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받은 시드니 도시어부?!

“집에서 30분 거리라고? 바다낚시를 하는데? 그거 실화야? 혹시 김 기자, 우리한테 뻥 치는 거 아니야? 실제로는 호주 해안가 어촌 어디에 살면서 시드니에 산다고 말이야. (웃음) 참… 김 기자, 당신 복 받은 거야. 그게 여기서는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야? 진정한 도시어부… 부러워, 정말 부러워….

지난주 온라인 코리아타운을 통해 제 글을 읽은 그 선배의 목소리에서는 부러움이 가득 묻어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 바다낚시를 하려면 정말이지 큰맘 먹고 몇 시간을 달려가야 하니 일상에 붙들려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겠습니다.

월요일 밤 조금 늦은 시간, 아내와 둘이 문득 우리의 놀이터로(?) 향했습니다. 이번 주 내내 비 소식이 있다고 해서 그 전에 다시 한번 ‘축복 받은 시드니 도시어부’의 여유와 특혜를(?) 즐기고 싶어서였습니다.

평일이었지만 그리고 물고기가 왕창 쏟아져 나오는 시기도 아니었지만 낚시터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용케 두 자리를 차지하고 낚싯대를 펼쳤습니다. 화요일부터 비가 온다고 했지만 아직까지는 밤 하늘의 별들이 쏟아져 내릴 듯 우리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쯤이 흐르고 밤 열한 시가 되자 하나 둘씩 자리를 정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역시 물고기는 많이 나오지 않았지만 운 좋은 사람들 몇몇은 어지간한 물고기 하나씩을 통에 담아갔습니다.

우리 옆에서 낚시를 하던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20대 중반의 청년도 그 시간 무렵 낚싯대를 접었습니다. 그곳을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띄우는 낚시’를 하는데 비해 그들은 ‘가라앉히는 낚시’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제법 큰 사이즈의 민어 한 마리와 감성돔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깔낚’을 하는 바람에 제 낚싯줄이 잘 보이지 않아 엉키게 됐습니다… 낚싯줄을 풀기 어려우시면… 제 줄을 자를까요?” 제가 낚싯줄을 감다가 그 청년의 것과 엉키자 그는 많이 미안해 하면서 자신의 줄에 가위를 들이댔습니다. 낚시를 하다 보면 흔히 생기는 일이었음에도 그는 그게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다행이 우리는 낚싯줄을 자르지 않고 엉킨 줄을 잘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청년이 낚싯대 두 대를 던져놓은 채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어디 갔나 싶어 두리번거리다 보니 그는 저만치 자동차들이 주차된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앉은 채 담배를 피워대 옆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에 비해 그는 그렇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낚싯대를 접을 때도 그는 자신이 머물렀던 자리 주변을 일일이 물을 길어 올려 깨끗이 씻어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자동차에 시동을 건 그는 스몰라이트 만을 켠 채 차를 후진시켰다가 출발하면서야 헤드라이트를 켰습니다. 그의 차가 바다를 향해 주차돼 있었기 때문에 낚시를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눈부심 같은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배려였던 겁니다.

낚시를 하다 보면 그야말로 천차만별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심지어는 본인이 잘못을 해놓고도 적반하장으로 덤벼드는 사람들도 많은데 월요일 밤에 만난 그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르는 청년은 참 고맙고 기특하게 기억됩니다.

그 청년처럼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남을 배려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사람 사는 세상’의 참된 냄새를 진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기 드문 감동을 주고 간 청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짐을 느끼며 밤 하늘을 가득 채운 별에 취해 지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아내와 저는 작은 물고기 몇 마리만 잡았다가 놓아주고 빈 통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또 다른 기분 좋음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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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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