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모시기

“싫어, 나 안 갈래!” “왜 싫은데요? “창피해… 92살 늙은이가 집에 가만있질 않고 사람들 만나고 하는 게… 싫어”

“아니 그렇다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만 있는 게 말이 돼요?”

“오늘 가보고, 정말 아니다 싶으면 안 가도 돼요. 그러니 오늘 한번만 가보고 결정하세요”

“글쎄, 싫은데 어떻게 가?”

어머니는 맥없이 화를 내며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버렸다.

침대 옆으로 무릎을 꿇어 눈과 귀 높이를 맞추고 “눈만 감으면 편해져요?” “아들 힘들게 하니 좋아요?” “제가 어렸을 때 엄마 말 안 들은 것 있어요?” 갖은 협박과 회유를 30분 가깝게 했지만 묵묵부답이다.

그래도 지금 하지 못하면 몸 움직이는 게 더더욱 힘들어질 것이 뻔히 보이는데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무 말 없이 감아버린 눈을 보며, 어떻게 해야 하나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며 나 역시 지켜보며 가만히 있기로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눈을 살짝 뜨고 감기를 여러 번 반복하며 아들 눈치를 보더니 “에이, 참! 부담스럽게 왜 그러고 있어?” 하며 화장실로 들어간 후 도통 나올 생각이 없다.

무릎도 저리고 시간상 픽업 버스도 떠났을 때라 ‘어머니의 창피한 마음’을 메시지로 담당자에게 간단히 전하며 개학 첫날부터 참석 못하는 미안함을 통고했다.

5분 만에 온 전화로 98세에 보행기 가지고 오는 어르신도 있고, 92세 언저리도 많다고 했다. 어머니를 바꿔드렸더니 솔깃해졌는지 마음의 변화가 읽혔다.

버스가 떠났어도 제가 모시고 가겠다고 약속하며 얼른 대화를 마무리하고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4년 가깝게 있던 캔버라 딸 집에서 시드니 아들 집에 온지 4개월 가깝게 되었다.

막내 친손자 결혼식 참석 후 코로나19에 걸려 발이 묶였고, 동생의 류머티즘 발병으로 앞으로는 아들 집에 있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익숙하고 섬세한 딸 집을 떠나 거칠고 서툰 아들 집이 불편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움직임 없는 ‘낮잠 자기, TV 시청, 독서, 뜨개질 등’의 방콕인 점이다. 사실 교민 밀집지역인 아들 집에 온 이상 정기적 외출과 여가 즐길 방안을 찾고 있었다.

한인 복지센터의 프로그램을 알아보던 중 어떻게 내 맘을 알았는지 아내가 우선 당장 쉽게 할 수 있는 한인성당의 은빛대학을 추천했다.

어머니 동의를 받아 매주 한 번 운영하는 노인프로그램에 참여키로 했는데 개학 첫날 아침에 이런 사단이 난 것이다.

아슬아슬한 우여곡절을 거친 후 서둘러 도착한 성당에서는 개학식 전 미사와 장례미사가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당혹스러움과 함께 낯설고 묘한 이 분위기에 어떻게 처신해야 할 줄 몰랐다. 몇 년 만에 나온 성당에서 며칠 전 대세를 받은 낯선 망자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된 급작스러운 우연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표정은 항상 생각해온 자신의 미래 모습이라 생각해온 장면인 듯 담담하고 평온한 모습이었다.

나 또한 유난스럽게 불편했던 마음을 정리하며 금세 평온해졌다. 말씀 없는 자태를 통해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

미사가 끝나고 망자의 시신이 안치된 영구차를 무겁게 보며 지나치고 있었다.

검은 옷으로 상복을 차려 입은 멀쩡한 집단 속에서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딸인 것으로 판단되는 젊은 여인의 눈은 유난히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슬프게 흐느끼고 있었다.

그분을 보며 슬프게 울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은 망자라 생각했다.

한 순간 어머니를 위해 울 자신 없는 내 모습을 뒤로 밀어버리자 캔버라의 동생이 떠올랐다.

허구한 날 신경을 곤두세우며 모녀간에 감정싸움을 해도 분명한 건 중요한 순간엔, 아들보다 딸이 더 필요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님 우울증 관련 상담을 했을 때였다. 여성 신경정신과 전문의와 어머님 모시는 문제의 질문 도중에 “아니, 정 안되면 제가 어머님 목욕시켜 드릴 수 있지 않나요?”고 묻자 “절대로 안 되는 일”이라 답했다.

솔직히 지금도 이 답엔 반신반의한다. 차마 “며느리는 요?”라는 질문을 못 했다. 듣게 될 답은 예상했으나, 내가 요구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도 이 질문은 전문의와 아내에게,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

수업일정이 끝난 약속시간에 역 주차장에 들어오는 성당 차를 보며 우산을 들고 달려갔다.

어떤 분과 다정히 인사를 하며 헤어지고 있었다. “잘 아는 분 이세요?” 하니 “아니 차에서 처음 본 사람” 한다. “동네 분이니 앞으로 동무하시면 되겠네요” 했는데 별 반응이 없다.

아들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어머니의 몸이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처럼 가볍게 좌우로 뒤뚱거리고 있었다. 손안에 잡히는 손가락은 삭정이 가지처럼 메말라 있었고 솜털처럼 부드러웠다.

“아… 어머니!” 갑자기 눈앞이 뿌연해졌다. 강인하고 억척스러웠던 맨몸뚱이 모습이 산산이 부서져 날아가고 있었다. 애써 고개를 돌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차에 타자마자 시동을 걸고 부드럽게 악셀을 밟았다. 그리고 두 아들을 키울 때 달래는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를 활용했다.

어머니로부터 “재미있었다.” “가길 잘했다.” “앞으론 아들 말 잘 들을 거다.” 답변을 만들어드렸다.

오늘 하루 잘 지낸 것에 평온함을 찾는 못난 아들의 이기심이 번뜩이고 있었다.

 

 

글 / 정귀수 (글벗세움 회원·전 버스운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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