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동심의 환타지 창조한 스페인 3대 화가 호안 미로

벽화, 석판화, 조각, 도예 등 미술 모든 분야서 독창적 세계관 표현

호안 미로 (Joan Miro 1893년~1983년)는 피카소, 달리와 더불어 스페인의 3대 화가로 꼽히는, 세계와 스페인이 사랑하는 위대한 화가이다. 회화 작품뿐만 아니라 벽화, 석판화, 조각, 도예 등 미술의 모든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고 그 작품 하나하나에 자신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표현해 많은 걸작들을 남겼다.

 

01_순수한 내면의 세계 따스하고 경쾌한 어린아이 시선으로 표현

갈라테아 1976년, 석판화

호안 미로만큼 순수한 내면의 세계를 따스하고 경쾌한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표현한 화가가 있을까? 알록달록 아름다운 색채와 간결한 선의 조화로 이루어낸 환상적인 화면은 우리로 하여금 아무 제약도 없이 동심의 세계로 훨훨 날아가게 한다.

그곳에 존재하는 형태는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단순하고도 상징적인 기호들로, 그 자체의 생명력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우리는 마음껏 상상력을 이끌어낸 이 환상의 세계 속 한 생명체가 되어 화가가 창조해놓은 우주를 유영한다.

그의 작품을 보면 마치 색채와 선으로 이루어진 한편의 시를 보는 것 같다.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으로 하늘과 별과 새와 여인을 노래한 그는 진정한 색채의 시인이라 할 수 있겠다.

 

02_파리의 새로운 현대미술 공부, 가우디의 건물에 심취하며

경작지 1924년, 유화

호안 미로는 1893년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바르셀로나 근처 몬토로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시계제조와 금세공을 하는 이였고 어머니는 금속공예가로, 부모의 예술적 감성을 이어받아 뛰어난 미적 감각을 가진 미로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화가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부모는 불안정한 직업인 화가보다는 안정된 직장을 보장하는 상업학교에 가기를 원해 경영학교로 진학한 미로는 졸업 후 사무실 서기로 취직해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사무실 일이 맞을 리 없던 이 민감한 청년은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결국 신경쇠약과 장티프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모두 무너져 내렸다.

충격을 받은 그의 부모는 몬트로이크에 집을 사 미로가 요양하도록 하고 미술 공부하는 것을 허락했다. 1912년 미로는 바르셀로나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해 그렇게도 원했던 미술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후란시스코 갈리라는 스승을 만나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다.

선생은 미로가 눈을 가리고 그리려는 물체의 표면을 만져보게 함으로 그 물체의 성질을 느낄 수 있게 해 그의 상상력을 키워주며 미로가 사물을 표현하는 큰 영향을 미쳤다. 미로는 파리의 새로운 현대미술을 공부하고, 스페인의 유명한 현대건축가 가우디의 건물에 심취하며 차근차근 미술의 세계로 발을 디뎠다.

 

03_초기작품은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의 야수주의 경향

농장 1921년, 유화

미로는 몬트로이크와 마조르카 섬에서 풍경과 초상화, 누드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카탈루냐 지방은 피레네 산맥과 지중해의 해안선이 맞닿아 그 푸르름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곳으로, 태양과 바다와 하늘의 풍부한 색채와 그 속에서 풍기는 카탈루냐만의 정취는 미로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의 초기작품은 이러한 풍광을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로 표현한 야수주의의 경향을 띠고 있는데, 1918년 바르셀로나의 달마우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1919년 파리로 간 미로는 피카소와 교류하며 입체파에 입문하고, 파리와 바르셀로나를 오가며 입체주의적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19년작 ‘초상화’나 1921년의 ‘농장’은 입체주의적 요소와 미로 본연의 개성이 조화되어 나타난다.

‘농장’은 사실주의의 화풍 속에 입체주의의 향기가 드문드문 묻어나는 초기 작품으로, 미로가 어린 시절을 보낸 몬트로이크의 시골농장을 그린 작품이다. 건물의 낡은 벽, 헛간과 닭장, 저 멀리 물을 긷는 여인이 시골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한 잎 한 잎 정성스레 그린 중앙의 나무와 옥수수, 여기저기 포진해 있는 조그만 동물들과 소품들은 편집적인 디테일로 그려져 있는데, 작품 안에서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스페인의 풍광과 정서가 펼쳐진다.

이 ‘농장’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미로가 6개월간 심혈을 기울여 그린 이 작품은 사주는 화랑이 없어 한 카페에 걸렸는데, 그때 마침 파리에 있었던 헤밍웨이가 이 작품을 발견하고 아내에게 줄 선물로 이 그림을 구입한 것이다.

아직 세계 최고의 작가와 화가가 되기 전 20대 젊은 청년들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헤밍웨이는 이 작품을 매우 좋아해 스페인의 모든 것이 이 그림 안에 있다. 이 세상 어느 그림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하고, 미로도 헤밍웨이와 만났을 때 ‘농장’이 그에게 있어 기쁘다고 했다. 미로는1921년 이러한 입체주의적 작품으로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04_1924년 ‘경작지’로 자신만의 스타일 구축하기 시작

밤의 여인과 새 1968년, 유화

앙드레 부르통이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선포한 1924년, 미로는 ‘경작지’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에는 입체주의적 형태들과 초현실적인 풍경들이 어우러져 있고, 커다란 나무 속에 우리를 응시하는듯한 눈과 경작지의 모든 소란을 듣고 있는 듯한 귀가 보인다.

초현실주의와 미로의 독특한 내면세계가 결합되어 그려진 ‘어릿광대의 사육제’ (1924년~1925년)는 한창 초현실주의에 심취해 있었던 화가가 자동기술법 (오토마티즘)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화가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 기묘하고도 유쾌한 작품에서 공중을 날아다니는 자유로운 형체들은 각기 개성을 가지고 춤추고 있다.

왼쪽의 길다란 사다리꼴 위에서 마치 팡파레를 부는듯한 모습으로 떠있는 형체가 있고, 그 팡파레에서 나는 소리를 형상화한 듯 퍼져나가는 형태, 휘날리는 깃발마냥 나부끼는 형태들과 그 끝에 달린 조그만 푸른 별, 군데군데 보이는 뱀 모양 구불거리는 형태들은 바닥의 작은 소품들과 어우러져 카니발의 신나는 정경을 보여준다.

아래쪽 노란 옷을 입은 피에로의 우스꽝스러운 자태와 목줄에 걸린 채 재롱을 부리는 동물, 발이 달린 기타와 박스에서 튀어나오는 날개 달린 꿀벌모양들이 모두 웃으면서 춤추는 듯하다.

여러 가지 난해한 형태들이 난무하는 속에서 적절한 장소에 노랑, 파랑, 빨강으로 포인트를 주어 이 모든 형태들을 결합해 하나의 통일성을 갖추게 하고, 배경을 둘로 나누어 위쪽의 밝은 그레이 베이지톤의 색과 아래쪽 흐린 적갈색으로 안정감을 주었다. 화면의 배경은 넓은 실내에 창문과 테이블이 있는 평범한 방인데 그 안에 카니발의 온갖 요소를 다 펼쳐놓아 한정된 공간은 카니발의 열기로 넓게 퍼져나간다.

이 작품은 몸이 안 좋아 자신의 방에서 홀로 누워있던 미로가 비몽사몽간에 보여진 형체들을 무의식 속에서 그려놓았다고 한다. 특히 창문에 보이는 푸른 하늘과 빛나는 별, 검고 붉은 나무들은 병상에 있는 그의 바깥세계를 향한 동경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05_1930년대 들어서며 초현실주의 실험적 콜라쥬 작품 시도

블루 1961년, 유화

1927년 그려진 ‘푸른 별’은 추상화에 가까운 작품이다. 푸른 바탕에 몇 개의 선과 색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400억원을 호가하는 작품으로 미로가 얼마나 사랑 받고 있는 작가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1미터가 넘는 커다란 화면을 파랑이라는 한 가지 색으로 칠해 하늘을 나타내고, 상단 오른쪽의 십자 형태의 짙은 파란색 별과 밤을 나타내는 옆으로 길게 뻗은 삼각형, 그 위에 극도로 절제된 선, 그리고 작품 아랫부분의 강렬한 붉은색의 형태,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밤하늘의 별과 우리의 감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미로는 1929년 마요르카 출신의 필라르 훈코사 이글레시아스와 결혼했다. “내 작업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지만 관여하지 않네. 필라르는 완벽한 동반자네. 그녀가 없다면 나는 이 세상에 버려진 거지같은 존재였을 것이네”라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썼을 정도로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일생을 함께 보냈다.

같은 고향 출신인 피카소가 10명 이상의 여인들과 사랑을 나눈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생을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산다는 것은 그의 작품처럼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후에 그들은 마요르카에 필라르-호안 미로재단을 설립하고, 필라르는 미로 사후에도 그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고 보존하는데 남은 여생을 바쳤다.

1930년대에 들어서며 미로는 초현실주의의 실험적인 콜라쥬 작품을 많이 했는데, 1931년작 ‘인간의 얼굴’은 캔바스 위에 나무, 철사, 실, 사포를 붙이고 유채로 그린 콜라쥬 작품이다. 또한 같은 해 제작된 ‘문 (오브제)’ 역시 경칩이 붙어있는 낡은 나무문짝 위에 유채로 그림을 그리고, 쇠붙이와 거위 깃털 등 여러 가지 오브제를 사용해 만들었다.

 

06_뉴욕 현대미술관 대회고전으로 세계적인 화가로 부상

새벽을 깨우는 별자리 1941년, 종이에 과슈, 유채

1941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대회고전으로 미로는 세계적인 화가로 부상했다. 1940년대는 그의 작품의 완숙한 열매가 맺히는 시기로, 별과 새와 여인의 모습을 원과 선, 단순한 색채, 상징적인 부호로 표현해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한 ‘성좌’ 시리즈는 그의 수십 년 작품생활과 예술관이 녹아있는 걸작들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작품들이다.

1941년작 ‘새벽을 깨우는 별자리’는 물에 적셔 구긴 종이에 과슈와 테레핀유로 그린 23개 ‘성좌’ 시리즈의 하나이다. 여인과 새와 별들이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에서 춤추는 듯한 이 그림에서 경쾌하고 아름다운 음악의 운율을 느낄 수 있는 것만 같다.

또한 1940년작 ‘여자와 새’는 종이에 유화물감을 옅게 바르고 그 위에 과슈로 그린 작품으로 가장 미로다운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나는 새 모양의 도형과 여인을 상징하는 듯한 형태들이 몽환적인 색채의 배합으로 이루어진 바탕 위에 강렬하게 빛나는 빨강과 검정, 노랑, 흰색의 조각들로 그려져, 기호화된 새와 여인이란 테마를 나타내고 있다. 38cm*46cm이라는 작은 크기의 종이 위에 그린 작품임에도 소더비 경매 354억원에 낙찰되어 미로의 인기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07_초현실적 환상의 세계는 무의식과 자동기술법으로 화면에 정착해…

어릿광대의 사육제 1925년, 유화

그는 자신의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무의식의 영역을 유영하며 그곳에 존재하는 작은 씨앗들에 상상력으로 뼈와 살을 이어 붙인다. 아름다운 색을 입힌 작은 생명체들은 그가 창조한 공간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뛰놀고 있다. 그의 이 초현실적인 환상의 세계는 무의식과 자동기술법으로 화면에 정착해 우리를 신비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가 여타 초현실주의자들과 다른 것은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기술한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연의 생명체들을 기호화시키는데 있다. 이 추상적인 작업은 수많은 수련과 시행착오를 거쳐 미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을 어떠한 미술사조에도 묶어 놓지 않고 항상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할 새로운 방식을 찾아나갔다. 그는 이제 회화 작업뿐만 아니라 판화와 세라믹, 대형 조각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말년까지 석판화 작업에 열정을 가지고 몰두해 수백 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여러 개의 판을 섞어서 찍거나 표면을 문지르거나 얼룩지게 하는 실험적인 방법으로 별과 여인의 이미지를 제작했다.

1976년 제작된 ‘갈라테아’는 물의요정을 뜻하는데, 미로 본연의 경쾌하고 아기자기한 형태들과 자유로운 붓의 궤적에, 미로 만년의 원숙함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08_세라믹 장인 로렌스 아르티가스와의 만남은 큰 충격을

여자와 새 1940년, 종이에 과슈, 유채

1944년 세라믹 장인 로렌스 아르티가스와의 만남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평범한 흙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불의 마술은 그를 사로잡았고, 함께 여러 가지 세라믹 작업을 하며 그의 예술세계는 점차 확장되어갔다. 1956년 파리에서 ‘화염의 대지’라는 주제로 전시한 도자기전은 많은 사람을 열광시켰다.

1947년 미국으로 간 미로는 신시내티호텔 벽화와 하버드대학 벽화를 그렸고, 1948년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 파리와 바르셀로나를 오가며 작품을 계속했다. 그리고 1955년 유네스코에서 벽화 제작을 의뢰 받은 미로는 이 벽화를 세라믹으로 제작할 것을 결심한다. 1957년 완성된 위대한 세라믹 벽화 ‘태양의 벽’과 ‘달의 벽’의 탄생이었다.

미로는 30년이 넘게 도자기 작업을 해 벽화와 오브제 수백 점을 남겼다. 특히 1981년과 1982년 사이 바르셀로나 시청 광장에 세워진 ‘여자와 새’는 22미터가 넘는 대작으로 미로 예술의 기념비 같은 작품이다.

 

09_진라면 봉지에도 그의 작품이 등장해 화제 모아

인간의 얼굴 1931년, 콜라쥬, 유채

미로는 1956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마요르카 섬 팔마에서 지내며 작업을 했는데, 그의 나이 68세인 1961년 제작된 ‘블루 1, 2, 3 시리즈’는 미로의 만년의 예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각각 3미터가 넘는 거대한 화면을 오로지 푸른색 하나로 채워, 끝없는 하늘과 끝없는 바다와 끝없는 내면의 영원성을 드러내는 이 작품은 미로의 작품 중 가장 추상적이고 가장 정신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푸르름 위에 종으로 그어진 붉은 선, 횡으로 열을 지어 있는 검은 점들… 이 단순함 속에 50여년의 작품 생활과 미로라는 인간 자체의 영혼을 갈아 넣었다.

하나의 선과 점만으로 내면의 우주를 표현하는 그의 기법은 붓으로 그은 선 하나로 산천을 표현한 동양의 선사상과도 닮아있다. 한 폭의 동양화나 서예작품을 보는 듯 무한한 우주와 한 몸이 된 해탈의 경지와도 같이 느껴진다.

2016년 서울에서도 ‘꿈을 그린 화가, 호안 미로 특별전’이 열렸다. 총 264점이 걸린 이 대규모 전시회는 호안 미로 마요르카 재단의 소장품과 석세션 미로 재단의 소장품으로 미로의 예술적 성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였다.

마요르카 섬에서 노년을 보낸 그가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과 이웃으로 친하게 지나고, 몇 년 전 진라면 봉지에도 그의 작품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던 것을 보면,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은 것 같아 왠지 마음이 흐뭇하다.

 

10_어린아이의 무심함 속에 그가 작품에서 말하려는 모든 것 집약

푸른 별 1927년, 유화

1975년 바르셀로나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몬주익 언덕에 호안 미로 재단이 세워지고, 1978년에는 마드리드 현대미술관에서 이 스페인 국민화가의 대규모 작품전이 열렸다. 많은 나이에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던 미로는 1983년 12월 25일 성탄절에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에는 직선, 곡선, 원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기호들이 화려한 색채의 옷을 입고 원초적인 생명력을 내뿜고 있다. 현실의 생명체와 추상의 결합으로 태어나 춤추고 있는 이들의 무심하고 경쾌한 리듬은 미로의 세계를 관통하는 어린아이의 천진함이다.

여러 미술사조를 거치며 그가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온갖 어려운 형용사나 철학이 난무하는 현대미술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만의 소박하고 천진한 둥지를 만들어 그곳에서 마음껏 뛰노는 어린아이의 무심함 속에 그가 작품에서 말하려는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는 것 같다. 호안 미로 미술관 벽에 쓰여진 그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나는 내 작품이 자연스러워 보이면 좋겠다.

새들의 노래처럼,

모차르트의 음악처럼.

그렇게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은 듯

그러면서도 긴 사색의 흔적이

드러나기를.”

 

* 다음 호에서는 상징주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의 환상적인 신화의 세계로 떠나보겠습니다.

 

 

미셸 유의 미술칼럼 (27)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환상적 원시회화 창조한 앙리 루소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미셸 유 (글벗세움문학회 회원·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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