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인간이 자연으로 돌아갔다. 본디 우리는 모두 자연의 품에서 왔으니,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닐 터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유독 마음이 오래 머문다. 지구가 깊은 병에 시달리는 이때, 그녀의 죽음은 마치 마지막 잎새가 떨어져 나가듯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녀의 삶은 눈부시지 않았으나 그 평범함이 오히려 위대했다. 그녀가 남긴 말 또한 그랬다. 거창한 구호 대신, “각자가 제 할 일을 다하면 지구와 함께 오래 머물 수 있다”고, 작지만 꾸준한 실천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녀의 이름은 제인 굿올 (Jane Goodall). 인간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세상을 끝까지 믿었던 사람이다.
제인이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넷플릭스에서 그녀의 인터뷰가 공개되었다. 이 대담은 생전에 그녀가 “사후에만 방영하라”고 약속한 유작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사람은 에미상을 수상한 브래드 펄척 (Brad Falchuk)이었고, 제목은 <Famous Last Words>. 덴마크의 동명 다큐 형식을 빌려,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메시지를 남긴 인물들의 목소리를 담는 시리즈다. 무대는 비어 있었고 카메라는 멀리서 원격으로 그녀를 비췄다. 오직 두 사람만이 그 자리에 있었고 영상은 그녀가 눈을 감을 때까지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날 제인은 잔잔한 미소와 함께 한 잔의 위스키를 들었다. “목소리엔 이게 좋다네요.” 그녀 특유의 담담한 농담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로, 그녀는 자신의 삶과 세상 그리고 남은 이들을 향해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의미가 있고, 세상에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남깁니다. 매일의 작은 행동들이 쌓여 큰 변화를 만듭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희망을 잃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니까요.” 그녀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깨끗한 공기, 물, 음식, 옷 – 우리가 숨 쉬는 모든 것은 어머니 자연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자연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생태계의 붕괴는 결국 우리 자신의 생존을 위협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아직 지구가 아름다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이 마지막 메시지는 유언이면서도, 동시에 초대였다. 남겨진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 “나는 오늘 어떤 변화를 만들 것인가?” – 바로 그것이었다.
제인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나는 문득 부엌 싱크대 앞에 선 내 모습을 떠올렸다. 요즘 우리 집엔 한국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온 조카가 함께 지내고 있다. 낯선 땅에서 일하며 배우겠다는 패기로 왔지만, 식탁 앞에서는 종종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밥을 반쯤 먹다 말고 젓가락을 내려놓거나, 고기 몇 점과 샐러드를 남긴 채 “배불러요”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곤 한다. 그리고 그 음식들은 별 미안함도 없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나는 설거지를 하며 그 장면을 지켜본다. 반쯤 남은 밥, 젓가락에 채 걸린 나물 한 줄기. 그걸 버리려니 너무 아깝다. 그래서 어느 날은 결국 그릇을 끌어당겨 남은 밥을 떠먹고 말았다. 조카가 뒤늦게 보고는 놀란 눈으로 물었다. “이모부, 그걸 왜 드세요?” “아까워서. 그리고 이건 네가 버린 지구의 조각이야.” 조카는 웃으며 “이모부는 진짜 옛날 사람이에요”라 했다. 나도 웃었지만, 그 말이 꼭 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옛날 사람’이 아는 것은 하나다. 지구는 쓰레기와 물의 낭비를 버텨낼 만큼 젊지 않다는 것.
호주에서는 물이 귀하다. 그래서 나는 설거지할 때 물을 흘려보내지 않는다. 싱크대 아래 작은 양동이를 두고 헹군 물을 모은다. 그 물은 다음 날 아침, 마당의 밭뙈기에 심은 토마토와 상추에게 간다. 조카는 처음엔 그걸 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이가 먼저 양동이를 비워주기 시작했다. 물의 두 번째 생명을 아는 것이다. 작은 습관이지만, 그것이 나의 방식으로 제인에게 답하는 일이라 믿는다. “희망을 잃지 말라”던 그녀의 말은, 거창한 캠페인이 아니라 싱크대 옆에서 시작되는 일이었다.
조카와 함께 살면서, 나는 자주 화장실 불을 끄는 ‘뒤치다꺼리’를 한다. 어느 날 아침, 조카는 서둘러 출근하며 방 불을 켠 채로 나갔다. 나는 그 불빛을 보자마자 마음속에서 번쩍, 또 다른 불이 켜졌다. “전기세의 문제가 아니야, 이건 습관이야!”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스위치를 내렸다. 순간 방 안이 조용히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오히려 한 문장이 떠올랐다. – “작은 행동이 모이면 큰 변화를 만든다.” 제인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그녀가 말한 ‘작은 행동’이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화장실 불 하나, 스탠드 불 하나를 끄는 일. 아무가 보지 않아도, 세상은 그 순간 조금 덜 데워진다. 전기가 덜 쓰이면, 발전소의 연료가 덜 타고, 하늘에 오르는 탄소가 조금 줄어든다. 그 사소한 순간이 지구를 식히는 한 모금의 숨결이 된다. 그날 저녁, 나는 조카에게 말했다. “너는 불을 켜두고 나가면 지구가 더 뜨거워진다는 걸 알아?” 조카는 머쓱하게 웃으며 “이모부, 설마 그 정도야?”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그 정도란다. 우리가 사는 이 별은, 이미 땀을 흘리고 있거든.” 조카는 그 뒤로 집을 나서기 전 꼭 등을 한 번씩 확인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희망이란, 세상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마지막 불을 꺼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고.
요즘 나는 부엌의 양동이와 전등 스위치를 볼 때마다 제인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녀는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그녀의 말은 여전히 내 하루 속에서 되살아난다. 싱크대 옆의 물통을 채우는 일, 불 꺼진 방을 확인하는 일, 그 평범한 행동들이 제인이 남긴 말의 한 구절 한 구절처럼 내 삶에 밴다. 지구를 지키는 일은 사실 멀리 있지 않았다. 거대한 회의장도, 화려한 슬로건도 필요치 않았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씻고, 불을 켜고 끄는 그 일상 속에서 이미 우리는 지구의 운명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사실을 얼마나 자주 잊는가 하는 것이다. 제인은 마지막으로 “희망을 잃지 말라”고 했다. 희망이란 어쩌면 마음속 스위치와도 같다. 우리가 그 스위치를 켜는 순간, 절망의 어둠은 물러난다. 그리고 그 빛은 남에게로, 또 그 다음 사람에게로 번져 간다. 나는 그 불빛이 조카의 손끝에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마음에도 닿기를 바란다.
글 / 박석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