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삐가 그리우면

그저 ‘멍멍’ 짖는 게 아니라 날 기다리고 그리워했다는 걸 알았더라면…

이 년 전 여동생은 파양된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한 뒤 제게도 강아지를 데려다 기르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버려진 개들을 거두어 키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그래서 알게 되었지요. 좁은 옥탑방에 살면서 몇 십 마리의 개 짖는 소리에 이웃들의 따가운 눈총과 질책을 받기도 하고, 농가 주변의 채소밭을 망가뜨리는 통에 몇 백 마리가 넘는 놈들을 끌고 수도 없이 이사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01_버려졌다는 생각보다는 주인을 놓쳤다고 생각한답니다

녀석들을 뿌리치지 못하는 한결같은 이유는 보호자에게 보여주는 그 놈들의 변함없는 애정 아닐까요? 물론 먹이만 주면 곧바로 새 사람을 따라나서는 의리 없는 놈들도 있겠지만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동영상에는 버려진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녀석들의 모습이 자주 올라옵니다.

교통이 정체된 틈을 타 슬그머니 차 밖으로 내 버려진 강아지가 필사적으로 자기가 탔던 차를 따라 달리는 영상도 있습니다. 어떤 훈련사의 말대로라면 개들은 자기들이 버려졌다는 생각보다는 자기가 주인을 놓쳤다고 생각한답니다.

오늘 아침 영상은 독일 세퍼드가 수영장에서 허우적거리는 주인을 보자 그 즉시 물에 뛰어들어 구해내는 장면이었습니다. ‘죽은 척하기’나 ‘슬픈 척하기’로 이놈들의 애정과 충성심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못마땅하지만, 개들의 이런 행동이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합니다.

이런 녀석들을 갖다 버리거나 파양을 하는 데는 이유가 참 많습니다. 말을 안 듣고 짖거나 여행갈 때 맡길 사람이 없어서 등등일 텐데 정직하게 말한다면 ‘더는 돌보기가 싫어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02_미동도 안 하는 녀석을 보니 잊고 있다 생각했던 뽀삐가…

크리스마스만 지나면 영국에서만도 2만 마리 이상의 반려동물이 버려진다고 합니다. 어떤 강심장이기에 같이 살던 식구를 갖다 버릴까?

며칠 전 일입니다. 동네를 지나다가 어느 집 마당에 강아지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철제 울타리 앞에 바짝 붙어 앉아 있더군요. 현관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것을 보니 주인이 외출한 모양입니다.

‘누구 기다리니?’ 물으며 다가갔습니다. 보통의 개들이면 모르는 사람을 경계해서 짖거나 아니면 따라 나서기라도 할 것처럼 꼬리를 흔들며 울타리 안에서 서성거리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이 녀석은 고개도 안 돌리고 제가 지나쳐왔던 곳만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어린 개에게도 그런 눈빛이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기다림에 지친듯한 그런 눈빛 말입니다. 미동도 안 하는 녀석을 보니 문득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우리 뽀삐가 생각났습니다.

 

03_저에게 보란 듯이 뒷발로 서서 왔다 갔다 하던 녀석

제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우리 집에 뽀삐라는 강아지가 들어왔습니다. 뽀삐가 우리 집에서 살 때 녀석은 산책하러 나갔던 적도, 동네 이곳 저곳을 뛰어다녀 본 적도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 보통 개들은 목줄을 하고 있었지요. 우리 뽀삐도 그렇게 자기 집 모서리에 연결된 목줄을 걸고 학교에서 돌아온 저를 보면 반가워서 깡총 댔습니다. 하지만 전 무심히 한번 쳐다보고 집 안으로 들어가곤 했지요. 어쩌다가 앞 다리를 잡고서 뒷발로만 걷게 해 본 적은 있습니다.

어느 날 집에 오니 요 녀석이 저에게 보란 듯이 뒷발로 서서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제가 없는 사이 연습을 한 것처럼 말입니다. 신통하고 귀여워서 ‘깔깔’ 하고 웃었던 기억은 분명히 납니다.

하지만 그 아이와 저와의 추억은 그 정도가 전부입니다. 인색하다 싶을 만큼 짧게 놀아주면서도 제 마음은 늘 딴 곳에 가 있었지요. 하루는 엄마가 “뽀삐 딴 사람에게 줄까?” 물으시더라고요.

 

04_낯선 강아지 앞에서 울었고 그제야 녀석이 고개를 돌려…

강아지에게 통 관심이 없어 보이니 제 마음을 떠보려고 하신 말씀일 거예요. 저는 엄마가 알아서 하라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뽀삐가 떠나는 날 저도 그곳에 있었지요. 어떤 여인을 따라가는 그 아이의 눈과 제 눈이 마주쳤는지 아니면 그것은 제 상상 속의 일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뽀삐는 우리 집에서 떠났습니다.

아… 아이가 혼자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그날들, 그 기억 속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참 고통스럽군요. 뽀삐가 그저 사람을 보면 ‘멍멍’ 짖는 동물이 아니라 날 기다리고 그리워했다는 걸 알았더라면 그렇게 못했을 텐데 말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걱정되면서도 저는 이 낯선 강아지 앞에서 울었습니다. 그제야 녀석이 고개를 돌려 저를 쳐다보더군요. 손을 내밀어 그 아이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혹여라도 저를 기다리게 되면 어쩌나 싶어서요. 살다가 가끔은 뽀삐가 그리워서 울 것 같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지요. 그래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글 / 박해선 (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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