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품격

‘전라도 개똥쇠’라는 말은 전라도 사람들을 폄하하고 차별하고 소외시키고 멸시하고 지역 색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지난 달 중순 발간돼 고국의 전국 서점에 진열된, 내 형님의 회고록 <1942년생 최인규의 특별한 기억>(동학사 펴냄)에 따르면 신문배달을 하고자 신문보급소를 찾아갔는데, 보급소장이 ‘전라도 개똥쇠’라는 이유로 신문배달을 시켜주지 않았다는 내용이 쓰여있다.

내가 열살 때 우리가족은 남녘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 생활의 시작이 행정구역상으로 용산구 용산동 2가 8번지였다. 사람들은 그곳을 ‘해방촌’이라고 불렀다. 6.25전쟁 때 북쪽피란민들이 모여 이룬 동네였기에 붙여진 별칭이었다.

우리가 얻어 든 셋방의 주인은 이북사투리를 진하게 쓰는 할머니였는데, 그 할머니를 동네사람들은 ‘재덕이 할매’라고 불렀다. 재덕이 할매는 손자 ‘재덕’이와 단둘이 살았다. 나보다 한 학년이 아래인 재덕이가 지 아버지는 죽었고 지 엄마는 다른 데로 시집갔다고 나한테 목소리를 낮춰 말해줬다.

나는 맨날 재덕이와 같이 또래들과 어울려 놀았다. 닭싸움, 딱지치기, 구슬치기, 팽이치기, 제기차기, 깡통차기 같은 것들을 하면서 놀았다. 재덕이는 걸핏하면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날도 딱지 따먹기를 하다가 재덕이와 싸움이 붙었다. 나는 재덕이의 코피를 터트려놓았다. 이를 본 재덕이 할매가 나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 ‘전라도 개똥쇠’라고 소리질렀다. 나는 그때 막연하지만 ‘전라도 개똥쇠’는 ‘상소리’ 라는 느낌을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때 같은 반에 ‘홍형표’라는 자식이 있었다. 이 자식이 나와 언쟁만 붙으면 ‘전라도 개똥쇠’라면서 손가락질을 해댔다. 나는 운동장에서 녀석과 싸웠고 녀석은 코피가 터졌다. 그 후 그 자식은 다시는 나에게 ‘전라도 개똥쇠’ 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전라도 개똥쇠는 전주와 나주에서 따온 말이며, 지금의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에 해당한다. 전라도 사람들은 나라가 평화로울 때는 묵묵히 고향을 지키면서 조용히 지내다가도, 국난이나 나라가 외침을 받아 위태로울 때에는 분연히 일어서서 나라를 구하는 조국의 방패요, 기수요, 간성의 구실을 다했다. 전라도 사람들을 ‘개땅쇠’라고 한다. 그런데 대개의 사람들은 ‘개땅쇠’를 ‘개똥쇠’라고 잘못 부르면서 마치 나쁜 뜻의 이름이나 되는 양 생각하고 있다. ‘개땅쇠’의 어원은 개땅 즉, 개펄을 개척하여 국토를 넓힌 개땅의 사나이들이란 말로서, 전라도 사람들의 개척정신과 투지를 상징하는 자랑스런 애칭이다.” 전라도와 개똥쇠의 어원에 대해 풀이해놓은 기록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애칭이 전라도 사람들을 차별하고 멸시하고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더불어 권력에 눈이 멀어 사람의 도리나 도덕성을 하찮게 여기는 수준 낮은 ‘정치꾼’들에 의해 악용됐다.

1960년대 정치꾼 이효상이라는 인물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후보를 지원하기 위한 대중집회에서 “갱상도 문딩이가 갱상도 문딩이를 안 찍으면 누굴 찍을 기고? 전라도 개똥쇠를 찍을 기가?”라고 발언해 지역감정을 선동한 원흉으로 기억돼 있다.

지난달 30일, 보수정당 자유한국당이 부산에서 정치집회를 열었다. 집회에서 당의 원내대표라는 인물이 “이 정권은 광주일고 정권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부산 울산 경남 지역의 주민들이 뭉쳐서 반드시 심판합시다. 서울의 구청장이 스물 다섯인데요, 스물네 명이 민주당이에요. 그 중에서 스무 명이 광주, 전남, 전북이더라고요”라며 광기를 드러냈다. 그녀의 어조는 거칠지 않았지만, 그녀가 말하려 하는 바는 거칠었다. 그녀의 말속에는 ‘전라도 개똥쇠’가 숨어있었다.

그녀는 ‘망국병’이라는 지역감정을 조장하면서 ‘전라도 개똥쇠’들의 아픔을 쥐어뜯었다. 구청장은 임명 직이 아닌 선출 직이고, 장관급 이상 광주일고 출신은 이낙연 국무총리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지역감정을 소환해 민심을 선동했다. 그녀의 언어의 품격은 저질이었다.

언어는 내면적 참 인격이라고 했다. 따라서 깊은 곳의 성품이 바뀌어야 언어가 바뀌는 것이다. 좋은 성품에서 좋은 언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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