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크메일

‘내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해 존재할까? 나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면 과연 나는 무엇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인가?’ 얼마 전 이웃에 사는 친구가 책의 한 부분을 사진 찍어 카톡으로 보내온 내용이다.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고 해서, 핸드폰으로는 용건만 간단하게 주고받는 사이인데, 아마 이 글이 요즘 그녀에게 드는 생각인가보다.

 

지난달에도 연필로 밑줄 그은 우정에 관한 글을 사진으로 받았었다. 핸드폰에 말썽이 생겨 메모리가 삭제되기 전에 어딘가에 따로 보관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의 고요한 명상 속 한 자락에 초대된 것 같아 조금은 엄숙하고 조심스럽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던 날이다.

내 삶의 유익이 되는 아름답고 좋은 말이 하루에도 몇 통씩 카톡 방으로 들어온다. 각 사람의 인지도에 따라 이런 글들을 받는 횟수는 수십 통에서 수천 통까지 이어질 거다.

하지만 간직하고 싶은 것은 드물다. 일전에 ‘외로움’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혜민 스님이 한 예를 들었다. 어떤 분이 80통의 생일 축하메시지를 받았단다.

그런데 막상 저녁을 먹으려고 보니, 함께 할 사람이 없더라는 이야기였다. 발신자의 이름만 보아도 ‘아… 또…’ 우편함에 가득 쑤셔 넣어진 정크메일을 받아 드는 것처럼, 마음 한구석에 기운을 빼는 메시지들이 있다.

알록달록 꽃으로, 형광의 반짝이로 치장된 글귀들이다. 내 원기를 북돋아주고 싶어 애를 쓰는 것 같은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또는 ‘모두를 사랑하자거나 사랑 받으라’는 내용은, 셀로판지처럼 미끈거리며 몸으로나 마음으로 다가오질 않는다. 오히려 돌아오는 모임을 알리는 메모나 공지사항 같은 메시지가 삶의 근거 있는 활력이 될 때가 있다.

일전에 나와 점심을 같이 하기로 한 호주 친구에게서 약속을 취소해야겠다는 문자를 받았었다.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할 일이 생겼단다. ‘I hope your mom gets well soon’이라는 메시지를 써놓고 남편에게 ‘이런 식으로 답신을 하면 괜찮겠지?’하고 물었다.

혹여 다르게 표현할 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남편은 ‘No worries Gloria. Speak to you soon’이라고 고쳐 주었다. 글로리아 어머니에 대해 공연한 말치레를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다. 한 번 만나 본 적도 없는 남의 부모님 별세 소식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뒤질세라 그럴듯한 문자를 보내려고 고심을 했던 적이 있지 않나. 인터넷 어디선가 퍼 올린 광고 문구처럼 정형화된 인사말과 명언들로 서울에서 아침저녁 내게 안부를 전하는 사촌 언니가 있다. 견디다 못해 ‘그런 의미도 재미도 없는 글들 대충 좀 보내’하고 핀잔을 주었더니, 다행히도 민망해하기보다는 ‘아이구, 재미없는 건 그냥 무시하면 될 거 아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녀 말이 맞는다. 핸드폰을 꺼 놓거나 문자 메시지의 울림이 들려도 무신경으로 일관하면 될 것을…. 누군가의 말처럼 메신저의 신호음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자기 관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까톡’ ‘까톡’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이유가 뭘까? 누군가가 보내는 조금은 각별하고 진솔한 메시지를 통해 살아가는 맛을 느끼고 싶다는 일말의 기대 때문이리라.

얼마 전, 문학회 공동 카톡 방에 한 회원이 문자를 올렸다. ‘문학회에 참석한 지 일 년도 안 됐지만, 용기를 내어 글을 한 편 써 봤다’라는 내용이었다. 기대와 조바심으로 온몸이 들썩이나 보다. 다음 문학회까지 어떻게 기다리냐며, 팔월을 향해 ‘빨리빨리 가’란다. 자기 작품을 선보일 날의 설렘이 핸드폰 화면으로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그때 내게 드는 마음은 감사였다. 서로 나이가 들어 만나는 모임에서, 회원들을 향한 친밀함을 민낯을 드러내듯 자신의 언어로 천진하게 보여주니 코끝이 찡해 온다. 내면의 빗장을 활짝 열어젖히고 모두를 향해 들어 오라고 손짓을 하지 않나. 일 년 동안의 망설임 속에서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펼쳐 보일지, 다음 문학회 모임이 나도 정말 기다려진다.

 

 

글 / 박해선 (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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