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봉오리

얘들아 내 말 좀 들어줄래?

내가 왜 평생 혼자 사는지

아이도 못 낳는지

 

원래 난 예뻤거든

그날 그 일본 순사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아버지가 보내려던 집에 시집갔더라면

일본가는 그 배를 타지 않았더라면

 

내 고향 공주에서

연지곤지 찍고 가마 타고 시집갔겠지

자식 낳고 시부모 모시고

농사지으며 살았겠지

 

해방이 되도 고향에 못 가고

대전 변두리 판자촌 방 귀신이 되었지

지우고 싶은 기억

평생 따라다녔어

봄이 와도 여름이 와도 사는 맛은 그저 그랬어

 

세상이 바뀌니

나 같은 사람들도 티비에 나오더구나

나도 나가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동네사람 알아볼까

형제들이 싫어할까

망설이다 말았지

 

그래도 내겐 꽃봉오리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

나를 꽃봉오리라 불러줄래?

 

 

공수진

 

Previous article엄마도 영어 공부 할 거야! 147강 나는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
Next article함께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