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대신한 나무

잠결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소리를 좇아 베란다 문을 열면서 망연자실, 나는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양의 낙엽이 베란다를 뒤덮고 있었다. 온몸에 한기가 엄습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까?

바람이 스쳐가면서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만들어내는 소리는 생전 들어보지 못한 생경한 소리였다. 우리 집 뒷마당에는 수령이 백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나무가 있다.

내 집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 할까? 베란다에 그늘을 만들어주고 누구나를 품어줄 것 같은 아늑함이 있다. 앙증맞은 테이블에 앉아 커피 한잔 하면서 나무와 얘기를 나누면 항상 행복했다. 내 마음의 믿음직한 기둥이었던 나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뜨거운 눈물이 통곡으로 변했다. 순간 머릿속에 예리하게 지나간 일들이 생각났다. 나무는 내 대신 변한 거야. 나는 몇 해 전부터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아들 셋이 1년 반 만에 모두 결혼하여 내 품을 떠났다. 허전함 때문에 매일 허공을 헤매고 다니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렇다고 다정하게 내 마음을 다독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때 따뜻하게 누가 내 손을 잡아 주었다면….

내 외로움을 누군가와 같이 나누었으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의사는 심각한 내 이야기를 들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상태가 예사롭지 않으니 입원을 하라 했다. 하지만 난 정신력으로 이겨내고 싶었다.

그날도 낮에는 일이 없어 한가하게 커피 한잔하며 매미 소리를 벗하고 있었다.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무슨 이유도 없고 그저 볼에 흐르는 눈물은 감당할 수 없었다. 왜 그런 슬픔이 왔는지 내 자신이 용납되지 않았다.

그 뒤 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뜨거운 햇살에 눈을 떴다. 나는 그 커다란 고목나무 밑에 누워 있었다. 일어나려니 빨래 줄이 목에 감겨 있었다. 내 옆에는 사다리도 엎어져 있었다. 가슴을 쓸어 내렸다. 찢겨진 나뭇가지도 내 옆에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한 거야. 그래 저 나무 가지가 끊어져 나를 살렸다는 생각에 온몸이 차가워지면서 몸서리쳤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는 생각에 눈을 감았다. 내 대신 그 거목은 그렇게 갔다. 삼십 자루나 되는 낙엽은 화덕에 불씨가 되어 그렇게 갔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너의 몫까지.”

저녁식사를 차려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두 사람은 밥을 먹었다. 나는 내 목에 난 상처를 감싸기 위해 예쁜 마후라를 목에 감았다. 골프 갔다 돌아온 남편은 더운 날 무슨 멋으로 마후라를 감았냐고 핀잔을 주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나는 마후라를 풀지 못했다. 내 자살 소동을 그 사람은 눈치 채지 못했다. 내 손 한번이라도 따뜻하게 잡아 주었다면 아니 내 등을 한번이라도 토닥거려 주었다면….

15년이 지난 세월 속에 아물어진 내 상처를 이제는 가슴에 묻고 산다. 부쩍 커버린 손자 손녀들의 손을 잡으며. 가을 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구름을 벗삼아 빨갛게 물든 낙엽을 밟으며 지나온 내 무거운 인생답지 않게 살포시 걸어간다.

 

 

글 / 변애란 (글벗세움 회원)

 

 

 

Previous article또 하나의 추억 만들기
Next article사업체매매 계약 불이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