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a Small World

저녁 늦게 모습을 드러낸 차 주인은… 내가 다니는 영어학교 선생님이었다

호주에 와서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할 때였다. 영어수업이 끝나자마자 오후 세 시에 아이들 픽업을 해야 하니 서둘렀다. 그날따라 많이 늦어져서 거리에 주차한 차를 급히 쓰리 포인트 턴을 하다가 그만 다른 차 운전석 문 쪽에 약간 흠을 냈다. ‘아무도 못 보았겠지…’ 그냥 모른 척 누가 볼까 급히 운전해서 얼마쯤 왔을까?

 

01_양심의 소리는 나의 도덕성에 이의를 제기한다

심장이 콩콩 뛰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양심의 소리는 나의 도덕성에 이의를 제기한다. ‘위선자, 자식들에게는 정직하라 가르치고 너는?’ 살면서 ‘네 이름 석 자에 부끄러운 일 하지 말라’고 가르쳐주셨던 아버지의 음성도 들렸다.

나는 즉시 되돌아가서 창에다 쪽지를 끼워 넣었다. ‘I apologize for damaging your car due to my mistake. I have NRMA insurance. Please contact me YOO TEL 0452….’

설상가상, 급하게 달리다가 경찰에 적발되어 딱지까지 떼었는데 어린이 집에는 늦었다고 벌금 $50을 지급해야 했다. What a day? 오늘 오후, 파도처럼 밀려든 불운한 사태를 괴로워하며 복잡한 심경을 생활기록부에 적었다.

잠시 내 인생의 하프타임을 가져본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궁금, 불안, 드디어 저녁 늦게 그 차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내가 다니는 영어학교 선생님! What a small world?

심술스럽게 생긴 그 여자… 어휴, 난 죽었다! 에세이 한번 봐 주는데 어찌나 스트릭 (strict) 한지 참다가 ‘I am not an Australian’ 대들었던 기억이 난다.

 

02_I am not an Australian이라고 대꾸만 안 했어도…

시간을 정해서 남편도 동행하여 그 영어 선생님과 셋이 정비소를 향해 가니 바늘방석이 따로 없다. 견적을 냈더니 $500이었다.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주겠다고 제의하니 그녀의 대답은 뜻밖에 ‘No’였다. 나를 바라보더니 내 얼굴에 협박이라도 하듯 제2의 정비소 즉, 자기의 단골 숍으로 가자고 한다.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찾아간 그곳에서는 놀랍게도 견적이 $1500이 나왔다. 순간 나는 후회 했다 ‘I am not an Australian’이라고 대꾸만 안 했어도…. 이민자의 불편한 관계가 이런 여운을 남길 줄 나는 진정 몰랐네….

남편도 심기가 불편하여 “만약 내 아내가 쪽지를 안 써 놓았다면 어쩔 뻔 했소. 마음대로 하시오” 하고 돌아서버렸다. 2주 후 코트 도장이 찍힌 편지를 받았다. $1500을 주라고 결정된 명령이었다.

호주는 정직하다고 하던데 이럴 수도 있단 말인가? 믿음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코트에 참석도 안 했는데 어떻게 이런 결정이 난단 말인가? 남편은 “영어 선생이니 오죽 잘 처리했으랴” 한다.

그러나 나는 너무 억울해서 ‘이대로는 안 되지’ 하는 마음으로 호주 친구 로빈의 소개로 유능하다는 신들려, 케빈 변호사를 만났다. 하지만 그는 코트에서 이미 결정 난 것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다.

 

03_5개월 후 한번에 현금 $300만 주고 마무리하자고…

“다른 방법은 없나요? 너무 억울해서요” 하며 매달렸다. 그러자 순간 남편 눈치를 보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사고 낸 차 사진을 가지고 와보라고 하였다. 사진을 본 변호사는 어느 각도로 봐도 내가 내지 않는 흠까지 이 참에 고쳐보려는 그녀의 의도가 느껴지지만 결정된 $1500은 내야 한단다.

그러나 “매달 $5만 주는 방법도 있지. 그것도 수표로만 3개월을 보내면 아마 역전이 되리라” 하는 의견을 주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서서히 안정은 찾아갔지만 그 영어선생님을 가슴에 담기엔 너무나 초라해진 나의 진심이었다.

그렇게 $5불씩 매달 지불하기 시작한 5개월 후 그녀는 잘 억제된 차분한 음성으로 한번에 현금 $300만 주고 마무리하자고 연락이 왔다. ‘오,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날 밤 그녀의 차창 똑같은 그 자리에 다른 쪽지 하나를 끼워 넣는 꿈을 꾸었다. ‘I am not an Australian이라고 대꾸한 것은 제발 잊어 주세요.’

 

글 / 유수임 (글벗세움 회원·AMEB 피아노 Tea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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