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추억 만들기

깜짝 놀랐습니다. 벌건 대낮에 송아지(?)만한 캥거루 한 마리가 동네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걸 보긴 했지만, 정작 우리 숙소 뒷마당에서 캥거루를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겁니다. 게다가 잔디밭에 벌러덩 누워있던 아담한 체구의 녀석은 우리를 보고도 놀라거나 겁을 먹거나 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 집처럼 편안히 누워 있다가 우리 쪽으로 가끔 곁눈질을 하면서 귀를 쫑긋거리는 걸로 봐서는 차라리 녀석이 집주인쯤처럼 돼 보였습니다. 시간이 살짝 지나고 우리가 야채를 뭉텅뭉텅 잘라 던져주자 녀석은 아무런 경계 없이 받아 먹고는 슬금슬금 우리 쪽 가까이로 다가오기까지 했습니다.

이윽고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동네 어귀에 캥거루 예닐곱 마리가 등장했고 그 중 덩치가 작은 녀석 하나는 우리 숙소 안마당까지 진출했습니다. 겁 많은 쫄보(?) 아내가 이번에는 용기를 내서 녀석의 입에 야채를 넣어주기까지 했는데 녀석은 마치 강아지처럼 사람을 졸졸 따랐습니다.

캥거루와의 만남은 깜깜한 밤에 한 차례 더 이뤄졌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무심코 앞마당으로 나갔던 아내가 깜짝 놀라 들어왔습니다. “조심해… 캥거루 있어”라는 저의 농담이 현실이 돼버렸던 겁니다. 이번에는 송아지만큼 덩치가 큰 녀석이 한 켠에 느긋하게 자리를 잡고 누워 있었는데 모르긴 해도 밤에는 그렇게 바람을 피해 가정집에 들어와 자는 것 같았습니다. 인간친화가 많이 된 녀석은 야채 몇 조각을 얻어먹고는 그대로 자리를 잡았고 그곳은 그날 밤 녀석의 아늑한 잠자리가 됐습니다.

우리 집에서 남쪽으로 세 시간 남짓한 베라라 (Berrara)… 조금은 외진 시골마을이라 그런지 동네에서 캥거루를 보는 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동물원이나 공원, 바닷가에서 녀석들을 만난 건 꽤 여러 번 있었지만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에서 캥거루를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지난 주말 ‘아내의 결혼기념일’에 맞춰 3박 4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여행에는 우리의 절친, 훗날 ‘영원한 우리의 이웃’이 될 절친부부가 함께 했습니다. 우리 넷은 캥거루와의 만남에 신기해 하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는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게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그 집에 마련된 벽난로에 장작을 때면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그 불에 고구마와 감자를 구워먹은 건 잊을 수 없는 예쁜 추억으로 자리했습니다.

여행 둘째 날, 공통적으로 낚시를 좋아하는 우리는 비치낚시를 즐겼는데 두 시간 남짓 동안 연어 (Australian Salmon) 네 마리와 킹테일러 한 마리, 트레바리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놓아준 두 녀석까지를 합치면 짧은 시간에 여덟 마리를 잡은 겁니다.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은 바다와 벗하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행복했는데 일용할 양식까지 챙길 수 있어 행복 두 배였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 동네 연어가 전혀 연어 같지 않게 살이 단단하고 쫄깃해서 아주 맛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푸짐하게 식탁에 오른 연어회는 넷이서 실컷 먹고도 한참이나 남았습니다. 나중에 벽난로 장작불에 구워먹은 물고기 두 마리는 여느 생선구이와는 그 결을 달리하는 맛이었습니다.

의미 있는 날, 좋은 사람들과의 여행은 순간순간이 기쁨이고 행복이었습니다. 여행지에서, 그리고 오가면서 들른 열댓 군데의 명소는 또 다른 추억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구글형(兄)’의 친절한 위대함입니다. 그 형(?) 덕분에 우리의 오가는 길은 아주 편했고 호주에서 한국어로 안내해주는 구글 위성지도는 우리 차에 들어 있는 구닥다리(?) 내비게이션을 훨씬 능가했습니다.

처음 가보는 장소도 이름만 입력하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목적지까지 정확이 데려다 주곤 했습니다. 그 옛날(?) UBD로 불리던 지도를 들여다보며 꾸역꾸역 찾아가던 시절에 비하면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입니다. 돌아오는 길, 헝그리잭스에서 맛있는 더블와퍼 밀을 먹을 수 있었던 것도 구글형이 친절하게 우리를 그곳까지 데려다 줬던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시간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 구글형의 친절한 도움을 받으며 아내와 함께, 때에 따라서는 소중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기회를 자주 만들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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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g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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