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Eomma) ①

허겁지겁 타투숍의 벨을 눌렀다. 단숨에 4층까지 뛰어올랐더니 숨이 턱에 닿았다. 기다려도 안에서 기척이 없자 현관문 손잡이를 돌렸다. 잠시 뒤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서서 전화를 걸었지만 먹통이었다. 나는 출입문을 발로 차며 소리쳤다.

“개뿔, 뭐야.”

이해할 수 없었다. 짧은 스커트를 찢어져라 잡아당겨 계단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메신저 백에서 생수를 꺼내 들이켜는데 완전 식초 맛이다. 고개를 돌리자 복도의 쪽창을 타고 들어온 10시의 여름 햇살이 할퀼 것처럼 예리하게 눈을 찔렀다. 긴 남방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손목의 흉터를 살폈다. 수십 마리의 지렁이가 뒤엉킨 흉터가 밝은 빛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는 소매를 내리고 일어서며 소리쳤다.

“약속도 안 지키고, 나쁜.”

메신저 백을 둘러매고 계단을 뛰어내러 가는데 아래서 발소리와 헐떡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정면으로 이층 계단에서 마주친 다투이스트는 풍성한 카네이션 다발을 안고 있었다.

“헉, Emma(엠마)씨, 미안하게 됐어요. 남반구에선 칠월에 카네이션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네요.”

여자가 방전된 폰을 흔들어 보이며 해명했다. 대답 대신 코를 문지르며 여자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안으로 들어간 여자가 유리병에 물을 받아 카네이션을 꽂았다. 나는 여자의 옆얼굴을 쳐다보며 그 날의 첫 인상을 떠올리려고 눈을 가늘게 떴다.

삼 개월 전이었다. 그날 불쑥 찾아간 시드니 서부 외곽 타투숍에 동양인 다투이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는 늦은 점심을 먹었는지 립스틱을 문지르며 준비실에서 걸어 나왔다. 여자를 처음보고 움찔 놀랐다. 하긴 그 동안 나를 놀란 한 여자 같은 존재는 수없이 많았다. 노르스름한 피부, 짙은 갈색 머리칼, 적갈색 눈의 중년 여자를 보고 당황할 때면 나는 표정을 감추려고 코끝을 세게 문질렀다. 그날은 처음 찾아간 구직에 실패하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버스에서 내리다 입간판을 발견했던 터였다. 타투숍은 새로운 숙소 보딩하우스에서 1킬로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다음날 또 다른 지역에 있는 두 번 째 웨이트리스 면접을 가야 했다. 그래서 머릿속엔 오로지 손목의 ‘주저흔’을 숨겨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더 있었다면 카페 사장을 미워하는 일이었다. 머리가 이상해질 정도로 그를 향한 분노가 꺼질 줄 모르고 솟구쳤다.

처음 면접을 본 카페 사장은 내 긴 남방 속의 손목 붕대를 귀신처럼 감지했다. 그리고 꼬치꼬치 캐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자 끝끝내 붕대를 풀게 했다. 상처를 보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던 그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그런 자흔 상처를 달고선 어디에서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것이란 충고를 생략하지 않았다. 돈이 생기면 주저흔에 타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준비실을 향해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중년 동양 여자를 보면 나는 언제나 불안해진다. 무슨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머릿속에서 번쩍번쩍 빨간불이 켜지고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엄마일지도 몰라 아무리 자제를 해보려 해도 스위치가 내 뇌보다 한발 빠르게 작동해버린다. 심리상담 의사는 억지로 생각을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리바운드가 일어나므로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 했다. 그리고 마음껏 상상해도 좋다고 조언했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가.

 

처음 이 타투숍을 찾아왔던 날은 내 나름 의미심장했다. 4월 13일, 입양서류에 기록된 내 생일이었다. 나는 정확한 출생일을 모른다. 나와 관련된 서류나 기록은 버려지고 없다. 입양기관에서 버린 서류대신 만들어진 ‘고의 족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18살이 된 것이다. 드디어 기다리던 성년이 되어 위탁가정과 후견인으로부터 자유를 되찾은, 더 이상 누구로부터 간섭 받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당장 일자리를 구하러 나서야 했다. 마음은 자유로웠지만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로 어깨가 무거웠다. 나는 미리 위탁가정에서 빠져나와 전 날 보딩하우스에 입주했다.

그새 긴팔 하얀 가운으로 갈아입은 여자가 차트를 들고 가까이 다가왔다. 내 ID를 들여다보며 신상을 기록할 동안 나는 계속 여자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엄마를 상상하고 있었다. 여자가 내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붕대를 푼 뒤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이 상처에 타투를 한다고요? 포피가 아물어야 타투를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녀요. 피부가 재생되려면 적어고 삼 개월은 걸릴 것 같은데.”

나는 내일 웨이트리스트 면접을 가야 하거든요, 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갑자기 눈앞이 깜깜하게 변하고 혼돈과 혼란으로부터 나쁜 기억이 몰아쳤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내 눈을 잡아당기던 장면, 내 눈 모양을 보고 놀리고 쓰레기를 던지고 침을 뱉던 악행들, 검고 뻣뻣한 내 머리카락에 대고 돼지 털 염색이라며 진흙을 덮어씌웠던 일….

“상처가 아물면 다시 와요.”

여자가 내 기억을 자르며 말했다.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돌아섰다. 여자가 내 등에 대고 외쳤다. “삼 개월 뒤에 꼭 다시 봐요.”

나는 말없이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빠르게 계단 아래로 뛰어내렸다. 덕택에 몇 시간 동안 부글부글 끓었던 카페 사장을 향한 분노가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곧장 버스를 타고 보딩하우스에 돌아왔다. 예닐곱 명이 한집에 사는 공동 주거지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상처를 돌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면도날에 깊게 잘린 손목은 아물 것 같다 다시 속에서 피고름이 흘러나왔다.

나는 매일 타투를 생각하며 갑자기 뭔가 정신이 바이러스에 걸린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꾸덕꾸덕 굳어가는 상처 딱지 위에다 형광펜으로 Eomma(엄마)를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지우기를 거듭했다. 세상의 모든 엄마를 향한 메시지를 화인처럼 새기리라고. 그 생각이 언제부터 내 머릿속에 숙주 하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아기를 버리지 마라. 배고파도 좋다. 아기를 버리지 마라. 절대로 동양 아이를 서양의 세계에 버리지 마라. 십자가처럼 Eomma(엄마)란 타투를 새기리라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입술이 분노로 팽팽해졌고 머리가 가볍게 떨렸다. 상처 위에 형광펜으로 Eomma(엄마)란 글씨를 그어댈 때마다 내 생각은 더 견고해져 갔다. 그리고 나는 구글에서 ‘애증’이란 단어를 찾아냈다. 사랑하면서 미워한다는 뜻의 단어.

어느새 내 마음엔 Eomma(엄마)를 새겨야 한다는 강박에 정신이 매몰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할 타투는 꼭 그 여자에게 해야 한다고.

미처 돌도 지나지 않은 나를 입양해 엠마(Emma)란 이름을 지어준 부모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때 내 나이 일곱 살이었다. 그 뒤로 나는 이런저런 백인 가정으로 버려지며 위탁되었다. 어느 날 나는 주변 사람들 모두를 더욱 속상하게 하고 삐뚤어진 행동을 보여주지 못해 안간힘을 다하는 문제아가 되어 있었다. 내 미성년의 페이지는 힘겹고 어렵고 거칠고 더디게 넘어갔다.

여자가 커튼을 젖히고 내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여자의 어깨너머 창틀의 카네이션에 시선을 던졌다. 사 층 북향 깊숙이 점령한 햇살을 등으로 막은 여자가 자신이 그림자를 밟으며 다가왔다. 고개를 돌리자 실내의 무수한 타투 도안들, 의자 책상 소파 카우치 같은 물건들이 카네이션의 후광을 받아 환하게 피어났다. 의자를 당겨 앉은 여자가 삼 개월 전 내 차트에 눈길을 박고 내 손목을 잡았다.

“삼 개월이나 지났는데 상처가 왜 이래요?”

상처를 뚫어지게 들여다보던 여자가 인상을 찌부라뜨렸다.

“뭔가로 계속 상처를 긁어서 떠들썩거려 놓았군요. 음, 이 상태론 안 되죠. 표피에 잉크가 스미지 않는데.” 여자가 계속 말했다.

“전화로 설명할 땐 된다고 하고선. 삼 개월 지났으니 무조건 된다고 어제 한 약속을 벌써 잊었나요?”

내 항변에 여자는 내 눈을 뚫어질 듯 쳐다보았다. 눈빛이 너무 예리해서 나는 내일 구직 면접을 가야 해요. 하는 말을 못했다. 대신 침묵하며 눈길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말한다고 해서 바닥난 통장 잔고, 밀린 휴대폰 대금, 보딩하우스 주세, 인터넷, 물세, 전기세, 가스 같은 다급한 내 사정을 당신이 알 리 있겠나.

나는 벌떡 일어나 메신저 백을 어깨에 둘러메고 돌아섰다. 그러자 내 안에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각인되어 있던 버림받았다는 증오심이 여자를 향해 타올랐다. 그러한 감정은 나도 어떻게 해 볼 수 없었다.

여자는 내가 떠나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언제 일어났는지 여자가 내 남방 자락을 와락 당긴 건 내가 문의 손잡이를 돌리고 난 다음이었다. 용수철처럼 놀라 반쯤 열린 문을 놓았다. 그리고 여자를 째려보았다. 그때 여자가 마치 도난 당한 장물이라고 발견한 것처럼 말했다.

“그럼 해치웁시다. 새로 출시된 젤리를 사용해서. 비용이 서너 배 올라간다는 것만 알아요.”

어떻게 지불하지. 여자는 돈이 없다는 말 할 기회를 자르며 내 옷자락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당겼다. 무슨 방법이 있겠지. 나는 자포자기했다. 여자는 모니터를 내게로 돌린 뒤 한 손으로 내 손목을 다른 손으로 마우스를 스크롤 했다. 나비, 뱀, 해골, 잉어, 주사위가 나왔다. 여자가 눈짓과 고개를 까딱까딱 하는 것이 디자인을 고르란 건지 내 간을 보겠다는 건지? 몇 분 뒤 여자는 내 표정과 창가의 카네이션에 번갈아 시선을 던졌다.

여자가 다시 스크롤 해서 파도, 꽃, 리본, 거미줄 이어 성모상, 천사 코알라, 제비, 비행기를 불러냈다. 그리고 여자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성모가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상’ 어때요? 물론 천사들이 날고 있는 배경도 워터마크처럼 넣고.”

그 순간 불쑥 돈 걱정이 되살아났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내 손목과 카네이션에 계속 눈길 그네를 타던 여자의 눈빛이 휘청 흔들렸다. 그런 탓인지 인터넷 창을 닫는 여자의 손 떨림이 내 손목에까지 전해졌다. 컴퓨터를 끈 여자가 내게 무언가를 청하듯 눈을 게슴츠레 뜨고 쳐다볼 때 나는 이때다 싶어 크게 소리쳤다.

“Eomma(엄마)로 해 줘요.”

“아… 알아요. 자신의 이름 새기고 싶다는 사람들의 심리. 이해해요!” 여자가 무관심하게 내뱉었다. 뭐래! 설마하니 경험 많은 당신이 Emma(엠마)와 Eomma(엄마)를 구분하지 못한다고요? Emma(엠마)는 내 이름이고 Eomma(엄마)는 마더란 거 아시잖아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그때 내 생각을 기습하며 여자가 물었다. “Are you Korean?” <계속>

 

 

테레사 리 (캥거루 회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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