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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는 내 등을 떠밀고 높이 쌓아놓아진 볏단 뒤로 몸을 숨겼다.

곧이어 나는 연기가 뭉게구름처럼 피어 오르는 작은 초가집에 도착했다. 그곳은 충청도 광천에서도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산골이었다. 그리고 토방 문고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뉘시요?” 신선처럼 하얀 수염을 가진 할아버지가 문을 열어주었다.

“저 은영이 친구인데요.”

부엌에서 저녁을 짓고 있던 은영이 어머니가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을 털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은영이 친구?” 하고 반문하신다.

사랑하는 막내딸 친구라는 말에 마치 당신 딸이 온 것처럼 밝게 웃으며 내 손을 덥석 잡으셨다.

 

따뜻한 아랫목을 권하여 몸을 녹였다.

등잔에 불을 켜니 어두웠던 방안이 금방 환해졌다.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는 방안은 그들의 삶을 말해 주는 듯했다.

제일 먼저 벽에 걸린 가족사진이 눈에 띄었다.

유난히 눈이 큰 아이가 눈에 들어왔는데 은영이었다.

벽에는 씨받이 강냉이가 아슬아슬하게 흔들거렸다.

‘이렇게도 사는구나’ 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은영이 엄마가 둥근 양은 밥상을 내려 놓으셨는데 부글부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와 들기름을 발라 구운 김, 그리고 고추무침 반찬이 나를 소박하게 반겼다.

산처럼 높게 쌓아 담은 큰 그릇의 보리밥 한 그릇을 보자 그제서야 시장기가 엄습을 했다.

점심부터 굶었으니 인사를 할 여유도 없이 밥그릇에 손이 갔다.

허기진 배는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그 많은 보리밥을 맛있게 뚝딱 해치웠다.

그 모습을 눈여겨보셨는지 은영이 어머니는 내가 숟가락을 놓는 즉시 또 다시 커다란 바가지에 노릇하게 눌린 누룽지 밥을 한 가득 들고 와서 내 빈 밥그릇에 채워주셨다.

“많이 먹어.” 둥근 상을 바짝 내 앞으로 밀어주는 그 따뜻함에 때마침 밀려든 식곤증이 더해져 아랫목에 쓰러져 그대로 자고 싶었다.

 

정신을 차리고 고쳐 앉자 그제서야 우리 은영이를 왜 찾느냐고 반문하셨다.

그 질문에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가 않았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밖에서 기다리는 두 남자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가 빨리 돌아오길 눈이 빠져라 기다릴 텐데… 걱정이 가슴을 짓눌렀다.

은영이가 이사를 가서 연락이 안되니 주소 좀 알려달라고 하였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는 봉투 하나를 내미셨다.

 

은영이의 새 주소였다. 봉투를 받아 쥔 내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명치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막차는 늦었으니 자고 내일 첫차를 타라고 하셨다.

화로에서는 군밤이 맛있게 구워지고 있었다.

머리 속에는 그저 이 순간이 편하다 생각했지만 현실은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증으로 괴롭기만 하였다.

은영이 어머니는 연실 까놓은 군밤을 내 입에 넣어주셨다.

나는 밤을 먹는 게 아니라 내 양심을 씹고 있었다.

어쩌다 내가 공범이 되었는지 후회해도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오리표 운동화를 사준다는 말에 혹해서 두 남자들 손에 이끌려 은영이 주소를 알아내라는 부탁에 동조를 했으니 말이다.

성공적으로 내 손에는 은영이의 서울 주소가 들려 있었다.

동시에 나는 은영이 어머니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 대가는 오래가지 않았다.

배고픔에 게 눈 감추듯 많은 보리밥에 누룽지 그리고 밤까지 먹어 치웠으니 내 뱃속이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배가 너무 아팠다. 이마에서는 식은 땀이 흘렀다.

자다 말고 화장실을 물어보니 집에서 한참 먼 창고 속이었다.

캄캄한 밤길, 반딧불에 의지하며 그 먼 화장실을 향해 얼마나 급히 뛰었는지, 그리고 몇 번을 더 왔다 갔다 했는지 아무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내 뒤에는 등불을 들고 은영이 어머니가 좆아오신 기억뿐이다.

 

나는 그만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적막한 시골 길에서 비명소리가 경적처럼 울렸다.

비녀가 뽑혀 잔머리가 풀어 헤쳐진 모습에 하얀 속옷을 입고 좆아 오는 은영이 어머니는 그날 밤 영락없는 귀신의 모습이었다.

눈을 뜨니 따뜻한 아랫목에서 한숨 자고 일어난 기분이었다.

은영이 어머니는 연신 내 배를 문지르고 계셨다.

 

까칠하고 뭉툭한 그 손은 나를 한없이 울게 하였다.

나에게 그런 모진 심부름을 시킨 사람은 바로 오빠들이었다.

그때 그 인연으로 오빠와 은영이는 결혼하여 손자 손녀까지 생겨 잘 살고 있다.

돌아보면 은영이 주소를 얻기 위한 내 활약은 성공적이었지만 의도와는 상관없이 고마웠던 은영이 어머니를 속인 대가가 너무도 혹독했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나는 이런저런 옛 추억들을 회상해보다가 그 추억에서 멈칫, 그리고 혼자 중얼거린다.

‘사람이 살면서 죄를 짓고는 못 산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지.’

2023년 새로운 시작이다.

 

 

글 / 변애란 (수필가·글벗세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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