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사

두 분께 큰절을 올리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예비 며느리가 마음에 드셨는지 아버님의 연실 싱글벙글 하시는 모습에 나도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영원한 이별이 될 줄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그날 아버님은 잠깐 나갔다 오시겠다며 입고 계신 옷 그대로 나가셨다. 다음 날이 추석명절이라 차례 상을 차려 놓고 아버님을 기다렸지만 오시지 않았다. 동네 친구분들과 소주 한잔 하시고 가셨다는 것이 마지막 행적이었다,

전날 저녁,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처음 뵌 아버님 등에 업혀 여러 곳을 다녔다. 한참 후 아버님은 “이제 그만 가야겠다” 하시며 날 내려 놓으셨다. 그리고 어둑한 골목으로 손을 흔들며 가셨다. 그 꿈 이야기를 들으신 어머님은 통곡을 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하셨다.

온 가족이 아버님을 찾아 헤맸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경찰서에 들려 실종신고를 하고 돌아왔다. 시어머님은 서울에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 다녔지만 누구 하나 속 시원히 대답해 주는 곳은 없었다. 온 가족이 허공을 걸어 다니는 듯 공허한 상태였다. 예비 시부모님께 인사 드리러 왔다가 날벼락을 맞은 나는 집에 갈 생각도 못했다.

“너와는 인연이 안 되는 집안이니 정리하고 집으로 오라”고 친정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말을 전하셨다. 식사도 못 하시고 울고만 계시는 시어머님을 두고 집에 갈 수는 없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내 자신도 어떻게 해야 될지 마음의 결정을 못 내렸다. 밤이면 수없이 떠 있는 별들에게 답답한 내 마음을 하소연하면서 쏟아지는 눈물을 남 몰래 훔쳐야 했다.

3개월쯤 되어 중부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연고자가 없는 시신이 있다며 확인하러 오라는 것이었다. 동대문 길에 쓰러져 계셔서 어떤 분이 병원으로 모시고 왔는데 그날 새벽에 돌아 가셨다고 했다.

경찰이 보여준 사진을 보고 아버님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미 파주에 있는 곳에 가 매장을 해놓았단다. 시신이 많이 부패되어 화장을 했다. 그때 시아버님 연세가 44세, 너무 젊으신 나이였다. 새 식구가 인사 하러 온 날 그런 불상사가 났으니 모두가 내 탓 같았다. 나는 그날부터 시어머님을 면전에서 바로 볼 수가 없었다.

1년이 쉽게 가고 아버님 첫 제사 날이 되었다. 어머님은 일하러 나가셔야 한다며 내게 모든 걸 맡기고 나가셨다. 몇 번이고 제사는 정성을 다해야 한다며 주의를 주셨다. 생전 해보지 않은 제사상을 어떻게 차려야 할지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 겨우 20살, 어린 며느리한테 이런 큰일을 맡겼으니….

그때 시어머니가 담가놓으신 포도주 병이 보였다. 마음도 답답하고 심란하니 한잔 먹어보자고 시작했는데 달콤한 맛에 취해 홀짝 홀짝 한 병을 다 마셔 치웠다. 처음으로 마신 술이 그렇게 달고 맛있는 줄 몰랐다. 일어서려다 쓰러져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서 눈을 떠보니 시어머님이 돌아오셔서 소리를 지르셨다. 제사 준비는 안하고 술이 취해 자고 있는 철없는 며느리…. 시어머니는 소매를 걷어 부치고 음식을 하기 시작하셨다. 나는 죄스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그 어려움 속에서 내 가슴속 깊이 각인된 약속이 있었다. 시아버님과 함께 못한 아쉬움, 제사만이래도 내 정성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이었다.

이후, 자식들이 태어나고 호주로 이주하고 49년이 흘렀다. 하루, 하루, 힘들게 일을 하면서도 1년에 다섯 번 있는 제사를 한 번도 소홀하게 치르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연휴 때는 항상 시할아버지 제사와 겹쳤는데 멀리 나갔다가도 5-6시간 이상 걸리는 집으로 돌아와 제사를 지내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휴가를 보내고 오곤 했다.

곁에서 지켜보시던 시어머님이 손을 꼭 잡아 주시며 “우리 조상님들은 배고프지 않구나” 하시며 부지런한 며느리 덕이라며 등을 토닥여주셨다.

그렇게 내 마음의 지주였던 시어머님도 세월이 흘러 작년에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떠나시기 전 “넌 며느리가 아니고 내 딸이었다”며 행복하게 살다 간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님 한 분 제사를 더 지내게 되었다. 제삿날이면 집으로 오는 손자 손녀들은 깨끗하게 차려 입고 멋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특별한 날이라는 것을 그들 모두 안다. 늦은 시간을 기다리다 잠들었던 녀석들도 깨어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의젓해진다.

향내와 촛불 타는 냄새가 방안을 채우고 모든 불은 끈다. 3대가 줄을 맞춘다. 어둠 속에서 촛불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어린것들이 두 손을 무릎에 포갠다. 똑, 똑, 똑 세 번의 울림과 함께 음식에 젓가락을 올려놓는다.

아이들은 순서를 기다린다. 곁눈질을 하며 다시 줄을 맞춘다.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며칠 동안 힘들게 장만해놓은 음식들이 며느리들 손에서 더욱 빛이 난다.

내가 짊어지고 온 짐들을 이제 하나하나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오는 것 같다. 돌아보니 1년에 여섯 번의 제사가 내 일생의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다. 접시에 음식을 담아내는 며느리들의 바쁜 손이 더욱 예뻐 보인다.

 

글 / 변애란 (글벗세움 회원·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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