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슬램?!

최근에 낚시를 재개한 한 지인은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고 집에 가는 길에도 ‘에잇, 물고기도 잘 안 나오는데 이제 다시는 안 온다’ 하는 생각보다는 ‘다음에는 더 철저히 준비해서 꼭 잡아야지’ 하는 전투(?)의지가 생긴다”며 활짝 웃어 보였습니다.

또 다른 분은 “집에서 낚시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고 고백(?)합니다. 낚시경력이 40년도 넘는 한 베테랑 낚시인은 “낚시를 갈 때마다 매일매일 가슴이 셀렌다”고 얘기한다고 합니다.

낚시도 분명 중독, 그러나 기분 좋은 중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꼭 잡아야겠다’는 욕심을 담아 낚싯대를 던지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거나 줄이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한다는 사실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진지하게(?) 낚싯대를 노려보고 있으면 미동도 안 하던 것이 신기하게도 제가 딴짓을 하거나 뭔가를 먹고 있으면 난리를 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그만해야겠다며 낚싯대를 걷어 올리려는데 물고늘어지는 걸 보면 녀석들도 제가 찌질한 걸 알고 있는 듯싶습니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물고기가 잘 안 나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파도와 바람이 미친 듯이 높고 센 탓에 낚시를 갈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우리도 낚시를 못 가니 근질근질합니다.

아내와 제가 하는 낚시는 전문 낚시꾼들이 볼 때는 그야말로 소꿉놀이 같은 낚시입니다. 대어들이 잘 나오는 포인트에서 파도와 싸워가며 낚시를 해야 제 맛이라지만 우리는 바위낚시는 절대 안 한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고 지인들과도 늘 안전한 곳만 골라서 다닙니다. 그런 소소한 낚시이지만 우리도 가끔씩은 재미를 봅니다.

예년에 비해 갈치 구경하기가 어려워진 요즘, 금년 들어 우리는 갈치를 딱 두 마리 잡아봤습니다. 아직 기회가 더 있기는 하지만 전보다는 갈치가 많이 귀해진 겁니다. 그럼에도 편안하게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밤 하늘의 별을 헤는 시간은 우리에게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여기 장어는 덩치만 크고 냄새가 심해서 못 먹는 경우가 많다는데 우리는 용케도 한국 장어를 똑 닮은 녀석들이 사는 곳을 알아내 가끔 녀석들과의 만남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달 전쯤에도 우리는 그곳에서 일행들과 함께 장어 여러 마리를 잡았습니다.

몇 주전에는 오랜만에 비치에서 연어 (Australian Salmon) 낚시를 했습니다. 역시 물고기가 귀한 상황… 두 시간 넘게 입질 한번 못 받고 앉아 있었지만 가슴이 탁 트이는 넓은 바다, 드높은 하늘, 따사로운 햇살로 우리는 이미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흔들린 낚싯대를 잽싸게 낚아채 한 녀석을 끌어올렸습니다. 녀석들과의 힘겨루기는 언제나 짜릿합니다. 다시 한동안 이어진 잠잠함 끝에 이번에는 낚싯대 두 대가 동시에 요동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와 제가 한 대씩을 붙들고 씨름을(?) 하고 있는데 옆에 꽂혀 있던 낚싯대 하나마저도 격렬히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만치에서 낚시를 하고 있던 호주인이 얼른 달려와 우리 대신 녀석을 끌어올린 후 기분 좋은 하이파이브를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짜릿함… 오징어, 그것도 덩치가 산(?)만한 대왕 갑오징어와의 만남입니다. 그냥 말만 듣고는 아무 것도 모르고 갔다가 맞닥뜨린 녀석들의 거대함에 당황해서 허둥대다가 세 마리나 눈 앞에서 떨궜지만 사투(?) 끝에 용케 끌어올린 한 녀석은 그 무게가 7.7Kg이나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 우리는 갈치, 장어, 연어, 갑오징어에 이르는 그랜드 슬램 (Grand Slam)을(?) 달성했습니다. 얼른 날씨와 파도, 바람이 잦아들어서 다시 녀석들과의 짜릿한 한판 승부들을 벌일 수 있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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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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