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총량의 법칙

아주 오래 전에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김두식 변호사가 쓴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인권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 지금은 그 책의 세세한 내용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 책 내용 중에 재미있는 구절이 있어 메모를 해둔 적이 있다. 저간에 메모첩을 정리하다가 문득 발견했다. 내용인 즉 이렇다.

“지랄 총량의 법칙을 들어보셨나요?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동안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정해진 양을 사춘기에 다 써버리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그 양을 소비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죽기 전까지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돼있다는 이야깁니다”

‘지랄’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변덕스럽게 행동함에 대한 욕, 잡스러운 언행’이라고 설명돼 있다.

사춘기 때의 지랄이란 (지금이야 다르겠지만) 중고등학생 때 머리카락 길이는 2cm만 허용된다는 학칙을 무시하고 더부룩하게 길러 등교시간에 규율 담당선생에게 걸려 가위질이나 바리캉 세례를 받아 머리통에 고속도로를 만드는 지랄, 교복 치마 길이는 무릎을 덮어야 한다는데도 무릎 위 10cm이상을 고수하기 위해 치마를 말아 올려 핀으로 고정장치를 해두는 지랄, 수시로 수업을 말아먹고 PC방으로 내빼는 지랄, ‘마빡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이성친구라고 손을 움켜잡고 시내를 쏘다니는 지랄, 지들끼리 엄마 아빠를 찌질이라고 호칭하는 지랄 같은 것들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또 영어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고등학생 때 구레나룻이 유난 해 별명이 털보인 친구는 제 부모를 껍데기라고 표현하는 지랄을 떨었다, 못된 것들 하고 어울리지 말고 공부 좀 하라고 호통치는 찌질이에게 내 인생 참견 말라고 목소리 높여 반항하는 지랄도 흔했다. 청개구리 같은 지랄이 주종을 이룬다.

그런데 사춘기 때 지랄의 특성은 남에게는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해를 입으면 제 자신이 입는 것이지 타인에게 입히는 피해는 없다. 거기에다 그 ‘지랄 총량’을 아껴 두지 않고 금새 다 써버리는 특징까지 있다. 그러니 혹시 사춘기에 들어있는 자녀가 지랄을 떨어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춘기라 호르몬이 어쩌고저쩌고 떠들 필요 없이 그저 꾹 참고 기다리기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지랄은 끝나버린다.

문제는 그 지랄 총량을 얼른 다 써버리지 못하고 나이 먹을 때까지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이다. 왜냐하면 사춘기 때의 지랄은 남에게 피해를 거의 주지 않지만 나이 먹고 부리는 지랄은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나이 먹었을 때의 지랄은 늦바람이 나서 아내고 남편이고 자식이고 다 내팽개치고 두 눈이 뒤집어지는 지랄, 혼자 잘난 줄 알고 온갖 것에 참견하고 간섭하는 지랄, 거짓말과 꼼수로 과거를 포장하면서 카멜레온처럼 조석 변신을 밥 먹듯이 하는 지랄, 대화와 타협과 연대와 공존이라는 사회 구성의 기본 정신도 모른 채 이익과 욕심에만 매몰돼 상대의 주장과 의견은 들은 척도 않는 저능아의 극치를 보여주는 지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우월감에 빠져 주위를 온통 제 입맛대로 재단하려는 지랄 발광 등등이 있다.

늦바람이 나서 자녀들의 가슴에 불신과 미움이라는 씨를 뿌려주고 사랑과 믿음의 뿌리가 되야 할 가정이 부서지고 흩어지는 거야 당연하다지만, 상대방의 가정까지 풍비박산 해체 시켜버린다. 제가 엄청 잘난 줄 아는 헛것 병에 걸려 으르렁 거르며 치고 받는 다툼이 그칠 날이 없다. 음흉한 유혹과 배신으로 인간관계의 신뢰를 무너뜨려 버린다. 이런 인간일수록 지랄 총량이 징그럽게 크다.

그렇다면 나의 지랄 총량은 얼만큼 일까? 암만 생각해도 내 지랄 총량은 이미 오래 전에 다 써버렸다고 큰소리칠 자신이 없다. 답답하게도 가부장제의 환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기준으로 판단해 신경질을 부린다. 잘난 척하고 싶어서 시끄럽다. 대접받고 싶어서 엉뚱한 주장을 해 비웃음을 산다.

지랄 총량은 사춘기 때 다 써버리고 끝내는 것이 좋지만, 아무리 늦어도 중년기까지는 다 써버려야 한다. 한데 세상 떠날 날이 그다지 멀지 않은 늙은이가 되어서도 지랄 총량이 남아있다면 누가 뭐래도 그는 분명 골치 아픈 물건이다.

다 쓰지 않았으면 더 이상 쓰려고 하지 말고 묻어버려야 하는데 그걸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수시로 지랄을 떠는 나, 그리고 그대! 참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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