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아서

길을 잃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사람 움직임이 안 보인다. 죽은 자들이 부유하는 길 들이 어지럽게 갈라지고 있다. 갖가지 꽃들이 화려한 비석들 사이사이에서 길을 잃고 허둥대는 나를 쳐다본다.

어젯밤부터 준비한 시간이 바람 따라 가고 있다. 출근시간 전에 잠시 들러 인사하고 전대사를 받으려는 내 꾀를 눈치 챘나 보다. 하늘도 무심하지. 날씨예보에는 비가 없는데 하늘은 비를 한 두 방울 흘리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네크로폴리스라는 이름을 지닌 록우드 공동묘지의 중심으로 올라갔다. 크레마토리움과 작은 성당 앞에 이르자 장대비가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쏟아진다. 출근시간에 쫒기는 내 삶과 얄팍한 믿음이 비에 씻겨 허물을 벗는다. 출근시간에 맞추려던 성급함을 내려놓았다.

찾아 가려는 한인성당 묘역은 눈이 닿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사방으로 뚫린 길이 나를 조롱하듯 시야를 흐트러뜨린다. 쉽게 찾아 들던 길이 오늘따라 여기가 거기 같고 가 보면 아니다. 하늘나라로 가는 길목에서 쉬는 곳, 혼돈의 땅이라는 이름답지 않게 질서 정연히 자리한 묘지들은 평화롭다. 비는 조금씩 가늘어지고 뒤이어 안개가 몰려온다. 몽환적이다. 출근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현실의 시계바늘은 초조히 째각거린다. 먼저 다녀간 흔적들이 비석들 앞에 놓여있다. 죽음을 삶의 한 자락으로 받아들이는 서구인들이다. 죽음의 공간을 삶에서 가급적 멀리 두려는 듯, 험난한 산을 타고 올라가 모시는 우리네 풍습과 너무 다르다. 무덤이 즐비한 록우드 공동묘지를 사이에 두고 번화한 주택들이 들어서 있고 그 옆으로 2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들이 줄지어 까마득히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다. 음산하고 괴기스럽다고 생각하던 사후의 세상이 변했는지도 모른다.

 

기억을 더듬어 가톨릭 묘지라고 적힌 동네로 들어섰다. 죽음 이후의 삶도 그네들의 과거 위에 설치되어 있는 듯 민족 별로 묘지의 분위기가 다르다. 화려한 대리석으로 된 묘석과 사진을 붙인 늠름한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방금 지나쳤던 중국 묘역이 떠올랐다. 획일적인 붉은 대리석 돌 뒷면에 사람의 상반신 정도 크기로 무덤 속의 주인 성을 한문으로 써둔 풍광. 무서웠다. 잠시 걸음을 옮겨 다른 길목에 들어섰을 뿐인데, 이쪽 묘지들은 아름답다. 길 건너엔 커다란 집들이 즐비하다. 아마 동구권이나 이탈리아인들의 묘소 같다. 그네들은 집 형태로 가족묘를 만든 후 무덤을 조성한다던데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 한국인 묘역은 이 길로 돌아 저쪽으로 꺾어져…”

걸어가기를 포기하고 다시 차를 탔다. 그이가 손짓한 곳을 향해 조금 달리니 한인묘역이 나온다. 예수님 성상을 세워서 찾기가 쉽다고 했는데 위에서 봤을 땐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쉽게 땜질하고 적당히 기도하고 가려던 내 잔 꾀를 예수님도 눈치 챘을까. 저렇게 커다란 상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다. 30년 전에 처음 왔을 때의 삭막한 모습이 거의 사라지고 친근한 한국어로 된 묘비들이 나지막하게 늘어서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의 산소는 웅장한 묘지석이나 상석들이 산 중턱에 자리한다. 이곳 묘지는 사뭇 다르다. 겨우 사방 2 미터 x 1미터 정도의 직사각형 넓이에 아래 위층으로 자리하는 이곳 무덤은 평지다. 봉분을 올리는 한국묘지에 익숙한 내 눈에는 무척 낯설었다. 이제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지만 여전히 내 집이 될 거라는 생각이 안 된다.

한인성당은 계속 늘어나는 신자들이 사후에라도 외롭지 말라고 한곳에 모이도록 주선해두었다. 우리는 여기를 한인 묘역이라고 부른다.

낯익은 이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아들도 사진 속에서 물끄러미 나를 본다. 10 년 전 그 모습 그대로다. 스치듯 떠오르는 그 아이가 나를 바라본다. 나도 그를 향해 웃어주었다. 그 옆의 비석에서 늙은 얼굴이 비에 젖어있다. 손수건이라도 있으며 닦아주련만, 내 비석에도 젊었던 사진을 넣어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석에 넣을 적당한 나이를 상상해 보았다. 잠시 누워있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차에 올랐다.

감히 혼자. 이 아침에 온 용기가 가상하다. 우울증이 수시로 찾아오던 내가 이만큼 나이를 먹고 나서야 허울을 벗은 것 같다. 내 스스로 무덤을 찾아 온 것을 보니 나이가 들었나 보다. 장대같이 쏟아지던 비는 그새 푸른 하늘에 자리를 내어줬다. 쏟아진 비로 비석들은 말끔하다.

 

오늘 록우드 공동묘지를 찾은 이유도 지은 죄를 한꺼번에 씻겠다는 욕심에서 시작되었다. 11 월 첫 주는 돌아가신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시간이다. 이 기간 동안 아무 때나 무덤에 가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면 잔벌까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래서 시간을 내었다.

돌아가는 길 위에 보라색 자카란다가 융단처럼 깔려있다. 방금 쏟아진 비로 11월을 그리던 꽃잎들이 나를 황홀하게 한다. 혼돈의 장소를 떠나는 내게 보라색 꽃길은 새로움의 시작을 축하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록우드 묘원. 네크로폴리스 답게 하나의 커다란 도시, 종교와 민족을 아우르는 도시 속에서 맞는 아침이다.

작은 기대로 왔던 발걸음에 전대사의 축복을 가득 받아 안고 차에 올랐다.

 

* 전대사: 천주교에서 잔벌을 완전히 사해주는 축복. 고해성사를 받으면 죄는 용서받지만 벌은 남는다. 하지만 여러 가지 보속을 하면 벌의 일부를 용서받는 은혜가 이뤄지지만 그럼에도 남은 자잔한 벌들을 감해주는 은사를 전대사라고 한다.

 

 

장미혜  (문학동인 캥거루 회원·2005년 수필문학으로 등단·수필집: 50에 점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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