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내리고 싶어요

나는 게으르다. 팀을 따라 떠나는 단체 여행을 엄두도 못내는 이유다. 그런 내가 매년 1월1일이 지나면 여행을 떠난다. 전세계를 들썩이는 휴가가 끝난 직후는 가격도 저렴하지만 약간은 호젓한 탓에 서비스가 특별하다.

 

올해도 변함없이 1월6일에 떠났다가 1월21일에 돌아왔다. 대형 유람선을 크루즈라 부르는데 손님2명에 1명의 직원 비율로 서비스를 받기에 나에게는 최고의 여행이다. 이번 여행도 10만톤 급의 배에 직원 1천50명이 2천3백명 정도의 탑승객을 태우고 2주를 흘러 다녔다. 시드니에서 출발하자 먼저, 안내자를 따라 배를 구경했다. 가장 내게 맞는 곳을 점 찍는 중요한 일정이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다음날의 일정을 세심히 챙겨 스케쥴을 잘 짜게 되고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는다. 매일 저녁식사 후, 방으로 다음날의 일정 표가 배달된다. 탑승객들은 프로그램에 나와있는 지명을 따라 가장 짧은 동선으로 움직이도록 표를 해 두는 것이 유람선여행을 즐기는 요령이다. 그래서 첫날의 배 구경은 그 여행의 시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에서의 생활이 지루해 질 즈음 뭍에 닿는다. 사흘을 내리 달려 도착한 곳은 인구 2천명이 채 안되는 작은 섬.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섬의 인구보다 많다. 큰 유람선이 바로 땅에 닿을 수 없어 텐더보트를 타고 내린 조그만 섬에는 바가지상혼도 없다. 순수한 인간성을 지닌 영혼들이 조금은 어색한 웃음을 띄며 배로 돌아갈 방문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껏해야 조가비로 만든 목걸이와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갈아 만든 팔찌, 야생 풀들로 만든 모자나 가방들이 전부다. 푸른 바다에 점점이 늘어서 있는 섬들은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작은 동전으로 쉽게 손 뻗을 수 있는 선물 뿐이다. 언젠가 어설픈 좌판 위 조잡한 물건들 사이로 1백년도 더 된 탐험가들의 물건들을 샀다던 이도 있었다. 나는 그런 축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마켓을 둘러보는 것이 색다른 즐거움이다.

 

이번 여행도 그런 소소한 일상으로 거의 매일 도착하는 항구마다 내려 새로운 경험으로 기억을 챙겼다. 가끔씩 대도시에 정박하게 되면 그 도시의 유명한 맛집을 찾아 호강하지만 그런 경우는 한 두 번이다. 배에는 온갖 진귀한 과일들과 세상에 이름난 음식들. 거기에다가 몸에 밴 친절로 승객의 불편을 덜어주려는 승무원들. 그들이 있어 더욱 더 유람선 여행은 즐겁다. 대도시의 인터넷에 나와있는 유명한 식당들도 이름값 일 뿐, 배에서 즐긴 정찬보다 못한 서비스로 팁이 아까울 때도 있다. 어쩌면 유람선여행의 성공은 이들의 서비스 덕분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 동남아 출신들이라 까무잡잡한 얼굴에 꾸미지 않은 밝은 웃음을 대하노라면 없던 식욕도 생긴다. 갖가지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다 방에 돌아오면 타월동물들이 매일 다른 얼굴로 반긴다. 14가지의 동물들을 만들어 보는 것 또한 잊지 못할 추억이다. 손에 물 안 묻힌 채 밥먹고 14박 15일을 즐기는 이 시간은 일년을 보내며 지친 나를 정화하는데 정말로 훌륭한 시간이라 아깝지 않다.

 

태평양을 도는 유람선은 주로 시드니에서 출발하여 시드니로 돌아온다.  인터넷도 전화기도 모두 꺼진 그곳에서 유일하게 외부로 통하는 것은 티비로 보여주는 호주뉴스다. 일상을 내려놓으려 떠난 여행이지만 떠난 세상이 궁금하기에 잠깐씩 채널을 뉴스에 맞춰본다. 11월에 시작한 호주의 산불은 끊임없이 바람들에 의해 옮겨다니고 아델라이드의 캥거루아일랜드가 반쪽이 다 타버렸다는 뉴스가 연일 계속나왔다. 배가 출발한 날에서 절반이 지나자 뉴스는 중국에서 시작한 우한바이러스가 해외로 나갈거라는 음울한 소식이 뉴스 끝자락에 나왔다. 그것은 북반구의 일이었다. 절대로 남반구로 내려올 바이러스가 아니었다. 뭐하러 중국 뉴스를 호주뉴스에서 다루느냐는 얘기도 식탁에 앉은 이들이 나눴다. 그 테이블에는 홍콩부부와 독일계 유럽인 그리고 이탈리안 부부가 시끄럽게 떠들고 그사이로 우리는 열심히 알아듣는 단어들을 줍느라 바빴다. 우리 옆에 서서 식탁 서비스 하는 직원들은 연신 빈 와인병을 바꿔주고 새로운 와인메뉴를 보여준다. 더 이상 바이러스는 우리들이 나눌 이야기거리가 아니었다.

 

휴가를 마치고 출근하면 사무실의 컴퓨터를 조작하는 것 조차 생소하다. 밀린 일로 분주한 일상을 보내던 내게 호주의 뉴스들은 일제히 코로나바이러스의 상륙을 보고했다. 그 며칠 후부터 호주 입국자들은 호주 북쪽에 위치한 섬의 수용소에 2주간 격리시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나를 본 친구들은 아슬아슬하게 쉴 시간을 놓쳤다고 놀렸다. 다음 배를 탔으면 그럴는지도 모른다.

 

불안하다. 그로부터 벌써 3개월이 지났지만 하루가 다르게 세계는 긴장하고 있다. 호주를 비롯한 전 세계는 하늘조차 막았다. 국내여행도 아직은 불안하다. 집 주변 50km 이상 움직이다가 꼭 필요한 이동이 아니면 벌금이 붙는다는 소식도 있다. 전세계의 사망자가 30만명을 넘었고 병을 앓고 나았거나 현재 앓고 있는 사람들이 4백만이 넘었다는 소식이 인터넷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호주정부도 내 주변에 바이러스보균자들이 지나가는지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면서 앱을 내려 받으라고 한다.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을 보균자로 의심하는 것 같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전세계는 새로운 세계로 내 몰았다. 서로를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그리고 오늘, 우리 모두는 1개월 이상 집에 머물러 있다. 나 또한 내년 여행을 기대하지 못한다.

 

현재 9만 여명의 유람선 종사자들이 바다에 떠있다고 한다. 특히 호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의 10%는 루비프린세스호 관광객과 승선원을 통한 전염이라는 통계가 유람선 비지니스 업계를 벼랑으로 몰고있다. 그들이 울릉공 앞바다에서 2주를 머물다 떠났지만 그들이 마닐라에 무사히 안착했는지 궁금하다. 바다의 추억은 그들이 있었기에 즐거울 수 있었다. 그들이 나의 손발이 되어 모든 서비스를 해 주었던 소중한 노력이 나에게 희망찬 1년을 선물해 주었다. 그런 그들이 바다에서 내리지 못한 채 떠돌고 있어 우울하다. 모든 유람선들의 종사자들이 땅에 내리고 싶어한다. 그들에게 머물 수 있는 선물을 줄 수 없어 안타깝다. 그들은 선물 받을 자격이 충분한데…..

 

 

장미혜 (수필동인 캥거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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