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하는 말

내가 중고등학생시절에 읽은 글들 중 나라와 민족에는 전혀 관심 없는 제 부귀영화에만 목숨 건 친일파들의 글들이 상당부분이었다. 서정주, 모윤숙, 노천명, 김동인, 이광수 등등 민족의 횃불이라고 떠벌린 대다수가 알량한 글 솜씨를 총동원해 제 민족에게 온갖 행패를 마다하지 않은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했다. 창씨개명에 앞장서고, 천황의 신민 됨을 자랑하고,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충동질했다.

세상을 모나지 않게 둥글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정의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그들은 세상은 힘있는 자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며, 힘있는 자들이 말하는 대로 믿고 따르는 것이고, 힘있는 자들의 그늘이 평화롭다고 주장한다.

생각 없는 갈대처럼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연체동물처럼 흐느적대며 살아가자는 것이다.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잘못된 것들은 보지도 듣지도 말고, 보기 좋은 것들만 보면서 살자고 떠벌린다. 그것이 그들의 정의이고 삶이다. 나만 편안하게 살면 된다는 거다. 그들은 평화의 시대에는 평화예찬론을 펴고, 전쟁의 시대에는 전쟁예찬론을 편다.

친일파 서정주 시인은 “동양적인 내면과 감성의 세계에 대한 탐구를 보여줬다”고 평가 받는다. 더불어 시 세계의 폭넓음과 깊이로 해서 한국현대시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으로 꼽힌다. 그 서정주 시인이 신군부 우두머리였던 전두환에게 바친 글이 있다.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전두환 대통령 각하 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

힘있는 자에게 바치는 아부의 극치를 이루는 글이다. 역시 그는 모나지 않게 살았다. 잘못된 세상을 꾸짖으며 ‘글 같은 글’을 쓴다는 사람들은 그의 간사스러움에 구토를 했다. 훗날 군부세력이 물러나자 그는 이 시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깡패 같은 놈들이라 치켜세우면 덜 죽일 것 같아서.” 비루함과 이중성의 실체를 보여주는 위선이다. 존경 받는다는 한 인간의 허상이다.

해양 작가로 알려지면서 바다와 사투하는 치열한 문학적 깊이로 한국의 헤밍웨이가 되고 싶어했던, 앞날이 기대됐던 소설가 천금성은 독재자 전두환의 일대기 <황강에서 북악까지>를 집필했다. 그는 몇 푼의 돈에 영혼을 팔아 전두환의 전기작가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는 저자 후기에서 “그분의 생애를 더듬는 동안 뭉클한 감동이었다. 위대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믿는다”고 서술했다. 그는 자신이 쓴 글의 굴레에 갇혀서 잊혀졌다. 그는 바다에서도 육지에서도 설 자리가 없어졌다. 그리고 침몰했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어줍잖은 글쟁이’들의 특징은 의외로 간사하다. 그들은 형이상학적이고 현학적인 글 장난으로 시대나 조직에 아부하려 든다. 강한 자의 강도질에는 철저하게 관대하고 ‘장발장’의 빵 한 조각에는 무섭도록 엄격한 붓끝을 들이대면서 나팔수의 역할에 충실 한다.

그러면서 입만 열면 ‘인생의 아름다움’을 떠벌린다. 이런 자들 때문에 ‘바른 글쟁이’들은 술잔 앞에 앉으면 눈물이 난다. 글에도 뼈가 있어야 한다. 글에도 지조가 있어야 한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도 메시지가 있다. 인간을 눈뜨게 한 글들은 잘못된 인간과 잘못된 사회제도에 대한 고발과 성찰과 구원이다. 주제도 메시지도 없는 미사여구만 나열하는 글은 ‘블로그 질’일 뿐이다.

어느 사상가가 말했다. “사는 게 비겁해지면 조금 더 편해진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비겁하게 사는 경우가 많이 있는 거다. 비겁하며 편하게 사는 것도 하나의 인생이고,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나름의 소신을 지키는 것도 하나의 인생이다. 각자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인생을 사는 거다.”

그렇다. 어떻게 살든 자신의 인생이고 자신의 책임이다. 그러나 글의 본질은 바른 것을 추구하고 그른 것을 배척하는 사회의 나침반이라는 것쯤은 알아야 한다.

작가 김훈이 썼다.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고. 내 딸아이는 그랬다. “글이라면, 어떤 글이든, 글속엔 철학, 의지, 신념 뭐 그런 것들이 들어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글로써 죄짓지 말아야 한다.

 

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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