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와일드 라이프

빨랫줄에 널린 거미줄을 손으로 쓱 걷어내며 스스로 대견해…

10년 전쯤 일이다. 뭉뚱한 것이 앞마당 잔디 사이로 미끄러지듯 몸을 숨기는 것을 보았다. ‘에구머니, 저것이 뱀일까?’ 하면서도 몸통 자체에서 풍기는 느낌으로 블루텅 리저드 (Blue Tongue Lizard)일 거라고 맘을 달랬다. 조금 있다 보니 요놈이 해바라기를 하는지 잔디 위에 누워 있다.

 

01_몸통만 숨기고 꼬리가 한 뼘쯤 삐져나온 블루텅 리저드는…

이 녀석들의 성격이 한 집에 가만히 못 있고 4년 정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닌다니 이번엔 우리 집이 당첨된 모양이다. 마당 구석구석에 진을 치고 있는 거미나 벌레들, 작은 텃밭에서 자라는 상추를 초토화하는 달팽이가 주식이라니 채소를 키우는 집에선 반갑기 그지 없는 손님이다.

나도 이 녀석과 친해질 요령으로 찬찬히 들여다도 보고 카메라에 담아 보겠다고 마당으로 나가 가까이 다가서는 시늉도 해보았다. 다음 날 빨래를 널려고 뒤뜰 작은 계단으로 성큼 올라서는데 후다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담장의 벌어진 틈으로 숨는 것이 있었다.

전날 보았던 그 녀석이다. 몸통만 숨기고 꼬리가 한 뼘쯤 삐져나온 것은 모르는 모양,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숨을 죽이고 있다. 그 모양새가 우습기도 했지만 나와 몇 걸음 상간에 있다는 것으로 꽤 신경이 쓰였다.

‘탁탁’ 일부러 소리가 나게 빨래를 털어 널면서 마음 한 켠엔 ‘내 존재를 알리는 동안은 그대로 거기에 있겠지…’라는 생각을 담았다. 바로 그때 커다란 까마귀 한 마리가 얼굴에 닿으면 베일 것 같은 날개를 퍼드덕대며 담장 위 바로 내 앞에 날아와 앉았다.

 

02_번들거리는 몸통, 아무리 귀엽게 봐주려 해도 무서운 마음에

까마귀는 앉자마자 무언가에게 쫓기듯 좁은 계단 사이를 활개를 치며 또다시 어딘가를 향해 날아갔다. 까마귀의 날갯짓이 어찌나 위협스럽던지 도마뱀 때문에 느끼는 긴장감까지 합쳐져 내지른 내 목소리가 담 너머까지 들렸나 보다.

이웃집 돌린이 놀라 고개를 내밀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꼬리만 내놓고 있는 블루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박장대소를 하며 자기 집 강아지도 이놈하고 사이가 안 좋단다.

마당에서 벌어지는 야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계단을 내려서는데 숨어 있던 녀석이 내 발 밑에 버젓이 나와 있지 않겠는가. 동물원에 얌전히 앉아 있어도 유리창 사이로 그 괴기스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번들거리는 몸통을 아무리 귀엽게 봐주려 해도 놀라고 무서운 마음에 눈물보가 터졌다.

옆의 있는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뿌리라는 돌린의 말소리가 귀로는 들리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울음소리에도 여전히 꼼짝 않고 있는 녀석이 어느 순간 내 다리를 타고 올라와 얼굴에 들러붙을 것만 같았다.

 

03_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옆에 있던 의자로 고아나를 내리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앙앙대는 나에게 기다리라며 돌린이 집으로 들어가 앨범에 있는 오래된 사진을 한 장 들고 나왔다. 야외 캠핑을 하던 중 딸 아이가 없어져 소동이 났다는데 찾고 보니 도마뱀과 놀고 있었단다. 그때 찍었다며 보여주는 사진 속에는 블루텅 리저드 한 마리가 아이의 어깨 위에 편안하게 안겨 있었다.

몇 주 전 로열내셔널파크에 속한 오들리 (Audley)를 산책하던 날이었다. 화창한 날, 여기저기 가족들이 모여 고기 굽는 냄새가 지나는 사람들을 유혹했다. 그때 늙은 나무 밑동에서 고아나 (Goanna) 한 마리도 고개를 내미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2미터가 훌쩍 넘을 만큼 커다란 놈이 바비큐 냄새에 홀린 듯 느릿느릿 테이블 쪽으로 다가간다. 지나던 사람들이 애정 어린 눈길로 그 녀석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을 즐기고 있을 때 열 살 가량으로 보이는 소년이 고아나의 출연을 목격하고 고함을 지르며 자리에서 퉁겨져 일어났다.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옆에 있던 의자를 들어 고아나를 향해 내리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에게 누군가 돌을 던지는 것을 목격한 것처럼 지켜보던 사람들의 비명이 주변을 울렸다.

 

04_요즘은 날아다니거나 기어 다니는 것에 놀라는 일이 훨씬 덜해

다행히도 고아나는 의자의 다리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비켜났다. 호주인들은 집안으로 들어온 나방도 손바닥으로 잘 감싸서 밖으로 내보낸다. 거미도 독거미가 아니 이상 웬만해선 죽이지 않는다.

뱀이 사람을 피해 스르르 몸을 감추는 것을 부끄럼을 탄다고 표현하는 걸 보면 색 사탕을 빨아 먹은 꼬맹이의 혀처럼 불루텅 리저드나 고아나는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한가보다.

어느 집 마당이건 쿠카부라나 코카투가 제집 드나들듯이 누비고 다니는 것이 일상인 나라 호주. 요즘은 날아다니거나 기어 다니는 것에 놀라는 일이 훨씬 덜하다.

오늘 빨랫줄에 널린 거미줄을 손으로 쓱 걷어내며 왠지 나 스스로 대견해 가슴이 뿌듯해진다. 누군가가 익숙한 것은 경멸을 낳지 않고 편안함을 준다는 말을 했다. 고아나를 보고 기겁을 했던 소년과 여인도 호주의 자연에 차츰 익숙해질 때가 오리라.

 

글 / 박해선 (글벗세움 회원·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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