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용서하기, 나를 용서하기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용서

<부모를 용서하기, 나를 용서하기>라는 책은 이런 글로 시작된다. ‘아버지가 오늘까지 살아 계셨으면 아동학대로 체포되었을 거야.’ 이 말을 자신의 누나가 하자 저자는 “말도 안돼!”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그렇지 않아!”라고 답을 했다고 한다.

 

01_부모 이상화 해 아픈 상처로부터 보호하는 자기방어기제로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어린 시절에 화가 날 때마다 지하실에 저자를 내려가게 하고 가죽 허리띠로 저자의 등을 수도 없이 때렸고 맞으면서도 울거나 소리를 내지 않아야 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한번도 같이 이야기를 하거나 같이 놀거나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저자의 어린 시절이 행복했냐고 물으면 행복했다고 말했고 가족들이 서로 친밀했으며 부모가 아이들을 잘 돌봐준 근사한 가정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는 평안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부모님을 너무나도 훌륭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자신을 길러준 부모님을 이상화 (idealization)하는 것으로 인해 과거의 아픈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되는 자기방어의 모습이다. 마치 밝고 좋은 면만을 생각하면 내 삶에 아무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같이 여기면서 말이다.

필자가 일하는 상담소나 학교에서는 가족상담을 할 때 가계도를 그리게 한다. 가계도란 가족의 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든 도표와 같은 것으로 이름, 나이, 결혼관계 등과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기록하고 나중에는 가족간의 관계를 표시하게 되어있는 가족평가에 사용되는 도구이다.

그런데 가족관계를 표시할 때 내담자 (client)들은 부모님과의 관계를 표시할 때 일반적으로 좋다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관계를 표시할 때 물어보는 질문 중에 “부모님이 당신의 어린 시절에 당신의 친구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느냐? 부모님이 함께 놀아주었느냐? 고민이 있었을 때 부모님과 나눌 수 있었냐?” 등의 질문을 하게 해서 이상화된 부모의 모습이 아니라 실질적인 부모와의 관계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02_나의 정체성과도 관계돼 있는 가족의 모습

가족의 모습은 깊은 나의 정체성과도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객관화시켜서 보는 것이 쉽지가 않다. 학교에서 가계도를 그려보면 가끔은 가계도를 그리는 학생들조차도 자신의 가계정보를 거짓으로 기입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가족과 관련된 수치심과 가족의 비밀, 또는 가족으로 인한 나쁜 기억들은 내가 없는 것처럼 여기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늘 따라다니는 부분이다.   이것의 쉬운 예는,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아버지나 엄마의 습관, 또는 말투, 행동이 나도 모르게 내 자녀와의 관계에서 반복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없는 것처럼 여겼던 과거의 아픈 가족의 모습이 현재의 가족의 모습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호주에 살고 있는 일부 사람들은 내가 경험한 가족의 아픔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필자의 학교에 인형치료를 강의하러 온 교수님께서 “여러분이 이렇게 멀리 떨어진 호주에 살고 있는 것은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다 이유가 있어요”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을 듣고 있는 당시의 필자는 호주에 살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말을 듣고 나니 왠지 마음의 한 켠을 강제로 내보인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분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나의 과거의 설명이 있었다. 늘 착한 아이로 살면서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던 나는 그런 삶이 아닌 나만의 ‘자유로운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에 대한 부담감, 사회적인 요구의 부담감으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결국은 먼 곳 호주로 오게 한 무의식적 이유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정의 경험이 고통스러워서 모두 가슴에 묻어버리고 다시는 기억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을 해도 그 가족을 떠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리고 사실은 그렇게 떠나는 것이 건강한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그것이 삶의 다른 모습에서 부정적 영향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03_용서는 상처 입힌 사람과 상관 없는 자신을 위한 일

한 남성은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학대가 너무나 싫었고 그것을 방관하던 엄마도 너무나 싫어서 부모님과 연락을 끊은 채로 살아가지만 가끔 부모와 다정한 모습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한번씩 스쳐가는 과거의 경험이 되살아나 괴롭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주 우울감과 피곤함을 심하게 경험하고 있다. 자신은 무의식으로 과거의 아픔을 밀어 넣었지만 자신의 육체와 감정은 자극이 올 때마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고 여전히 아프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를 용서하기, 나를 용서하기>의 저자는 이런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바로 용서라고 말한다. 용서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상처받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갖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본인이 왜 용서를 해야 하는 지를 모르겠다는 사람도 있고 용서는 절대로 하지 않겠고 그들이 마땅한 결과를 경험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저자인 데이빗 스툽은 용서를 선택할 때 내가 자유롭게 풀어지고 현재 내게 중요한 다른 관계의 문제들도 제 자리를 찾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용서는 나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과 상관이 없고 그들과 개입할 필요가 없는 바로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용서를 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과정은 손상을 인식하고, 연관된 감정을 파악하고, 상처와 분노를 표현하고, 보호하기 위한 경계선을 설정하고, 빚을 청산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용서의 과정은 다양할 수 있지만 일정한 과정의 공식을 이용하는 것이다.

용서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는 한 번에 되기 보다는 일정한 과정을 거쳐서 되는 것으로 단순하거나 쉬운 과정은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자유로워지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도구라고 한다면 ‘용서’라는 것은 시도할만한 가치 있는 활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용서를 통해서 더욱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길 바란다.

 

상담사로 일한다는 것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김 훈

 

 

 

Previous article기분 좋은 사람들 덕분에…
Next article일용직근로자의 정규직 전환과 CE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