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외로운 거다

그는 왜 혼자서 술을 마신다고 생각하냐? 아니 그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말이야. 슬퍼서? 기뻐서? 화가 나서? 물론 그래서 술을 마시기도 하지.

누군가는 그랬다. 술을 마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불만이며 패배 의식이며 자기도피라고. 정말 그럴까? 절대 틀리다고 할 수는 없겠지. 그런데 꼭 그렇게만 단정할 수는 없어. 술을 마시는 이유는 여러 가지거든.

‘어린 왕자’가 물어 봤어. “왜 술을 마셔요?” “잊기 위해서야.” “무엇을 잊기 위해서예요?” “부끄럽다는 걸 잊기 위해서지.” “뭐가 부끄럽다는 거지요?”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 술을 마시지만 그로 인해 다시 부끄러워지는,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후회를 반복하고 있다는 거지.

어느 글쟁이는 술을 교통사고에서 자신을 보호해주는 ‘에어백’과 넘어지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자전거 보조바퀴’라고 했다. 보조바퀴 없이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할 자신이 없는 거다. 그러면서 술을 끊는 다는 것을 ‘실연’이라고 했다. 즉, 자신을 보호해주는 존재로서 ‘술’을 말하고 있다. 술에 의지했기에 그 술을 끊는다는 것은 사랑을 잃어버린 실연이라고 표현한 거다.

어찌됐건 너도 술 마시냐? 좋은 사람과 어울려 즐겁고 가볍게 마시는 술은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지. 그런데 그렇게 마시는 술 말고 습관처럼 멍한 표정으로 찌질하게 혼자 앉아 안주도 없이 홀짝홀짝 마시는 술 말이야.

넌 혼자 술 마시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지치고 찌들어 있다는 걸 알고는 있냐? 무엇에 지치고 찌들어 있냐고? 경쟁, 방황, 불안, 질시 같은 것들에? 아니야! 그런 세속적인 것들보다 더 본성적인 것들이 있어. 시장바닥에서 웅크리고 살아가는 사람들 말로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사람을 지치고 찌들게 만드는 거래!

걸핏하면 혼자서 홀짝거리며 술 마시는 마음을 짐작할 수 있겠냐? 그건 눈물 날 것 같은 쓸쓸함과 외로움 때문이야. 그런 것들을 누가 가져다 주냐고? 자기가 만든 자기 구덩이 속에 자기 스스로를 가둬 자기가 가져오는 거라고?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답은 그렇게 생각하는 네가 그 외로움을 만들어 주는 이유인지도 몰라. 어쩌면 네가 바로 그 주범이야!

사랑한다는 진심 어린 눈빛,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손수 챙겨주는 따뜻한 밥 한끼, 그런 것들은 쓸쓸함 외로움을 씻어주는 명약이지. 넌 그런 마음과 그런 언어를 가지고 있는가? 오직 너는 너일 뿐인가? 외로움의 철창에 갇힌 곁의 사람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가?

너는 새장 속의 파랑새에게 물 주고 모이 주는 것으로 파랑새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안돼. 새장 속의 파랑새는 물과 모이보다 다정하고 부드럽고 따스한 한마디 말과 눈길을 더 바라고 있음을 알아야 해.

거친 바람소리 들으며 우두커니 서있는 그는 너에게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아.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딱 하나야. 너의 사랑하는 눈빛과 정성과 즐거움이 가득 담겨 있는 따뜻한 그 밥 한 끼야.

외로움에 지치고 시들어가든 그가 너에게 스며든 것은 네가 차려준 따뜻한 밥 한끼 때문이었지. 새벽에 일어나 곁에 잠든 너를 보면서 힘을 내겠다고 다짐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쓰러지지 않겠다고 자신을 응원하는 것도, 강해지자고 앞만 보고 달려가자고 외치며 그것이 그가 가야 할 길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도 네가 정성으로 챙겨준 그 밥 한끼 때문이야.

챙겨주는 건 따뜻함이다. 챙겨주는 건 아낌이다. 챙겨주는 것에 외로움은 멀어진다. 네 밥은 네가, 내 밥은 내가는 ‘우리’가 아닌 ‘나’일 뿐인 거다. 그건 평등이 아니라 잘못된 에고 (ego)다.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외면하는 거다. 외로움은 무관심 속에서 자라나는 거다.

식탁 앞에서 늘 홀로이던 그는 따스한 밥 한끼에 외로웠던 거야. 그래서 항용 혼자 술을 마셨던 거지. 외로움은 깊은 상처로 남는 거다.

너는 알아야 한다. 사랑이란 건 나를 그냥 던지는 거다. 주지는 않으면서 받으려고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야. 세월에 닳아 탐욕으로 변하는 이기적인 사랑이 사람들을 아프고 외롭게 하는 거다.

너에게 부탁하자. 그가 삶에 찌들고 외로움에 지친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혼자 앉아 홀짝홀짝 술 마시지 않게 해다오. 그건 어렵지 않다. 너의 가슴에서 우러나는 진정을 담은 모락모락 김이 나는 밥 한끼 챙겨주면 된다. 그가 바라는 것은 억지스럽고 의무적이고 마지못한 관심이 아니다. 단지, 그저, 그 따뜻한 밥, 한끼다.

 

 

왜들 이러시나 | 온라인 코리아타운글 / 최원규 (칼럼니스트·뉴질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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