 가꾸어도 되는 이 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

선현들의 지혜를 되새겨 보자는 의도로 시작된 동양고전 읽기 반 학우들은 거의 고희 또는 팔순을 넘기신 분들이다. 배움에는 정해진 나이가 없다는 말에 위로를 받으며 매주 월요일 기대하는 발걸음으로 배움의 장을 향한다. 그 내공이 내 노년의 삶을 성숙하게 이끌어가기를 소원하며 동행하는 이 발걸음이 참으로 감사하다.

돌아오는 길, 병상에 있어서 이번 가을 나들이에 함께하지 못한, 연세가 90세가 넘었으나 열정과 멋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김현주 학우 댁에 들려 위로 기도를 드렸다.

봄은 오고 가고 하건만 / 늙음은 한번 오면 갈 줄을 모르네 / 봄이 오면 풀은 절로 나건만 / 젊음은 붙들어도 달아나네

세월의 무상함을 표현한 유수불부회 (流水不復回)에 나오는 시 귀절이다. 꽃은 피고 지고 계절 또한 오고 가고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네! 가는 세월 붙잡을 수는 없어도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마음 속에,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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