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의 즐거움

“어차피 다시 내려올 걸 힘들게 뭐 하러 꼭대기까지 올라가? 우린 여기서 삼겹살에 소주나 한잔 하고 있을 테니 부지런히들 올라갔다 오라구. 아, 여기 딱 좋네. 물도 시원하게 흐르고… 자, 자, 여기에 얼른 자리 펴자구.”

그렇게 3분의 2 정도는 도봉산 초입에 주저 앉았고 저를 포함한 나머지 인원들은 정상을 찍고 돌아왔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뭘 하든 제대로 해야 한다’는 범생이적(?) 사고방식 때문에 그날도 끝까지 올라갔다 온 겁니다.

베이스캠프(?)는 이미 거나한 분위기가 돼 있었습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내려온 우리도 ‘삼겹살+소주’가 주는 환상의 조합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모두들 즐겁게 웃고 떠드는 가운데 디자인팀 함흥수 대리의 양쪽 손에 커다란 거즈가 붙어 있는 게 보였습니다.

세상에나… 휴대용 버너 위에 납작하고 평평한 돌을 하나 주워다 올려 고기를 굽고 있었는데 그게 갑자기 기우뚱 쓰러지려 하자 무의식적으로 그 뜨거운 돌 판을 양손으로 잡았다는 겁니다. 얼른 피해도 시원치 않았을 상황에…. “그 맛있는 삼겹살들이 다 물속으로 빠질 판인데 어떻게 그걸 놔둬?” 그는 양손이 쓰라리다면서도 연신 술잔을 들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35년도 훨씬 전의 일이지만 한국의 등산문화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하면 시드니의 산행시스템은 참 건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곳에도 산행을 마친 후 함께 식사자리를 갖고 친교를 도모하는 팀들이 많지만 한국의 그것과는 기본부터가 다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시드니산사랑’ 팀의 산행방식이 참 좋다는 생각입니다. 매주 토요일 아침 6시 30분에 모여 Berowra에서 Berowra Waters까지의 11킬로미터 남짓 되는 The Great North Walk 코스를 걷습니다.

중간휴식 및 충분한 간식 시간을 포함해도 산행을 마치고 나면 오전 10시 30분 정도가 됩니다. 그렇게 함께 땀 흘리고 건강과 행복을 공유한 후에는 각자 집으로 향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토요일 하루가 매우 길고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존재합니다.

“맨날 똑 같은 코스만 걸으면 지겹지 않아?”라는 질문도 가끔 받지만 우리의 산행 제1목적이 건강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우리는 몸과 마음의 건강관리에 최우선을 둡니다. 그리고 세 달에 한번씩은 홈그라운드(?)를 벗어나 원정산행을 갖기도 하고 2박 3일로 훌쩍 여행을 떠나 단합의 기회를 갖기도 합니다.

지난주 토요일, 오랜만에 원정산행을 가졌습니다. 시드니 남쪽 Heathcote Station에서 출발해 Karloo Pools를 거쳐 Uloola Falls까지 왕복 10킬로미터를 돌아오는 Karloo Track이었습니다.

소요시간은 편도 2시간 30분, 난이도는 ‘Hard’로 표기돼 있었지만 우리는 갈 때도 올 때도 한 시간 반 만에 주파를 했습니다. 워낙 걷는 데에는 이골(?)이 난 사람들인 데다가 평소 우리가 걷는 Berowra가 워낙 업 다운이 심한 코스라서 어지간한 산은 별 문제 없이 오르내리고 있는 겁니다.

모처럼 차를 놓고 트레인에 몸을 실으니 소풍 가는 기분이 들어 또 다른 즐거움과 편안함이 느껴졌습니다. 반환점에서 둘러앉아 까먹은 김밥과 컵라면은 미슐랭 별 3개짜리와 맞먹을 정도였습니다.

극심한 가뭄 탓에 Uloola Falls에서는 폭포는커녕 물줄기 하나조차도 볼 수 없었지만 중간지점인 Karloo Pools에는 물이 좀 차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 몇몇도 차가운 물속에 발을 담그고 첨벙첨벙, 잠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했습니다.

시드니에서의 산행은 한국에서처럼 삼겹살에 소주 혹은 막걸리에 파전을 먹는 즐거움은 없습니다. 하지만 매주 토요일마다 산에서 느끼는 나무 냄새, 사람 냄새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훨씬 더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는 생각에 우리는 늘 고마운 마음을 담아 한 발짝 한 발짝을 내디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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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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