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 시대, 어느 날들의 기록

2022년 추석은 이른 추석 (9월 10일)이었다.

해마다 추석을 고향에서 보내왔던 나는 감염병 이후 3년째 칩거 중 이었기에 이번 추석에는 꼭 고향에 가고 싶었다.

몇 달 전부터 고민을 해보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상태는 지속되고 있고, 그러다 깜짝 한국거소증 (외국인 한국거주 인정) 만료일이 9월 어느 날 이라는 것이 떠올라 무조건 가야 하는 쪽으로 결심을 굳혔다.

곧바로 법무부 홈페이지로 들어가 예약날짜를 잡았는데 그 다음은 항공료가 문제였다.

점차 비행횟수의 증가로 가격이 떨어지는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몇 번을 문의하고 의논한 끝에 추석연휴 일주일 전 9월 2일로 예매하였다.

 

날짜가 다가오자 한국뉴스에 더욱 민감해졌다.

감염자 발생은 감소추세인지? 증가추세인지?

정부의 방역대책과 감염자들의 치료요건은 좋은지?

그러나 정작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들은 따로 있었다.

K-ETA (외국인 입국 전자비자)와 Q-code (Quarantine-covid19 defence) 검역정보 입력 사전시스템이었다.

나의 경우, 거소증명서로 K-비자는 면제되지만 Q-code 절차가 필요했다.

그런데 때마침 한국뉴스에서는 입국 전 코로나19 테스트 문제가 이슈화 되어 있었다.

감염병 예방에 특히 강력했던 호주를 비롯 세계 여러 나라들이 입국 전 테스트를 폐지했는데 왜 한국은 ‘입국자들의 제한조치를 여전히 시행하고 있는지’를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기대해 볼 만한 내용이었다.

9월부터는 분명 해제조치가 있을 것 같아 편하게 입국하겠구나 싶었다.

얼마 후 발표가 있었는데 9월 3일부터 시행한다는 공문이었다.

9월 2일에 출국해야 하는 나는 할 수 없이 9월 1일에 테스트를 하였고 음성확인서 발급을 기다리는데 일주일 먼저 출국한 지인으로부터 국제전화가 왔다.

Q-code를 작성하지 말고 음성확인서만 들고 오라는 권유였다.

공항에 도착하면 Q-code 작성자와 미 작성자로 라인이 구별되는데 작성자들의 줄이 훨씬 길어 입국이 더욱 지연된다는 경험담이었다.

여행사에 알아보니 Q-code는 필수사항이 아니니 입국 후 작성해도 무관하다고 알려주었다.

다음 날, 비행기 출발시각은 7시 45분이었는데 서류검토 상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여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4시 45분에 도착하려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준비하여 가보니 이미 출국장은 열려 있었다.

수속을 마치고 들어가 한산한 공항을 나 혼자 유령처럼 떠돌다 몇 번의 연착 알림 끝에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는데 가을 태풍의 간접영향으로 비행 내내 안전벨트 착용을 강요당하는 흔들림의 연속이었다.

승객들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나의 좌석은 아기를 동반한 홀 부모 바로 옆 좌석이었으니 말해 무엇 하랴!

 

그리웠던 고향의 느낌은 좋았다.

쌀쌀했던 시드니의 날씨, 흔들림으로 살벌했던 기내의 공기를 뒤로하고 따뜻함으로 다가온 9월의 기온은 한없이 포근했다.

‘깨톡!’ 통로를 지나다가 갑자기 들려온 기계음 소리에 놀라 핸드폰을 보니 친구의 메시지 ’45분 연착이라는데 무슨 일?’ 친구가 나의 입국을 실시간 항공정보로 확인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잠시나마 꿈을 꾸듯 행복했던 시간은 그러나 너무 짧았다.

입국장이 가까워오자 나는 경악했다.

아니, 아직 입국장은 보이지도 않았는데 앞을 헤아릴 길 없는 긴 줄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다보니 또 한 번 “아! 아악!” 소리가 나도 모르게 절로 나왔다.

이제껏 이런 기가 막힌 경험은 없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인데… 맞다! 영화에서 본 독일장교에게 끌려가던 유태인들의 그 길고 길었던 바로 그 행렬?!’

결국 입국장은 아기 울음소리가 가득했고 ‘국방부방역’이라고 쓴 푸른 가운을 입은 새파란 젊은 의사들이 진땀을 흘리며 안내를 맡고 있었다.

“Q-code 작성해오신 분들은 저쪽 줄입니다. 분리입니다.”

왠지 덜컥 겁이 났다.

울고 있는 아기와 어린이를 동반한 부모들은 대열에서 빼내어 어디론가 데려갔다.

뒤에 할머니 한 분이 미국에서 왔다며 긴 줄에 항의하였다.

“이 보소.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요? 글찮아도 열 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와서 힘들어 죽겠는데 이건 뭐요?”

“할머니 저희도 어쩔 수 없답니다. 죄송합니다. 협조 부탁 드립니다.”

고개를 조아리는 방역젊은이들도 안쓰럽다.

나는 사진을 찍었다. 이런 역사적 장면은 쉽게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긴긴 시간을 보내고 울듯이 입국장을 빠져 나오려는데 내 여권을 본 안전요원이 “외국인은 아래층에 내려가 코로나19 테스트를 다시 받으셔야 합니다” 한다.

나는 거소증을 꺼내어 보여주며 “내일 보건소에 가서 받으면 안 될까요?” 하고 공손히 물었다.

그랬더니 안내원이 “내일은 토요일입니다. 아래층 검역소에 가셔서 안내 받으세요”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이동을 하는데 왠지 슬퍼졌다.

도착해보니 그곳 검역소 역시 긴 줄이었다.

서류를 작성하고 30여분쯤 기다려서 여권과 증명서를 보여주니 “내일 보건소에 가서 무료검사 받으세요. 여기서 검사 받아도 되지만 8만원 비용이 발생합니다” 한다.

토요일인데 보건소는 근무하냐고 물으니 보건소 재량이지만 선별검사소는 오픈 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 동안 기다린 것이 억울해서 검사를 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감정을 억제하고 억울한 만큼 비용이나 아끼자고 생각하면서 공항버스 타는 곳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제2공항버스 터미널은 텅 비어 있었다.

내가 아래층 선별검사소에서 기다리는 동안 이미 비슷한 시간대에 들어온 미국 발, 비행기 승객들도 시드니 출발 승객들도 거의 돌아갔고 서너 명이 공항버스 줄에 서 있었다.

매표소는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자동발매기로 승차권을 사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발권을 하려 해도 기계가 작동하지 않았다.

우리 동네를 가까이 관통하는 용인 행 버스는 운행마감이라니 버스운행이 되는 수원 쪽으로 돌아서 가려 해도 결제가 안 되었다.

기계마다 오작동일 리도 없고, 이해할 수가 없어서 현금결제를 작정하고 버스를 잡고 기사님께 물어 보니 현금결제는 절대 불가라고 단호히 거절한다.

 

어쩌란 말인가!

이미 시간은 오후 9시가 넘어서 공항버스가 거의 끊겨간다고 짐작하니 기가 막혔다.

마지막 버스일지도 모를 기사 분께 제발 좀 기다려 달라고 사정을 하고 기계로 달려가 다시 시도를 해봐도 발권기는 요지부동이다.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서 있는데 여학생이 급하게 달려왔다.

“버스 기사 분이 도와드리라고 해서 왔어요.”

여학생이 해봐도 결제가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학생이 내 은행카드 뒷면을 보더니 카드 사용기간이 넘어서 사용중지 카드라고 알려준다.

또 다른 카드도 마찬가지였다.

무서웠던 코로나19 시대, 3년을 보내는 동안 나의 한국의 은행카드는 모두 ‘사용중지’ 상태가 된 모양이다.

놀라워서 손을 벌벌 떨면서 황당해 하는 나에게 여학생은 현금은 있으시냐고 묻는다.

나는 지갑을 그녀에게 쥐어주며 말했다.

“학생 미안해요. 대신 결제해주고 심부름 값까지 여기서 꺼내가 주면 고맙겠어요.”

학생은 선한 미소를 날리며 표를 끊어주었다.

우리 집은 수원에서 그리 멀지 않아 내려서 택시를 타고 집에 들어와보니 그래도 11시가 넘어 있었다.

 

약속대로 다음 날, 서둘러 보건소에 들러 다시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

테스트 검사결과는 핸드폰으로 알려준다는데 이미 은행계좌와 연동된 핸드폰이 요금미납으로 끊긴지 오래된 상태이다.

아, 아, 어쩌나?

시드니에서부터 한국 신상정보 기재에 한국 핸드폰 번호를 적었기에 다른 번호로는 변경할 수가 없다.

위치추적을 위해 서류기준이 엄격하여 거짓기재로 몰릴 경우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돌아와보니 책상 위 핸드폰 요금미납 (채무상환 촉구 및 채권주심 확정 통지서)을 알리는 생소한 고지서가 유난히 눈에 뛴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다.

여전히 우울한 기분으로 쉬고 있는데 오후 늦게 메시지 울림소리가 요란하다.

열어보니 음성확인서와 확인등록 하라는 웹 주소 안내문이 왔다.

비록 핸드폰은 끊겼으나 수신 메시지는 가능하다니… 횡재한 듯 그저 고마웠다.

웹 주소에서 음성확인 메시지를 사진으로 첨부파일 하고 신상기록을 올리고 등록을 클릭하니 등록은 될 리가 없다.

곧바로 내 PC에서 웹 주소를 찾아 등록했더니 O.K.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Q-code 만들었어?”

“아니, 이제 음성확인서 첨부해서 등록했으니 그것도 만들어야겠지?”

“음성확인서를 등록 했다고? 그 웹 주소 줘 봐.”

웹 주소를 알려주자 친구가 크게 웃으며 말한다. “그게 Q-code 작성이야.”

 

다음 날은 월요일이니 업무가 가능하며 거소증 연장을 해야 하는 9월 5일이었다.

일찍 서둘러 은행 업무시간에 맞춰 나갔다.

한 개의 은행카드라도 열어야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계좌를 열어놓고 곧바로 예약된 날 (5일)이라서 시간에 맞추어 거소증 연장을 위해 영통 출입국관리소로 달려갔다.

서류검토와 본인확인을 하고 사무원이 요구한다.

“주소지에 본인이 살고 있다는 증명서류만 주심 됩니다.”

나는 주소지에 살고 있지 않아 깜짝 놀랐지만 침착하게 물었다.

“예를 들면, 어떤 서류요?”

“전세증명서 같은 것이지요”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다. 주소지 아파트에는 남동생이 혼자 살고 있다.

나는 얼른 가방을 열었다.

오늘 일 끝나면 밀린 전화요금을 갚기 위해 빚 독촉장을 가져온 것이 생각났다.

그것을 보여주자 주소를 확인하고 증명서류로 채택을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사무실 복사기가 힘차게 돌아간다.

‘드르륵… 드르륵…’

 

 

글 / 권은혜 (글벗세움 회원·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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