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있어 나도 있죠

‘브루노’는 시드니에 사는 내 딸아이가 지 새끼처럼 아끼는 개 이름이다. 나는 브루노가 어떤 종 (種)인지 모른다. 좌우간 덩치가 엄청 크다. 흔한 말로 산만하다. 짖는 소리도 착 가라앉은 천둥소리 같다.

이따금 딸아이에게 갈 때마다 뚜벅뚜벅 걸음으로 내 곁으로 오면 무의식 중에 나를 공격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가 들어 몸뚱이가 저린다. 그러면서 저 녀석이 딸아이를 공격하면 방법이 없겠구나, 라는 불안스런 생각도 들어 걱정이 쌓이기도 한다.

나는 어린 시절 개에게 발 뒤꿈치를 물려서 오래도록 심하게 고생한 적이 있다.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서인지 지금까지도 덩치 큰 개를 보면 저절로 움츠러든다.

내 맘속에 새겨져 있는 개에 대한 기억은, 특히 덩치 큰 개는 목줄에 묶인 채 밖에 있는 제 집에서 사는 것이다. 헌데 딸아이는 브루노를 집 안에서 키운다.

그뿐만이 아니다. 딸아이 부부 침대 곁에 잠자리를 만들어 사람새끼처럼 재운다. 나는 딸아이가 조그마한 애완견을 키우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릴 걱정도 없고, 물려봐야 상처 날 것 같지도 않으니까.

딸아이는 새 생명을 포기하고 외로움 속에서 방황할 때 만나서인지 덩치 큰 브루노에 대한 애정이 유난하다. 브루노 역시 자신이 버림받고 병들어 있을 때 데려다 정성을 다해 병을 치료해주고 키워서인지 흡사 사람새끼 마냥 딸아이 곁을 맴돌면서 잠시도 떠나지 않는다.

사람만 ‘내가 힘들 때 곁에 있었던 사람’은 절대 잊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짐승도 자신이 힘들 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은 절대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지만 딸아이와 브루노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아낌이 절대적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관계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것은 함께하는 것이다. 사랑하면 함께 있으라고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함께하면 거리를 두라고 했다. 함께한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숨길 수 없고, 치장할 수 없고, 화장할 수 없는 본래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하면 단점이 드러나고, 어둡고, 맑지 않고, 감추고 싶은 본래의 것들이 들어나고 만다. 허상이 아닌 실상을 마주하게 되는 거다. 감춰졌던 실상의 모습들은 필연적으로 실망, 짜증, 지겨움을 동반하게 돼있다. 해서 함께한다는 것에는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껴안는 순수함과 진솔함과 따뜻한 애정이 깊게 스며들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칼릴 지브란 (Kahlil Gibran 1883년 1월 6일-1931년 4월 10일)은 레바논계 미국인이다. 그는 예술가이며, 시인, 작가, 사상가, 철학자였다. 인생을 심오한 깊이로 사색한 그는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는 시를 통해 함께 있음의 아름다움을 얘기했다.

그는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고 했다.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 말라, 그보다 너의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고 했다.

이 시에서 말하는 ‘거리’나 ‘하늘 바람’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의미하는 것이며 ‘출렁이는 바다’는 존경과 예의를 뜻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함께 있을수록 서로를 포용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하는 거다.

딸아이와 브루노는, 비록 사람과 동물이라는 서로 다른 개체이지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존중한다. 그들 사이에는 짙은 연민과 아낌과 배려와 믿음이 출렁이는 바다라는 이름으로 놓여있는 거다. 그래서 언제나 함께 있어도 불편하지 않고 지겹지 않고 따스함 만이 숨쉬고 있는 거다.

얼굴도 마주친 적이 없는 ‘가슴 떨릴 때’ 여행을 즐긴다는 지인 부부가 있다. 그들 부부의 별명이 ‘껌딱지’라 한단다. 여행을 가든, 낚시를 가든, 야영을 하든, 술을 마시든, 밥을 먹든, 친구를 만나든 두 사람은 떨어지지 않는 껌처럼 늘 함께 다닌단다.

잠잘 때도, 눈뜰 때도, 일어날 때도, 산책할 때도 그렇게 함께 있단다. 나이를 가늠해보면 오래도록 함께 있어 지칠 때도 지났건만, 여전히 변함없이 그렇게 함께 있단다. 그들 사이에는 분명히 ‘하늘 바람’이 ‘출렁이는 바다’가 놓여있을 거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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