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맛

해당 카운슬에서 그 동안 꽤 많은 양을 쳐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크고 작은 쓰레기들이 해변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모두 지난번 홍수로 떠내려온 것들입니다. 에메랄드처럼 푸르기만 했던 바다색깔도 확실히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몇 달 만에 찾은 센트럴 코스트… 일단 낚싯대를 깊숙이 던져 넣었습니다. 물이 더러워서 큰 기대는 하지 않고 갔지만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있던 몇몇 낚시꾼들이 빈손으로 하나 둘씩 자리를 떴고 우리도 막 마무리를 하려던 순간, 아내가 운 좋게 통통한 보니토 한 마리를 챙겼습니다.

많은 정성이 들어간 팥죽에 새알심까지… 우리를 위해 그분들이 특식으로 준비한 겁니다. 바다에서 두 시간 넘게 낚시를 하고 났던 차라 배도 살짝 고팠던 데다가 맛도 좋아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습니다. 우리를 향해 ‘동생’ 혹은 ‘제부’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는 그 선배지인 부부는 집을 나서는 우리에게 이것저것들을 바리바리 싸줬습니다.

손바닥이 벗겨져가며 다듬었다는 은행, 직접 쑨 도토리묵, 역시 직접 담근 코끼리마늘 장아찌, 녹두빈대떡… 모두모두 친정에나 가야 받아들 만한 것들입니다. “동생, 약속 없으면 제부랑 이번 주말에 놀러 와!” 자동차로 1시간 15분 거리이면 결코 가깝지 않은 곳임에도 그분들은 늘 우리를 그렇게 챙겨줍니다. 어쨌든 손님이 오면 이것저것 번거로울 텐데도 그걸 즐겨 하는 그분들은 분명 따뜻한 마음을 지닌 듯싶습니다.

고마운 선배지인 부부가 또 한 팀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광고주였지만 몇 차례의 만남이 계속되면서 이제는 그분들 집에까지 초대받는 사이로 발전됐습니다. 지난주에는 아내와 함께 식사초대를 받았는데 열 가지도 넘는 각종 나물이며 생선까지 정성이 가득 담긴 고향집 건강식탁을 만났습니다.

마음 넉넉한 사모님이 워낙 많은 양의 음식을 준비해놓은 상태라서 그분들은 우리가 집을 나설 때 맛있는 음식 보따리를 무겁게 들려줬습니다. 지난해 말, 저 혼자 갔을 때도 이런저런 것들을 잔뜩 싸줬는데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구하기 힘든 쪽파를 뒷마당 텃밭에서 아내에게 여러 뿌리 뽑아주기도 한, 겉보기에는 무뚝뚝하고 터프하기만 했던 그 사장님이 그렇게 가정적이고 자상한 분인 줄은 정말이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2주 전에는 우리 집에서 반가운 만남이 한 차례 있었습니다. 3년 남짓 전쯤부터 시작된 코리아타운 필자로서의 인연… 예기치 못했던 이메일 사고(?)로 시작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던 그분을 마침내 오프라인으로 만난 겁니다. 그분도 저도 처음에는 서로 어색해서 손도 맞잡지 못하고 엉거주춤 만남을 시작했지만 이내 서로의 속마음들을 들키기(?) 시작하자 5G 속도로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몇 잔의 술도 우리가 무장(?)을 해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줬지만 생각과 가치관이 비슷했기에 우리는 밤 열두 시가 다돼갈 때까지 이야기 꽃을 피웠고 헤어질 때는 뜨겁게 얼싸안을 수 있었습니다. ‘뉴질랜드로 돌아가기 전에 한번 더 보자’고 했던 약속이 그분 사정으로 지켜지지 못했지만 우리는 빠른 시일 내 또 다른 재회를 가지기로 했습니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쉽게 정을 주지 않는 성격인 아내도 그분들과는 코드가 통했던 모양입니다. 그분의 딸도 처음에는 아내를 ‘사모님’이라 칭하더니 슬그머니 ‘언니’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아내는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비롯해 이런저런 것들을 주섬주섬 챙겨줬습니다. 평소 ‘코리아타운 사장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 했을 그 분의 사위는 저에게서 제 특유의 찌질함을 느꼈을지도 궁금합니다.

트리플(?) A형의 소심한 성격의 아내나 저는 사람을 쉽게 사귀지 못합니다.  많은 시간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한참을 겪어본 후에야 어렵사리 친구가 되는 우리는 그래서 ‘건방지다’ 혹은 ‘공주과다’라는 오해와 억측을 받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답답한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요 얼마 동안은 그래도 좋은 사람들 덕분에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갈수록 팍팍해지고 살기 어려워지는 세상이지만 찌질한 우리를 살뜰히 챙겨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 살맛이 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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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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