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에 대하여

내가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 놀랐던 것은 이민 온 사람들 상당수가 고국에서는 대단했다는 거다. 그들 중에는 사업을 했다는 사람도 있었고 정치에 관여했다는 사람도 있었고 언론에 몸담았다는 인물도 있었다. 그들은 온갖 곳에 얼굴을 내밀며 교민사회 리더처럼 행세했다.

그들 대다수는 뉴질랜드에 이민 온 이유가 ‘지구촌 마지막 남은 파라다이스를 찾아왔다’는 것과 ‘독재와 부패가 난무하는 한국이 싫어서다’라는 것이었다. 근사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초라했다.

나는 그들의 말처럼 파라다이스를 찾아서도 아니고 한국의 독재와 부정부패 때문에도 아니었다. 내 삶의 무능함 때문에 고국에서 더 이상 살아갈 자신이 없었기에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서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대단한 것 같았던 그들은 자신을 풍선처럼 부풀리는 허상 이었음이 들어나기 시작했다. 세월 앞에 거짓을 감출 수 없다, 세월은 진실하고 정의로운 거다.

언론에 있었다는 어떤 인물은 언론 근처에도 못 가봤다. 또 어떤 인물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지방신문사에서 잠깐 일하다 쫓겨났다. 그는 ‘기자’였음을 앞세워 교민신문사에 일자리를 얻었다.

얼마 후 그는 투자자를 끌어들여 제돈 한푼 들이지 않고 또 다른 교민신문사를 차렸다. 진실 정의를 부르짖던 그는 자신에게 일자리를 챙겨준 교민신문사 뒤통수를 친 거다. 투자자는 투자금 한푼 되돌려 받지 못한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

교민사회 온갖 단체에 나대는 인물이 있다. 그는 고국 청와대에 선이 닿아있는 것처럼 행세하고 다닌다고 한다. 현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모씨가 뉴질랜드에 왔을 때 같이 밥 먹어 친분이 있다면서 어깨에 힘을 준다는 거다. 권력의 냄새를 피우는 거다. 과연 사실일까? 일국의 대통령 측근이라는 인물이 그처럼 가볍고 어수룩할까?

그렇게 설치고 다니는 그의 가족 상황은 수수께끼다. 학력도 경력도 안개 속이다. 그는 이민 초창기 사기로 지탄받았던 모씨의 집사로 성장해온 인물이다. 음습한 자들의 특징은 권력과 경제력을 거짓으로 포장하는 거다.

나는 이민 와서 오랜 세월 살면서 터득한 것들이 있다. 이민 온 적지 않은 인물들이 학력, 경력, 재산, 가족의 상당부분을 터무니없이 부풀린다. 못난 인생들의 상류층을 향한 비정상적인 욕구다. 서글픈 신분상승 코스프레다. 그런 허세를 부려 무얼 바라는가? 무얼 얻으려 하는가?

도덕 양심 인성을 거론하기 전에 이건 자존심 결여다. 인간으로서 자존감도 없다. 잘났건 못났건 ‘나는 나다!’라는 당당함도 찾아보기 어렵다.

아픈 얘기지만 교민사회에서 리더를 자칭하는 인물들 중 고개를 들어 경의를 표하고 싶은 사람은 고사하고 존중 받는 인물이라도 있는가? 순수하지 못한 구린 자들이 교민사회 리더로 행세하면서 활보하고 다니지는 않은가?

‘그’는 2005년 오클랜드 한인 로터리클럽 (Rotary Club)을 창립했다. 로터리클럽은 국제적으로 사회봉사와 세계평화를 표방하는 실업가 및 전문 직업인들의 단체다.

그와 뜻을 함께한 40여명의 회원으로 출발한 오클랜드 한인 로터리클럽 회원은 현재 22명 남아있다. 회원들은 연회비 600불을 낸다. 많이 가진 자건 적게 가진 자건 600불은 적지 않은 ‘거금’이다. 이 거금을 회원들은 아낌없이 낸다.

그 돈으로 회원들은 봉사활동을 한다. 호스피스 병동을 방문해 지원을 하고 노숙자들을 찾아가 따뜻한 위로와 식사를 제공한다. 가난하고 배고픈 아이들 어깨를 토닥거리며 먹거리를 챙겨주고 아이들이 소시지를 먹으면서 행복해 하는 표정에 회원들은 가슴이 뭉클하다. 영혼이 맑은 사람들이다.

회원들은 계산된 속셈이 없다. 나대거나 생색내지 않는다. 그저 힘든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위로하고 나눠주고 포옹한다. 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존경 받고 존중 받아야 할 가치 있는 사람들 아닌가?

새로운 시작,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삶은 올곧음과 진솔함을 추구하는 사람들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거룩한 소망이다.

교민사회는 참 리더를 찾아야 한다. 허세에 찌든 얼치기 꼰대들에 기생해 음험한 속내를 감추며 어쭙잖게 무슨 회장이네 뭐네 하면서 헛바람 든 그런 비린 인물이 아니다. 진솔하고 올곧은 품성과 봉사를 가슴에 담고 사는 따스한 인성을 갖춘, 그들 같은, 된 사람, 존중 받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좋은 말만 하라고 하지만 나는 나이 들었으니 바르지 못한 것들에는 더 아프고 더 쓴 소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DNA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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