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편지

어느 시인이 “늙어간다는 것은 떠난다는 것이다. 석양처럼 저문다는 뜻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문다는 것은 의식이 흐릿해져 해야 할 말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뜻도 포함되는 겁니다.

세상이 좋아져 평균수명이 늘어난 덕분에 나도 평소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이만큼 살았으면 떠날 준비는 해두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해야 할 때 하지 않으면, 하려고 할 때는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해서 작별인사를 남겨두려는 겁니다. 그건 당신에 대한 예의일 겁니다.

눈을 뜨면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을 흔들던 유명 정치인 경제인 문학인 예술인 누구누구가 세상과 작별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당연히 아무것도 아닌 나 같은 사람도 그렇게 오래지 않아 세상과 작별하게 될 겁니다. 마지막 숨 넘어가기 전에 의식이 뚜렷해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는 항용 잠들기 전에, 잠자면서 그대로 깨어나지 않고 좋은 그곳으로 가게 해달라는 마지막 소망을 기도합니다. 혹여 하늘의 따뜻한 은혜로 그 소망이 이루어진다면 작별인사 없이 그곳으로 떠나게 되겠지요. 세상사 내일 일을 어찌 알겠습니까. 그래서 미리 작별인사는 해둬야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차가운 바람에 낙엽이 뒹굽니다. 오동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온다고 했습니다.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에도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뜻일 겁니다. 어디 나뭇잎뿐이겠습니까. 세월은 그렇듯 스치듯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인생도 그러하리라는 생각입니다. 때문인지 후회하지 않으려거든 정신 초롱초롱할 때 미안하다 감사하다는 말을 가슴에만 담아두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편지는 곱고 따뜻한 당신을 향해 써 보내는 나의 마지막 편지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처음 쓴 편지는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보냈던 가슴 설레는 연애편지였습니다. 그런데 이젠 담담하고 잔잔한 ‘작별 편지’가 되나 봅니다.

당신을 만나 아들 딸 낳고 티격태격하면서 많은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감사하다는 말도, 고생한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하질 못했습니다.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당신을 만난 지 어언 60여년이 됐습니다. 밤송이 머리 때 만나 민머리 되어버린 지금까지 함께 했으니 참으로 긴 인연인가 봅니다. 때로는 당신과 나는 다투고 삐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변할 줄 모르는 사랑이 있었기에 당신과 나는 긴긴 세월을 함께한 겁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은 남루하고 가난한 고학생을 사랑했습니다. 가난은 세상의 모든걸 비틀어진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편협성과 저항이라는 악마의 속삭임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가난이 두려운 것은 비굴, 아부, 증오, 시기, 부정을 가슴에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가난은 자신의 세상과 타인의 세상을 이해하는데 갈등을 가져옵니다. 가난은 사람을 탐욕에 빠지게 하는 마성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가난에 시든 나는 당신에게 자주 짜증을 부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가난 속에서 청춘을 보냈습니다. 풍족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성장해온 당신은 가난이 뭔지 몰랐습니다. 어느 철학자의 ‘가난은 단지 불편할 뿐’이라는 철없는 주장은 당신에겐 그냥 궤변이었습니다. 가난은 불편할 뿐만 아니라, 불안이며 고통이며, 절망이며 다툼이며, 불화의 뿌리였습니다.

당신은 태어나서부터 나를 만나기 전까지 고생이 뭔지 부족함이 뭔지 불편함이 뭔지 모르며 살았습니다. 그런 당신이 가난에 찌든 나를 만나면서 불편과 고통을 알게 된 겁니다. 나의 넉넉지 못한 경제상황은 여유 있게 살아온 당신을 힘들게 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나는 나처럼 땀냄새 가득한 3등실 가난한 사람들은 허풍과 허세를 모르고 없으면 견디면서 살아가는 따뜻한 사람들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1등실 사람들 눈에는 3등실의 그들은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인생 낙오자들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만나 빈곤과 무책임을 벗어나려고 애썼습니다. 넘쳐나게 풍족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괜찮다고 나를 다독일 만큼은 해냈습니다. 그러나 부족함 없는 관성에 젖어온 당신에게는 늘 부족했을 겁니다. 미안합니다.

나의 부족함과 무능력은 당신을 당신의 혈육들과 이별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태어나서 태 (胎)를 묻고 죽어서 뼈를 묻는다는 땅을 등지고 가난뱅이 나를 따라 바다를 건넜습니다. 혈육도 친지도 친구도 없고 언어와 문화가 낯선 땅에서 외로움과 결핍을 견디는 세월을 살아야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낯선 땅에 발을 디뎠지만, 익힌 기술도 손재주도 없고 그저 책상 앞에 앉아 펜대만 굴리고 사람들 앞에서 잔소리만 하던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방황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나를 향한 실망의 눈빛도, 나를 따라나선 후회의 표정도 없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서 기대와 희망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내 삶의 의지를 믿고 응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데크에 앉아 초저녁 밝게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노라면, 나는 더없이 평온하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의 잔잔한 아낌 덕분입니다. 사랑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지저귀는 새소리 들으며 우뚝 솟은 나무 올려다보고, 가슴채워주는 싸한 바람을 가슴으로 맞이하고,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 검은 하늘 위에 걸린 하얀 반달을 올려보노라면 세상은 눈물 날만큼 아름답습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남아있는 당신의 삶을 즐겁고 자유롭고 지혜롭고 평온하게 오래오래 사랑하길 기원합니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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