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뭐라고…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야구부가 없었지만 고교시절의 저는 고교야구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1970년대 고교야구는 그야말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었고 저는 TV 중계로, 드물게는 서울운동장 야구장에 가서 직접 그 열기와 함성에 휩싸이곤 했습니다.

이 같은 고교야구 열풍은 대학야구, 더 나아가 별 인기가 없었던 실업야구에까지 점차 그 영향이 확대돼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선린상고와 신일고 야구부를 좋아하고 응원했지만 ‘역전의 명수’로 불리던 군산상고 또한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아무리 점수를 많이 뺏기고 절박한 위기상황에 처해도 싱글싱글 웃으며 공을 던져 ‘스마일 피처’라는 별명을 얻은 송상복 투수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새롭습니다. 그 덕분이었는지 군산상고는 누가 봐도 ‘이젠 끝났다’ 싶은 상황에서 기적 같은 역전승을 만들어내곤 해 많은 사람들의 찬사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1972년 7월 19일 ‘제26회 황금사자기쟁탈 전국 지구별 초청 고교야구 쟁패전’에 전북대표로 출전한 군산상고는 준결승에서 송상복이 경남고에 3대 1로 완투승을 거두며 결승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9회초까지 부산고에 1대 4로 끌려가던 군산상고는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기적 같은 5대 4 역전승을 연출, 황금사자기를 거머쥐면서 ‘역전의 명수’임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러던 제가 야구를 ‘딱 끊은 건’ 1982년이었습니다.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처참히 짓밟고 들어선 5공 정권이 국민들의 정치적인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이른바 3S (Screen·Sex·Sports) 정책의 일환으로 프로야구를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그리고 요즘… 처음에는 ‘무슨 재미로 저런 걸 하지?’ 하는 무식한 생각을 가졌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경기가 거듭되면서 어느새 컬링에 깊숙이 빠져 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주 전 금요일 밤, 마늘소녀들은(?) 그 긴장과 흥분의 도를 극으로 올려놨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준결승에서 그들은 일본과 11엔드 연장전까지 가는 열전을 펼친 끝에 그야말로 심장이 쫄깃해지는 승리의 기쁨을 안겨줬습니다. 토요 산행을 위해 다음 날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야 했음에도 아내와 저는 경기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과 함께 숨을 죽여야 했습니다.

비록 결승에서 스웨덴에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전 세계적으로 ‘영미!’ 열풍을 일으킨 그들은 금메달 그 이상의 것을 해냈습니다. “참, 저게 뭐라고…” 스톤 하나하나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저와 아내는 서로를 보며 웃었습니다. 다음날, 이래저래 잠 한숨 못 자고 산행을 해야 해서 많이 힘들긴 했지만 마음 한 켠에는 또 다른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얼마 전 호주오픈테니스대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흥분시켰던 정현 선수에 이어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여러 번의 가슴 뛰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 결승에서 이승훈 선수가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자신의 역할과 임무를(?) 충실히 해준 아직 열일곱 살이 채 안된 고등학교 2학년생 정재원 선수, 쇼트트랙 여자 3000미터 계주 결승에서 순간적인 판단력과 몸을 던지는 투혼으로 팀의 금메달에 기여한 김아랑 선수는 참 기특하고 예뻐 보였습니다.

호주에서 살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한국인… 쇼트트랙 남자 500미터 예선에서 두 번이나 넘어지는 북한 선수 정광범을 보며 안타까워했던 마음이나 역시 경기 초반 빙판에 나뒹굴며 경기를 망친 호주 선수 앤디 정에 대한 속상함도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감정일 것입니다.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동안에는 뭐니뭐니 해도 ‘영미!’로 기억되는 여자 컬링 선수들 덕분에 참 많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스포츠는 분명 우리의 삶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의 요소 중 하나입니다. 본질과 다르게 이상한 방향으로 악용되는 경우만 없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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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선 tonyau777@hotmail.com

<코리아타운> 대표. 1956년 생. 한국 <여원> <신부> <직장인> 기자 및 편집부장, <미주 조선일보> 편집국장. 2005년 10월 1일 <코리아타운> 인수, 현재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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