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2023년 계묘년 (癸卯年) 검은 토끼해 새해다. 토끼든 호랑이든 돼지든 새해가 되면 으레 지나간 날들을 돌이켜보면서 이루지 못했거나 잘못했던 것들을 아쉬워하고 후회한다. 하긴 그래야 제대로 된 사람일 터다. 아직 사는 것에 물들지 않은 아이들은 빼고.

평소에는 사는 게 정신 없다면서 하루하루 헉헉대던 사람들도 한 해의 끝자리나 앞자리가 되면 그제서야 부족했거나 미진했던 것들에 스스로 변명도해보고 자책도 한다. 그래도 그렇게 자신을 정돈하고 성찰함은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나도 그렇지만 적잖은 사람들이 새해가 와도 그러려니 한다. 새해란 실상 면면한 세월의 똑같은 한 토막이라며 1월을 13월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지만, 새해는 분명히 겨드랑이에 날개 돋기만 기다리는 엎치락뒤치락 메마른 인생들에게도 꿈틀거림을 부추긴다.

지나간 것을 반추하며 새로움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새해에 걸맞게 새로운 결심을 한다. (사실은 해가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결심이지만 새해니까 새로운 결심이라고 해두자) 결심의 명제가 주로 금연, 금주, 규칙적 운동, 부부싸움 안 하기 등등 뭐 대충 항시 귀에 익은 것들이다.

사람들은 이런 결심을 몇 번씩이나 되풀이하면서도 기억을 못하고 새로운 결심으로 착각한다. 실은 기억을 못하는 것이 아니고 행하지 않은 거다. 작심삼일이다. 나 역시 살면서 제대로 이룬 결심이 없다. 그런데 딱 한가지는 확실하게 이뤘다. 그건 금연이다. 그러고 보니 담배 끊은 지 27년이됐다.

금연하겠다고 작심하고 사흘은커녕 이틀도 못 버티고 또 작심하고를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나하고 어지간히 다퉜다. 담배 끊었다고 주위에 소문도 내보고, 피우던 담배를 곽째 던져버리기도 했지만 자고 나면 다시 피우곤 했다. 별것도 아닌 그깟 담배 하나 끊은 것 가지고 그렇게 자신과 싸웠으니 좀 계면쩍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새해가 됐다고 해서 뭔가 새로운 결심을 해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없다. 생각 없이 꾸역꾸역 살아온 것이 몇 해인지 계산도 안 된다. 어물어물 그냥 그렇게 세월을 보낸 거다. 많이 늦은 것 같긴 하지만 이래선 안되겠다는 마음으로 올해에는 정중하고 의식 있고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은 인간이 돼보자는 생각을 했다.

내가 올해 결심한 명제는 딱 한가지다. 이것저것 결심해 봐야 하나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 같아서다. 그것이 ‘깔끔하게 말하기’다.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말은 오해의 근원’이라고 했다. 말하는 걸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렸지만 말하지 않는 법을 익히는 데에는 60년이 걸렸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말이 자욱하다. 걷어내고 싶다. 작심삼일이 안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다.

서울대학교 교수이며 칼럼니스트인 김난도 교수가 펴낸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어느 초등학교 국어시험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나왔다. 결심한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하고 곧 느슨하게 풀어져버리는 것을 무엇이라고 할까요? 다음 ㅁ 안에 들어갈 말을 쓰세요. 작ㅁ삼ㅁ.

답은 물론 작심삼일 (作心三日)이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이렇게 적었단다. 작(은)삼(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집에 작은삼촌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맞아, 맞아! 하며 박장대소한다. (중략) 하지만 나는 단언한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에 품었던 단단한 결의는 사흘을 가지 못한다. 가장 훌륭한 위인들도 작심삼일 한다.’

그래 맞다. 그럴 거다. 우리 모두는 어김없는 ‘작은삼촌’들이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결심들을 했겠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작심삼일이 되었겠는가. 그래도 작심삼일 한다 해도 내게 주어진 나의 삶에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작심해야 한다. 사람답게 살려면 성찰하고 부끄러운 것들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을지라도 살면서 늘 무언가 결심할 줄 알아야 한다.

일본의 이시우라 쇼이치라는 교수에 의하면 습관을 바꾸는 일은 뇌 구조가 변해야 가능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달의 반복이 필요하다고 한다.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삼십일’은 돼야 습관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다.

결심한다는 것은 내면화 돼있는 습관에 변화를 시도하는 것일 터다. 습관은 무서운 것이라 했다. 그만큼 습관을 고친다는 것은 어렵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작심삼일일지라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작심해야 한다.

우리들에겐 각자 살아가야 할 제 각각의 삶이 있다. 그 삶을 충실히 사는 것이 삶에 대한 도리이고 예의다. 올해엔 뭐든 결심하고 한번 실행해보면 어떨까.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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