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조품 따라잡기’보다 인생철학 분명한 ‘자기 브랜드’ 삶 속에 심어야

유명 박물관에 가서 책에서나 명성으로만 들어오던 역사적인 작품들을 감상할 때의 그 두근거림은 오랜 여운을 가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걸려있는 그림 가운데 상당수는 모작 (模作)도 있다고 합니다. 원화와 똑같이 그린 그림을 수시로 돌려가며 전시하는데, 실제 작품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한 고육책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01_위대한(?) 위조작가

실제로 오래 전 러시아 페체르 부르크 에르미타쉬 박물관에 갔을 때 유명 그림을 옆에 놓고, 공인된 작가가 공식적으로 모작을 그리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공식적인 모작이 아닌, 시장에 흘러나오는 ‘위조품’의 경우입니다. 어느 전문 감정인의 말을 들어보면, 고서화의 경우 유명 작가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시회’조차 전시되는 작품이 거의 다 가짜 위조 작품으로 채워졌다고 합니다.

특히 오스트리아 비엔나에는 아예 위조된 예술품만 전시한 위조박물관 (Museum of Art Fakes)도 있습니다. 이곳에는 네덜란드 출신 천재적인 위작작가(?)로 2008년 BBC에 의해 ‘인류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사기꾼 1위’로 선정된 반 메헤렌의 작품들이 단연 눈길을 잡아 당깁니다.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연합군은 헤르만 괴링이 약탈한 것으로 추정되는 예술작품 중에서얀 페르메이르 (=얀 베르메르)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작품 ‘간음한 여인과 예수 (Jesus with the Adultress)’를 발견했고, 그것이 나중에 페르메이르의 위작 전문화가 ‘판 메헤렌’이 판매한 작품임이 밝혀졌습니다.

당시 나치 청산에 열을 올리고 있던 네덜란드 사람들 입장에서는 판 메헤렌은 국보급 그림을 나치 독일에 팔아 넘긴 전범 협력자로 보고, 반역죄로 법정에 세워 처벌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판 메헤렌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로 인해 재판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판 메헤렌: “그거 사실 위작이었소. 내가 조작한 거요.”

검사: “거짓말하지 마!”

판 메헤렌: “못 믿겠으면 즉석에서 내가 그려보겠소. 어떻소?”

검사: “좋다. 한번 해봐!”

 

결국 경찰 관계자들의 감시 아래 그녀는 3개월 동안 위작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저 사기꾼이 책임을 면피하려고 거짓말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서서히 정교한 위조작품이 나오는 걸 보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를 계기로 판 메헤렌은 전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으며, 네덜란드에서도 국보급 보물을 팔아넘긴 매국노에서 더러운 나치놈들을 골탕먹인 ‘위대한 사기꾼’으로 평가가 수정되었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녀가 헤르만 괴링에게 미술품을 넘기고 받은 돈은 위조지폐였다는 사실입니다. 사기꾼을 사기친 큰 사기꾼이랄까요? 어쨌거나 “사람은 위조화폐를 만들고 화폐는 위조인간을 만든다”는 말을 증명해주는 듯합니다.

 

02_600만불의 위작

메헤렌은 1936년엔 얀 페르메이르의 누가복음 24:29-31을 형상화한 ‘엠마우스에서의 만찬 (The Supper at Emmaus)’을 정교하게 위조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들고 페르메이르 전문가로 이름 높았던 브레디위스 박사를 찾아갑니다.

세심한 기법이 들어간 위작이란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브레디위스는 이 작품이 페르메이르의 작품이라 감정하고 맙니다. 당대의 전문가도 감쪽같이 속인 이 작품은 자그만치 600만불에 판매됩니다.

여기에 맛들인 메헤렌은 이제 돈을 위해서 위작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마다 사람들은 열광하며 거액으로 그녀의 위작을 서슴지 않고 사들였으며, 그녀는 돈 방석도 모자라 ‘돈 침대’에서 희희낙락하게 되었지요.

물론 그녀가 위작작가라고 위작만 그린 것은 아닙니다. 오리지널 작품도 당연히 남아있으며, 워낙 유명세를 탄 인물인 까닭에 그녀의 작품도 제법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고 합니다.

이런 스케일에 비하면 한국사람들의 위조는 ‘고목 나무에 붙은 매미’ 수준이라 할까요? 고작 낙관을 찍지 않고 아예 ‘낙관을 그린’ 위조부터 시작합니다. 당연히 손재 좋은 한국인들은 낙관도 실제 도장으로 더 정교하게 위조하지요. 가짜 낙관을 1,000개나 가진 고미술상도 있고, 어떤 인쇄소에서는 단돈 2800원에 30분이면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지문 틀을 완성해준다고도 합니다.

작가들이 손바닥을 찍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지요. 부득이 낙관을 찍을 수 없을 땐 다음에 찍어주긴 하지만 말입니다. 손바닥을 찍는 것은 안중근 의사가 1910년 중국 뤼순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남긴 서예작품마다 낙관을 대신해, 안 의사가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구국을 맹세하여 잘랐던 왼손바닥을 찍은 데서 유래합니다.

한국박물관 개관 100주년으로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한국서예사 특별전 ‘안중근’에 출품됐던 작품 가운데, 이런 가짜 작품이 섞여 있었다고 합니다. 국보 혹은 보물로 지정된 안 의사의 ‘진품 작품’은 부르는 게 값이고, 없어서 못 팔 정도이니 당연히 위조품이 나올 만하지요.

 

03_얼굴 없는 위조인생

이처럼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 보았을 땐 진품과 구별이 안될 정도로 출중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대작을 만들지 않고 ‘한탕 대박’에 유혹을 받아 이런 위조품이나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퍼집니다.

그 정도의 천부적 재능이 있다면,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자신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갔다면 어떤 인생이 펼쳐졌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선에 목돈 벌기가 쉬우니, 그런 세계로 발을 들여 평생 어둠의 세계에서 ‘얼굴 없이’ 남의 작품과 남의 이름으로 살아야 하는 그들의 인생이 얼마나 안타까운지요?

여기서 또 하나 생각해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그 어떤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고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는 ‘자기 개발세미나’와 ‘성공 다이제스트’에서 안내하는 방법론을 따라가려는, 성공을 향한 ‘모작’과 ‘위작’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저 ‘쉬운 성공’에 타는 목마름으로 형식과 껍질만 차용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성공 대박’을 노리며 철학도 비전도 없이, 무분별하게 자기개발 프로그램을 따라잡으려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위조 프로그램’들도 얼마나 많은지요?

이제 우리의 삶도 ‘위조품 따라잡기’에 아까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기보다, 확고한 인생철학이 분명히 새겨진 원색적인 ‘자기 브랜드’를 삶 속에 심었으면 합니다. 기존에 남이 사용한 방법론을 따라갈 때도 겉모습만 위조하는 것이 아닌 ‘오리지널’ 성공 인생의 ‘진국’이 다 우러나기까지 푹 숙성시키고 내공을 쌓아, 안팎이 원전과 동일한 ‘모작’ 되었으면 합니다.

 

글 / 송기태 (상담학박사·알파크루시스대학교 원격교육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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