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네가 화려한 혼례복을 입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꽃가마를 타고 시집가는 꿈을 꾼다. 다음날 그녀는 죽음을 맞는다. 의로운 일을 돕다가 배신자의 밀고로 잡혀가는 장면으로, 어릴 적 티비 드라마 속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연지곤지를 찍고 화려한 가마를 타고 시집가는 꿈이 죽음과 관련된 흉몽 중 하나라는 인식이 강하게 각인되었다. 그렇게 꿈과 샤머니즘에 대한 나의 첫 관심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계절이 교차하는 동안 사계의 변화를 느끼며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처럼 가을 단풍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이 단풍을 닮아가고 있다는 사유의 궤적을 감지하고 있기 때문일까? 간간이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새롭고도 기이한 경험담을 접할 때마다 ‘천국과 지옥’, ‘극락과 나락’의 존재여부에 대한 궁금증은 내 안의 작은 불씨가 되어 끊임없이 꼬물거린다.
몇 해 전, 신부님의 강론 중 이런 말씀이 있었다. “여러분은 천국이 있다고 믿으시나요? 사실 저도 죽어보지 않아서 몰라요. 그러나 일단은 있다고 믿어 보세요. 잘 살다가 죽었는데 천국이 있으면 성공한 것이고, 없으면 본전입니다. 그런데 막살다가 죽었는데 지옥이 있다면 어떡하겠어요? 그러니 잘 살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 말씀에 공감이 되었는지 신자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을 웃었다. 나 또한 ‘신부님이 너무 무책임한 말씀을 하시는 것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옳은 말씀인 것도 같은데…’ 하며 웃어 넘겼다. 이렇듯 현세를 떠난 피안의 세계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도 호기심의 대상은 아닐까?
내 나이 마흔한 살에 예고된 부친상을 치렀고, 마흔여덟 살이 되었던 그 해에는 엄마 다리에 문제가 생겨 목욕이 불편하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는 바로 다음 날, 엄마에게는 말도 하지 않은 채 비행기에 올랐다. 불편하신 엄마를 모셔 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세상에, 기내식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하나를 다 먹기도 버거운 기내식을 싹싹 비우고도 하나를 더 먹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한국에 도착해서 늘 그래왔듯 엄마와 오라비와 함께할 간식 시간을 생각하며 그 미련을 꾹꾹 누르며 집에 도착했다.
“어라?” 동 아파트 현관이 왠지 모르게 휑하니 열려 있다. 낯선 싸늘함을 느끼며 엘리베이터의 5층 버튼을 힘주어 누른다. 내 입꼬리는 벌써부터 씰룩거리고, 나를 반겨줄 엄마의 놀란 함박웃음을 떠올리며 초인종을 누른다. “누구세요?”라는 물음에 “응. .엄마 딸!” 말을 하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문이 철컥 열린다. 조카 미셸이 어색하게 눈과 코를 비비며 나를 맞는다. “엇! 미쉘. 니가 웬일이야?” “이모, 이모. 놀라지마. 할머니,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뭐? 어제 낮에도 이모랑 통화했는데?”
미셸의 모습 뒤로 오라비가 맞이한 당황스러운 현장이 그대로 한눈에 들어온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무시는 줄 알고 식사를 준비해 깨우러 갔다가 그제야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채 드셔보지도 못한 음식들, 여기저기 나뒹굴어진 슬리퍼들, 거실을 가로질러 널브러진 옷가지와 수건들… 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엄마의 손길이 닿았던 옷을 부둥켜안고 벌써부터 그리운 엄마를 부르며 애타게 통곡했다. 아파트 전체가 울릴 듯한 큰소리로 꺼이꺼이 울다가 얼마를 울었는지도 모를 만큼 시간이 흐른 뒤에야 겨우 정신을 붙잡았다. ‘어… 이게 아니지. 병원, 병원을 가야 해! 영안실에 엄마가 계신다!’
8월의 한여름, 초인적인 힘으로 나는 병원으로 달렸다. 그나마 병원은 가까이에 있었고 한때 100미터를 15초 6에 뛰었던 나는 어느새 병원 앞에 도착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병원문을 힘겹게 밀고 들어선 순간, 등줄기를 타고 느껴지는 소름은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기까지 했다. 하필 그 해, 햇볕을 피해 시드니의 겨울을 택해 두 번째 레이저시술을 받은 지 5일째 되던 날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국의 한여름 한복판에 서 있었다. 땀으로 얼룩진 얼굴에는 석쇠 모양의 선명한 레이저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 흡사 막 구운 쥐포를 연상케 했고 미친 듯이 달려오느라 헝클어진 머리는 금방이라도 새가 둥지를 틀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게다가 겨울에서 여름으로 날아온 나의 옷차림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한여름에 웬 가디건이야? 쪄 죽겠다!’라고 말할 것만 같은 괴상한 차림이었다. 그런 모습으로 나는 장례식장 안,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쟈가 외국에서 온 막내딸이랴.” 그런 와중에도 엄마를 잃은 나의 눈은 병원 관계자에게 다그침을 당하듯 힘들어하는 오라비를 재빠르게 찾아냈고, 목멘 소리로 “오빠!” 하며 그들 앞에 섰다. 오라비가 나를 발견한 순간, 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서도 파르르 떨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여기 동생이 왔어요!” 안도하는 오라비의 모습을 가슴에 품은 채 모지리 남매의 갑작스러운 장례 첫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엄마의 삼우제를 마쳤던 그날 밤 꿈에 나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엄마와 아버지를 만났다. 우리는 네 사람이 함께 숲 속을 걷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검은 형체가 멈춰서서 손짓하며 말했다. “너는… 여기까지.” 나는 그 세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다 한마디 대꾸도 못한 채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당한 듯 언덕 아래에서 그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생전에 멋스러웠던 아버지는 평소 즐겨 입으시던 밤색 롱코트 차림에 따뜻한 미소와 함께 작별인사로 내게 손을 흔들어 주셨고, 엄마는 고운 한복을 입고 계셨는데 아버지 옆에서 슬픈 눈으로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계셨다. 아마도 혼자 남게 될 아픈 오라비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러셨으리라.
그 슬픈 눈빛의 기억 때문에 나는 지금도 오라비의 걱정 속에 살고 있다. 이후로 나는 가끔씩 그 검은 형체의 그림자를 떠올리곤 한다.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저승사자와는 확연히 달랐지만, 내 꿈에서 만난 그 형체는 분명 저승사자였던 것 같다. 봤으니 그렇게 믿어야 할 것 같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믿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나는 현세에 살면서 ‘천당과 지옥’, ‘극락과 나락’ 사이의 어딘가에서 여전히 모호함 속에 머물러 지내고 있다.
그런데 최근 동네 가까운 이웃이 남편상을 당하셨다. 평소 부부는 몸소 사랑을 실천하며 가족사랑은 물론, 이웃과의 나눔과 베풂에도 주저함이 없으셨던 분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분들의 슬픔과 애도가 장례 내내 끊이지 않았다. 삼우제가 끝난 뒤 우리는 몇몇 지인들과 함께 미망인이 되신 자매님과 식사자리를 갖게 되었다. 당연히 그 자리에서는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고 그 가운데 자매님은 남편이 가시기 직전 “꽃가마”라는 말씀과 함께 세 번의 옅은 호흡을 내쉬고 운명을 하셨다고 전하셨다.
중국 명나라 유학자 홍자성의 고전 채근담 (菜根譚)에서 유래된 ‘착한 일을 하면 언젠가 좋은 결과를 얻지만, 악한 일의 끝은 결코 좋지 않다’는 인과응보의 가르침이 있다. 항상 행복한 가정을 가꾸고 이웃과의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오신 이분에게는 분명 귀한 대접의 ‘꽃가마’가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꽃가마를 타고 가니 나의 걱정은 하지 말라”는, 가족을 향한 마지막 애틋한 작별 인사로 “꽃가마”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신 듯하다.
이제 나는 ‘천국과 지옥’, ‘극락과 나락’의 사이에서 더 이상 갈등하고 싶지 않다. ‘저승사자’와 ‘꽃가마’의 존재를 믿고 싶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야 할 의무와 이유를 찾을 수 있고, 또한 죽음의 세계가 절망이 아닌 피안의 세계 즉, 희망을 품어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신세계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글 / 김 프란체스카 (글벗세움문학회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